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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수보리와 평등법-하

기자명 이제열

외도 스승으로 섬기다 지옥에 함께 가라

“(유마거사가) ‘수보리여, 부처님과 법을 만나지 못하고 6명의 외도들을 스승으로 삼고 출가하여 그들이 태어난 나쁜 곳에 함께 태어날 수 있다면 당신은 신도들의 밥을 받을만한 수행자입니다. 또한 수보리여, 당신에게 보시한 이를 복전으로 여기지 않고 당신에게 보시한 삶들은 악도에 떨어지며, 모든 마군들과 행을 함께하며, 모든 중생들을 원수라 여기고 삼보를 비방하여 열반에 들 수가 없다면 밥을 받을만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때 유마힐로부터 이 같은 말을 듣고 그 의미를 알지 못하여 밥을 얻으려는 생각을 버렸습니다. 그러자 유마힐이 ‘수보리여 두려워말고 밥을 받으십시오. 모든 것이 공하여 밥은 허깨비와 같습니다. 온갖 언어와 문자도 환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본래 해탈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저는 그의 병을 위문 할 수 없습니다.’”

외도 따르라는 건 유마의 역설
공·불이사상 깨쳐주려는 배려
대승선 모든 본성에 차이 없어
모든 존재들엔 공의 원리 담겨

다른 불교경전들과는 달리 ‘유마경’에는 그동안의 상식을 뛰어넘는 반어법들이 등장한다. 유마거사는 수보리에게 6명의 외도들을 스승으로 섬기고 그를 따라 지옥에 함께 떨어지라고 말한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신도의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외도란 누구인가? 곧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어긋난 주장을 하는 종교가나 수행자들이다. 부처님 당시에 수많은 외도들이 활동을 했는데 ‘푸라나 카사파’ ‘막카리쿠살라’ ‘산자야베라리풋타’ ‘파쿠다 카차나’ ‘아지타 케사캄바라리’ ‘니간타나다풋타’ 등은 대표적 외도들이다. 이를 경전에서는 육사외도(六師外道)라 부른다. 이들은 주로 유물론적 견해로 인과를 부정하고 윤리를 무시했다. 이들 가운데에 파쿠다 카차나 같은 외도는 설혹 누가 칼로 사람을 죽여도 이는 단순히 물질이 물질만 통과한 것으로 실상 생명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죄가 없다고까지 주장하였다.

그런데 유마거사는 수보리존자를 향해 부처님을 버리고 이런 외도들을 따라 출가하여 같은 길을 따르라는 것이다. 어째서 유마거사는 수보리존자에게 이치에 부합되지 않은 주장을 하는 것일까? 수보리존자에게 진실로 살인이라도 해보라는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 유마거사가 수보리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그런 의미
가 아니다. 유마거사는 수보리에게 공(空)과 불이(不二)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이다.

공과 불이의 도리에서 보면 일체 만법의 본성은 동일하다. 중생의 시각으로는 불법이 있고 사법이 있으며, 정도가 있고 외도가 있다. 불법과 사법, 정도와 외도는 전혀 상반된 가치이다. 하지만 일체 만법이 공하고 불이한 입장에서는 불법과 사법, 정도와 외도는 본성에 아무런 차별을 지니지 않는다. 불법이건 사법이건, 정도건 외도건 그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면 이들이 모두 공한 것들이며, 상대에 의해 나타난 실체가 없는 것들이다.

다시 말해 부처님 가르침인 불법은 외도들의 가르침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로소 불법일 수 있으며, 외도들의 가르침은 불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로소 외도들의 가르침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저것으로 인하여 이것이며, 저것은 이것으로 인하여 저것일 수 있다. 이렇게 이것과 저것은 서로 반대이며 대립 관계에 놓여 있는 것 같아도 실상에 있어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불이의 측면에서는 모두가 홀로 서 있지 못하는 공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불이와 공의 도리에서 보면 일체의 모든 존재들은 불이와 공의 원리를 머금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모두가 불법 아님이 없게 된다. 혹 삼보를 비방하고 극단적으로 살인을 했다 해도 불이와 공의 측면에서는 부처의 법을 떠난 게 아니다. 진정한 불교는 불교 속에 갇혀있는 가르침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만물과 중생과 이들이 일으키는 8만4000가지의 생각과 행위들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부처님과 부처님 가르침 속에만 진리가 있다는 수보리를 향해 유마거사는 불법의 이치는 세상의 마군들 속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403호 / 2017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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