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했던 아버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불자로 성장
로터스월드서 비전 발견
초등학교 5학년 되던 해 고향인 완도를 떠나 광주로 유학을 왔다. 광주로 이사한 후 주말이면 형과 누나를 따라 충장로에 위치한 원각사를 다녔다. 또래들과 어울려 절 마당을 뛰놀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으로 익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 중학교는 미션스쿨이었다. 당시 모든 미션스쿨이 그러했겠지만 일주일에 한 시간씩 종교활동에 강제로 참여해야 했고, 스스로 불자라 여겼던 나에겐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조선대에 진학했다. 대학진학 당시는 군부독재 정권이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때였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많은 대학들의 시위문화가 점차 바뀌었지만 내가 다니던 대학의 시위문화는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집회나 시위를 때면 최루탄이 날아왔고, 돌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저항했다.
그렇게 대학생활은 집회와 시위의 연속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통일선봉대에 참여해 보름간 전국을 다녔는데 통일선봉대 대장이 지금의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이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었다. 먼발치서 스님을 뵈면서 ‘스님도 이런 운동을 하시네’라며 의아해했다. 그렇지만 지선 스님을 모시고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1994년 한총련 출범식이 조선대에서 열려 한 달여 동안 집에 가지 못했고, 쌀 수입 개방 저지를 위해 서울로 상경하기도 했다. 1995년에는 5·18민주화운동 공소시료 만료에 따른 특별법 제정과 특별검사 도입을 위해 여의도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1996년 연세대 사태를 앞두고 군대에 갔으니 입대하지 않았다면 아마 구속되지 않았을까 싶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건만 졸업과 취업은 견디기 힘든 시련의 연속이었다. 설상가상 외환위기 사태로 취업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다. 더욱이 대학 4년간 학업은 뒷전이고 매일 거리에서 최루탄과 살았으니 기업체에서 뽑아줄 리 만무했다. 고민 끝에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지인의 소개로 면접을 보게 됐고, 인연을 맺게 된 곳이 실천불교전국승가회다.
입사 당시 대한민국은 참여정부시절이었다. 실천승가회도 이전의 운동에서 벗어나 새로운 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던 때였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지금 몸담고 있는 국제개발NGO 로터스월드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간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함께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공존한다. 실제 로터스월드가 걸어온 길이 그랬고 시행착오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로터스월드를 발전시키면서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신뢰를 버리지 않은 스님과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404호 / 2017년 8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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