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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부루나와 설법

기자명 이제열

“더러운 음식을 보배그릇에 담지 마십시오”

부처님은 부루나에게 유마힐의 병문안을 가라고 말씀하셨다. 부루나는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의 병문안을 갈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제가 옛적에 숲 속에서 갓 출가한 비구들을 위해 설법할 때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루나존자 비구들에 법문할 때
유마거사 대승입장서 설법 지적
모든 중생은 거지 아닌 대부호
중생 근원 알고 설법할 것 권유

“부루나님, 설법을 할 때에는 먼저 선정에 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관찰한 후에 설법을 해야 합니다. 더러운 음식을 보배그릇에 담지 마십시오. 유리를 수정처럼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이 중생의 근원을 알지 못하면서 소승법을 설하면 안 됩니다. 이 사람들은 본래 상처가 없는데 상처를 내고 있습니다. 이 비구들은 오래 전에 이미 대승의 마음을 일으킨 이들입니다.”

그리고는 비구들을 위해 삼매에 들어 지나간 세상일을 알게 하였으며, 그들이 즉시 본래의 마음을 얻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비구들은 유마힐의 발에 정례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부터 물러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성문들의 근기를 관찰하지 못하고 설법해서는 안 되는 줄 알았기에 병문안을 갈 수 없습니다.


부루나존자는 설법제일의 부처님 제자다. 그는 고향인 수나파란타국의 수파라카에 가서 법을 전하다가 순교를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신참 비구들을 위해 설법을 많이 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부루나존자가 어느 날 평소대로 신참 비구들을 위해 법을 설했다. 유마거사의 지적에 비추어 본다면 그는 신참비구들을 향해 오온·십이처·십팔계가 생멸하고 더럽고 괴로운 것이니 마침내 이들을 떠나야 한다는 내용의 법을 설했을 것이다.

이런 그에게 유마거사는 대승의 견해로써 그의 설법 내용을 비판한다. 먼저 유마거사는 남에게 법을 설하기 위해서는 선정의 경지에서 법을 듣는 이들의 근기와 기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법을 설해야 한다고 말한다. 설법은 법을 설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듣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마거사가 볼 때 설법을 듣는 신참 비구들은 소승의 근기와 기질을 소유한 이들이 아닌 대승의 기질과 근기를 지닌 자들이다. 대승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들은 부처의 과위를 얻어야 할 이들로 보배 그릇과도 같다. 보배그릇에는 진귀한 음식을 담아야지 거지가 먹는 음식을 담아서는 안 된다. 소승법에서는 이 세간 즉, 오온이나 십이처나 십팔계를 생멸하고 더럽고 고통스러운 존재들로만 여긴다. 그러다보니 소승법의 인생과 세계관은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적 경향을 띤다.

소승의 가치로 세상을 관찰하면 중생은 몸과 마음을 지니고 세상에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발견할 수 없다. 열반을 성취하여 더 이상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있을 뿐이다. 유마거사는 소승의 이 같은 가치관을 더러운 음식에 비유하고, 법을 듣는 신참 비구들의 기질과 근기들을 보배그릇에 비유한다.

유마거사의 눈에 중생과 세계는 생멸이 없고 청정하며 환희가 넘친다. 중생은 중생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며, 사바세계는 사바세계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생의 본성은 이미 부처님이며 세상은 부처가 머무는 정토이다. 중생과 세계의 근원은 무명이나 죄업이나 번뇌가 아니라 부처님과 같은 지혜이며 공덕이며 보리인 것이다. 중생은 보기에만 남루한 옷을 걸친 거지의 모습이지 진실에 있어서는 대부호이다.

근래에 들어 남방 상좌부 계통의 수행단체에서 공부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대승을 비불설로 취급하면서 대승의 가치를 폄하하고 오로지 상좌부불교의 설법만이 진실이라고 외친다. 과연 그러할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불교가 발전하고 세상에 큰 이익을 주기 위해서는 대승의 가르침이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과 세상을 부처의 공덕장으로 여기고 이 속에서 보살도를 닦는 삶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다. 생멸이 본래 불생멸이며, 더러움이 본래 청정이며, 무명이 본래 해탈이라는 대승의 가치관이 불자들의 가슴에 살아나야 한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404호 / 2017년 8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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