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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오숙진

기자명 구담 스님

21세기 조형언어로 고집멸도 이미지화

▲ manda_la 26, ink on paper, 76.5×56cm, 2015.

현대인들에게는 인격화된 붓다라는 전통적 도상보다는 붓다의 철학을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것이 오숙진 작가의 작업이다. 그의 작업은 회화라기보다는 소묘, 드로잉에 가깝다. 안료 물감으로 색채를 입히는 대신, 염료 잉크로 무수히 그은 선들이 다소 추상적인 검은색이다. 검은색의 명료함이라서 가볍지 않고 고요하고 반성적인 감흥이다.

본질은 변한다는 무상 진리
기존의 만다라 형태 벗어나
검은색의 열린 구조로 표현

오숙진 작가에 따르면 인도 북동부 다르질링의 티베트 불교사원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마침 사원 내부에 울긋불긋한 형태의 불교 도상으로 장식된 벽화를 그리는 모습을 보았다. 대단히 매력적인 형태와 색채였으나, 이미 만들어진 도안을 벽에 옮겨 그리고 그것을 채색하는 과정이었기에 화가의 창의적 역할은 극히 미흡했다. 이와 관련 ‘이것은 예술이 아닌 장인에 가까운 보존·전승되는 전통일 뿐이 아니냐’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작가의 고민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왜 21세기의 조형언어로 불교의 철학 세계를 이미지화할 수 없을까.

‘만다라(Mandala)’는 우주 법계의 모든 덕을 나타내는 불교 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중심으로부터 반복, 확장되어 나가는 추상적 형태 속 어디에 삼라만상의 진리가 표현되어 있는지에 대한 원초적 질문이다. 오숙진 작가에게 만다라, 즉 ‘우주적 진리’는 무엇이고 어떤 형상이어야 하는가의 화두는 바로 무상(無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항상 하지 않다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시간 속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만다라와 무상은 의미적으로 서로 무관하지 않다. 고대 인도인들의 제사 언어에서 유래하는 ‘Manda’는 ‘본질’을 의미하고, ‘la’는 ‘얻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해석에서는 la는 ‘변한다’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해석되어, 작가의 세계인 무상의 의미와도 적절히 상통한다.

Manda_la 시리즈에서 ‘무상(無常)’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을 때의 모습처럼 앉아있는 인물의 형태로 표현된다. 인물을 규정하는 검은 선과 면은 끊어지는 듯 이어진 하나의 열린 덩어리로,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 의지하며 ‘나’ 라는 조화를 이끌어낸다. 이렇듯 작품 ‘무상’은 완결되지 않은 인물, 확정되지 않은 인물, 그래서 그것이 기원한 우주로 언제든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는 열린 구조의 형상으로 표현된다.

불일미술관은 10월31일~11월13일 오숙진 작가의 ‘Manda_La 명상의 시간’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 자리는 현대 미술의 미적 측면만을 감상하는 전시가 아닌 관객이 전시를 통해 성찰의 시간을 탐색하고 명상에 집중할 수 있는 ‘설치적 공간’으로서의 전시를 진행하고자 한다. 분주한 도시의 삶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란 쉽지 않기에, 현대 미술의 언어로 재탄생한 붓다의 가르침과 그 철학을 회화라는 감상을 넘어 체험의 장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붓다의 21세기적 도상과 고집멸도(苦集滅道) 등 붓다의 핵심철학을 다루는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과연 우리의 마음 속 불변에 대한 기대와 욕망이 생겨나는 스스로의 불확실함은 어디인지, 진정 이해하게 되었다. 중심으로부터 중중무진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불교 도상 만다라가 결국은 세계의 변화와 그 순환적 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이다.

구담 스님 불일미술관 학예실장 puoom@naver.com

[1404호 / 2017년 8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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