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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오현 스님의 ‘내가 죽어보는 날’

기자명 김형중

지인 부음 받는 순간 죽음 체험하고
지난날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

부음(訃音)을 받는 날은
내가 죽어보는 날이다

널 하나 짜서 그 속에 들어가 눈을 감고 죽은 이를
잠시 생각하다가
이날 평생 걸어왔던 그 길을
돌아보고 그 길에서 만났던 그 많은 사람
그 길에서 헤어졌던 그 많은 사람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
나에게 꽃을 던지는 사람
아직도 나를 따라다니는 사람
아직도 내 마음을 붙잡고 있는 사람
그 많은 얼굴들을 바라보다가

화장장 아궁이와 푸른 연기,
뼛가루도 뿌려본다

부음 받고 직접 관에 들어가서
자기 살아온 과거 반추해 보고
마지막 화장해 뼛가루 뿌리는
과정 모두를 사실적으로 묘사

필자는 죽음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살 일도 바쁘고 복잡한데 죽는 일까지 끌어들여 심난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스님처럼 죽어보고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은 안 하려고 한다. 괜히 그런 생각을 하면 이 염천 더위에 인생이 무상하고 허무해진다.

오현 스님(1934~현재)은 생사의 문제를 가지고 평생 화두 삼아 수행을 하는 전공자이니 죽어도 보고 살아도 보고, 엎어보고 뒤집어 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생사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가르침을 받겠다고 찾아온 사람에게 한 말씀을 해 줘야 체면도 서고, 걸사(乞士) 비구로서 밥값을 할 것이다.

불교 수행의 목표가 생사의 해탈이다. 살고 죽는 일에 자유로운 사람은 얼마나 당당하고 행복하겠는가? ‘금강경’에 “집착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참 진리를 볼 수 있고, 부처를 만날 수 있다”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고집에 얽매어 바둥바둥 살아간다. 권력을 가진 자도 그것을 잃을까 쩔쩔매고, 돈이 많은 재벌들의 마음도 보통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일 일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죽는다는 것이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죽음을 향하여 나아간다는 사실이다. 한 번 왔다가 가는 일기인생(一期人生)이다. 이 명료한 진리를 안다면 남을 괴롭히는 일을 하면서 살지 않을 것이다. 서로 도와주고 사랑하면서 알콩달콩 살 것이다.

다 죽는데 나만 절대 죽지 않는다는 수자상(壽者相)의 착각과 집착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다. 매일 아침이면 살아났다가 밤에는 자면서 죽는다. 우리의 생각도 생겨났다가 소멸하는 반복이다. 삶과 죽음은 순간순간 반복되다가 부음을 전하는 부고장을 내는 순간이 삶의 종착역이다.

‘내가 죽어보는 날’의 시에서 시인의 죽음체험은 지인의 갑작스런 부음을 받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관(棺)에 들어가서 자신이 살아온 지난 과거를 반추해보고, 마지막 화장하여 뼛가루를 뿌리는 일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3연 “화장장 아궁이와 푸른 연기/ 뼛가루도 뿌려본다”에서 절정을 이룬다. 화장터 아궁이 푸른 연기 속에서 막 나온 자신의 뼛가루를 뿌리는 가상 사자(死者) 시인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온 몸에 전율을 느낀다.

2연 “널 하나 짜서 그 속에 들어가 눈을 감고 죽은 이를/ 잠시 생각하다가/ 이날 평생 걸어왔던 그 길을/ 돌아보고 그 길에서 만났던 그 많은 사람”을 대하는 순간 그 동안 살아온 과거사가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 시를 읽으면서 스님께서 평소에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인생이 별 것 있어? 남의 눈에서 눈물 나지 않게 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함께 살면 사람다운 삶이지.”  .

8월6일이 하안거 해제일이다. 백담사 계곡의 시냇물소리에서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다”라고 설법하는 스님의 사자후를 듣는다. 염천 더위에 독자에게 깨우침을 선물해주는 좋은 시다. 지난 날 나의 삶을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철리시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03호 / 2017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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