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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어머니 이사도라 던컨

“아기를 보는 순간 나는 모든걸 보상받았다”

▲ 그림=근호

이사도라 던컨(1877~1927)의 생애에 평범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격식을 중시하는 발레에 저항하며 심장 한가운데에서 우러나오는 자유를 춤추었던 그녀의 삶은 언제나 비범했고, 어디서나 새로웠다. 심지어 그녀는 죽음까지도 특별했다. 목에 두르고 있던 붉은 스카프 자락이 자동차 바퀴에 휘감겨 목이 부러져 죽었던 것이다.

자유로운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
결혼을 여성 억압으로 여겼지만
세 아이 낳으며 생명 경이 느껴
아이 눈에 비친 어머니는 눈부처

여성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웠던 시기에 그녀는 가정주부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또, 그녀는 돈보다는 예술을, 내일을 위해 살기보다는 오늘을 불태우며 살았다.

마지막에는 러시아 시인 예세닌과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그 이전까지 그녀는 결혼을 여성에 대한 억압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여러 남자를 사랑했고, 세 명의 아기를 출산했다.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무용가인 그녀에게 끔찍한 일이었다. ‘아름답고 매끈하던 몸이 부풀어올라 흉해졌다’고 그녀는 자서전에 썼다. 그녀는 생명을 갖는 것의 두려움, 그리고 출산의 고통과 기쁨에 대해서도 기술했다.

“우리는 어느 날 오후 차를 마시려고 모두 함께 앉아 있었다. 그때 나는 누가 내 등줄기를 쾅! 하고 세차게 내려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는 무서운 고통이 다가왔다. 마치 척추를 면도날로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었다. 고문이 시작되었다. 나는 거세고 무자비한 사형 집행인의 손에 맡겨진 가련한 죄수 신세였다. 하나의 고통이 좀 가라앉는가 싶으면 뒤이어 또 다른 고통이 엄습해왔다. 스페인 종교 재판소의 고문이 무서웠다지만 이보다 더했으랴!

임신의 고통은 분만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정없는 것, 무자비한 것,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다. 동정도 없이 이 끔찍함, 보이지 않는 바퀴가 나를 손아귀에 쥐고 내 뼈와 살이 바스러질 때까지 주먹을 쥐는 것 같은 형국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고통은 곧 잊게 마련이라고들 말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대답하겠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 내가 내지른 무서운 비명, 그 신음소리가 들려온다고.

이틀 낮밤 동안 무시무시한 고통이 계속되었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의사가 커다란 겸자를 들고 나타났다. 마취제도 없었다. 마치 도살당하는 것 같았다. 그 괴로움을 무엇에 비유할까. 기차바퀴에 깔리는 고통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 고통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났다. 아기를 보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을 보상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 아기! 아기는 놀라운 존재였다. 푸른 눈에 커다란 갈색 머리를 한 큐피드 같은 모습이었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아기가 입으로 나의 젖가슴을 더듬고 잇몸으로 젖꼭지를 물어대며 젖을 빨 때 나는 기적의 경이로움을 느꼈다. 아기의 입이 젖꼭지를 물고 젖이 솟아오를 때의 느낌을 이야기한 어머니가 있었던가. 무자비하게 깨물어대는 아기의 입은 마치 연인의 입처럼 느껴졌다.

오, 여신이여, 이 기적이 존재하는데 무엇 때문에 변호사가 되고, 화가, 조각가가 되려고 애쓴단 말인가? 나는 이 거대한 사랑이 이성에 대한 사랑을 능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명! 생명! 나에게 생명을 다오! 오! 나의 예술은 모두 어디 갔는가? 내가 무엇 때문에 예술이 어찌되든 상관한단 말인가? 나는 내가 신처럼 느껴진다. 어떤 예술가보다 위대한 존재로 느껴진다.

처음 몇 주일 동안 나는 아기를 팔에 안고 아기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어떤 때는 아기의 눈에 내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 눈 속에는 신비로운 삶을 아는 듯한 지혜로움이 반짝였다. 내 시선에 대답하는 새로 창조된 이 조그만 몸속에 깃든 영혼의 눈길은 아주 나이 든 눈길이었다. 그것은 영원의 눈길이었다. 사랑이 담긴 그 눈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다. 사랑, 이것이야말로 모든 것의 대답일 것이다. 무슨 말로 이 기쁨을 표현할 수 있으랴?”

그렇게 이사도라 던컨은 세 아이를 낳았다. 그중 막내는 태어나자마자 곧 죽었고, 두 아이는 한창 예쁘게 자라던 도중 불의의 사고로 죽고 말았다. 그 소식을 들었던 때를 그녀는 이렇게 묘사했다.

“그때 나의 온몸을 에워쌌던 이상한 정적감이 기억난다. 불붙은 석탄덩어리를 목에 삼킨 것 같은 뜨거움이 느껴졌다. 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소식을 전한 사람을 위로하며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내가 충격으로 미쳐버릴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일종의 고양 상태에 놓여 있었다. 나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 모든 사람을 위로해주고 싶은 거대한 욕망을 느꼈다.

어머니는 평생 두 번 운다. 자식이 태어날 때와 자신이 죽을 때가 그때이다. 내가 그 작고 차가운 아이들의 손을 잡았을 때 나는 가슴속으로부터 들려오는 나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태어날 때 들었던 그 울음소리였다. 어째서 두 울음소리가 같은 것일까? 인간은 최상의 기쁨과 가장 처절하고 슬플 때 똑같은 울음을 운다. 나는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같은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 이 세상에는 슬픔, 기쁨, 황홀, 괴로움을 함께 담고 있는 하나의 큰 외침, 새 생명을 만드는 어머니의 외침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어머니가 위대한 것은 자식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기 때문이다. 여자로서의 그녀는 남자로서의 어떤 인간과 마찬가지로 욕망을 추구하고 자기 소유에 집착하는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로서의 그녀는 전혀 다르다. 그녀는 남자로서의 시인 예세닌 못지 않게 위대한 여자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이 될 수 있지만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그녀는 이미 시인이고 예술가이다.

그녀는 극심한 고통을 감내하며 생명을 출산한다. 그러나 고통이 끝나고나서 그녀가 보는 것은 아기의 눈동자에 비친 ‘신비로운 삶을 아는 듯한 지혜로움의 반짝임’과 그것의 어리면서도 ‘나이든 눈길’과 그 눈길의 ‘영원’이다. 그것은 ‘모든 것의 대답’인 ‘사랑’이고, ‘기쁨’이다.

어떤 사람의 눈에 비친 사람의 모습을 ‘눈부처’라고 한다. 왜 그 모습에 부처님이라는 가장 존귀한 명호가 붙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부처님을 존경하고 흠모하는 나라고해도 그 눈부처가 엄마 눈에 비친 아기의 모습일 경우 나는 그 이름이 적절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따라서 그 생명을 낳는 어머니는, 생명이 마땅히 가야할 길을 밝히신 부처님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이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404호 / 2017년 8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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