15. 정토왕생첩경도
15. 정토왕생첩경도
  • 정진희
  • 승인 2017.08.1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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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마음 담긴 염불이 왕생극락 지름길

▲ 근수정업왕생첩경도, 목판본, 지리산 영원암 숭정13(1640), 66×39.5㎝, 고양 원각사.

첩경이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그렇게 되기가 쉬움을 이르는 말이니 ‘정토왕생첩경도’를 글대로 풀이하자면 왕생극락하기 위한 지름길을 알려주는 그림이다.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토, 약사유리광여래의 동방정유리세계, 미륵불의 도솔천, 관음보살의 보타락가산 등 청정하지 못한 현실세계를 나타내는 예토(穢土)에 반대되는 불국정토는 그야말로 여러 곳이 있는데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정토는 뭐니뭐니해도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이다. 우리에게 염불이라고 하면 아미타불을 외우는 것을 떠올릴 만큼 아미타신앙은 조선후기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것은 정토왕생을 위한 방편으로 크게 유행하였다. 아미타불은 ‘지극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만 불러도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해 극락왕생할 수 있게 한다’는 서원을 세웠기 때문에 아미타부처를 염불하는 것은 서방극락정토의 주인이 보증하는 극락왕생 방법이었다.

조선중기 널리 퍼진 정토신앙
그림 목판에 새겨 판화로 보급
극락정토 이동수단 반야용선
조선후기 독립 주제로 그려져


‘근수정업왕생첩경도’는 조선 중기 이후 대중적 호응이 높았던 정토신앙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1640년 지리산 영원암에서 판각된 목판으로 인쇄한 것인데 판화의 가장 윗부분에는 ‘권수정업왕생첩경(勸修淨業往生捷經圖)’이라는 여덟 글자가 찍혀 있다. 상하로 긴 직사각형 틀을 두고 그 속의 위에는 극락정토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8대보살을, 아래는 9가지로 나뉜 연화대 속에서 화생하는 왕생자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이 판화에 그려진 도상들은 염불수행을 통해 왕생할 수 있는 서방의 극락정토를 시각적인 매개체를 통해 보여주면서 좋은 행을 권하고 닦아 극락에 왕생할 것을 권장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림으로 그리지 않고 목판에 그림을 새긴 이유는 집집마다 벽에 붙여 두고 바라보면서 극락왕생할 수 있는 정업을 부지런히 닦을 수 있게 많은 사람이 나누어 가질 요량으로 많은 양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 염불왕생첩경도, 159.8×306.5㎝, 견본채색, 1750년, 영천 은해사, 보물 제1857호.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염불왕생첩경도’는 18세기로 전승된 정토신앙의 일면을 보여준다. 아미타불의 명호를 염하고, 극락정토의 장엄을 찬탄하며, 정토왕생을 간절히 발원하는 정토적 귀의사상이 한 화면에 모두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은해사 심검당에 모셔져 있었는데 도난되어 30여년 동안 행방을 알 수 없다가 다시 사찰 품으로 돌아온 성보문화재이다. 1750년에 조성된 이 그림은 현재 남아있는 조선후기 극락왕생도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고, 조선 전기와 후기의 극락왕생을 그린 불화의 연결고리와 같은 도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되어 2015년 보물 1857호로 지정되었다.

극락으로 왕생하는 방법은 왕생자의 근기에 따라 9개의 등급으로 나뉘는데 ‘관무량수경’에 의하면 상품에 속하는 왕생자들은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대동하고 아미타부처가 직접 나타나 큰 광명을 놓아 극락국토로 맞이한다. 중품에 해당되는 왕생자들은 아미타불이 놓은 금색광명을 따라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만나게 된다. 하품의 왕생자들은 온갖 악법과 죄업을 짓고도 자신이 옳다고 하다가 숨이 끊어지려 할 때 지극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 부르던지 선지식에 의해 아미타불의 법문을 듣게 되면 그 순간 죄가 소멸되어 화신불과 화신보살이 그 사람을 영접한다. 이처럼 다양한 극락왕생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는 ‘열반진락 무궁하다 닦는 법이 허다하나 그중 제일 정토법문 간단하고 첩경이다. 서방정토 극락세계 황금으로 땅이 되고 하늘풍류 들리오며 아미타불 주인 되고 관음세지 보처되어 구품연대 벌려놓고 염불중생 데려다가 연꽃 중에 화생하니’라는 왕생가의 가사와도 도상의 내용이 잘 부합된다. 화면의 구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화면의 하단에는 반야용선과 연화화생을 통해 극락세계에 도착하는 두 부류의 왕생자들이 있다. 화면 상단에는 왕생자를 맞이하는 아미타삼존과 영락으로 장식된 연화대를 운반하며 하늘 풍류를 연주하는 주악천녀들 그리고 칠보조화로 장식된 누각이 보인다.

향 우측 연꽃이 핀 칠보의 연못에는 각각의 근기에 따라 9품으로 연화화생하는 장면이 있는데 연꽃 위 두 손을 모으고 앉아 있는 아홉 인물의 형상은 ‘근수정업왕생첩경도’의 왕생자들과 같이 상품의 인물은 보살형으로, 중품과 하품은 승려의 모습을 하였다. 연못의 위 누각에 앉아 있는 아미타불과 관음, 세지보살의 손에서 나오는 투명한 기운은 왕생자들을 맞이하는 금색광명을 표현한 것으로 그에 대한 설명이 ‘아미타불현전접인염불중생(阿彌陀佛現前接引念佛衆生)’라고 방기로 쓰여 있다. 화면 중앙 구름을 타고 강림하는 아미타불과 권속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반야용선에 승선한 왕생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지극한 정성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하여 극락왕생하는 중생을 바라보는 아미타불과 권속들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지고 시선에는 자애로움이 느껴진다.

▲ 반야용선, 그림 2 세부.

화면 향 우측 하단에 그려진 반야용선을 이용해 극락정토로 나아가는 장면은 그와 관련된 신앙과 도상이 정립되면서 ‘반야용선도’라는 독립된 제목으로 그림이 그려질 만큼 조선후기 대중적 인지도가 높았던 그림의 소재였다. 고려시대부터 반야용선이 그려진 예가 있긴 하지만 많은 왕생자들을 극락세계로 이끌어주는 반야용선 특성은 신앙의 저변이 확대되고 대중적 색채가 강해지는 조선후기 신앙과 잘 맞았기 때문에 조선 후기 불화에 더 많이 보인다. 머나먼 천상의 극락정토를 향해 나아가는 반야용선에는 바람에 한껏 부푼 돛이 달려있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하다.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는 뱃머리에는 인로왕보살이 아닌 관세음보살 서서 왕생자들을 인도하고 있고, 배의 후미에는 대세지보살이 삿대를 손에 쥐고 갈 길을 조종한다. 아미타불의 두 협시보살이 이끄는 배에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한 수많은 왕생자들이 탑승하고 있다. 나아가는 곳이 어딘지를 아는 듯 뒤돌아 그들을 바라보는 관음과 눈을 맞추며 웃고 있는 인물도 있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듯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넘실대는 파도를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인물도 있어 보는 이의 재미를 더한다.

삶을 마감할 때 선업을 많이 짓고 계를 잘 지켜낸 상품상생의 인연들은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대동한 아미타부처님이 직접 모습을 나타내 왕생자를 맞이한다. 그렇지만 어리석은 중생과 같은 하품의 인연들은 화신불과 화신보살이라는 아미타부처님의 대리인을 통해 정토로 안내된다. 그림으로 구분 지으면 오로지 한 명의 왕생자를 위해 아미타삼존이 직접 모습을 나타내어 극락정토로 영접하는 고려 아미타내영도와 반야용선에 빽빽이 타고 정토를 향하는 반야용선도와 같은 차이일 것이다.

필자처럼 배 멀미가 심한 사람은 지금이라도 열심히 선업을 닦고 부지런히 아미타부처님을 염불하여야 극락정토를 향한 대중적 이동수단인 반야용선을 벗어나 금빛광명을 따라 순간 이동하여 극락왕생하는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인데 본성이 게으르고 총명치 못해 자꾸 잊어버리니 걱정이다. ‘나무아미타불.’

정진희 문화재청 감정위원 jini5448@hanmail.net
 

[1403호 / 2017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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