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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과 참회

명진 스님 ‘참회 단식’ 강행
종단 소임자 반감 있더라도
불교적 방법으로 갈등 풀어야

강남 봉은사 주지와 종회의원 등을 지낸 명진 스님이 8월18일 ‘참회 단식’에 들어갔다. 조계사 옆 우정총국 자리에 마련한 천막에서 스님은 방문객들을 만나며 허기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단식의 종교적 연원은 깊다. 로마 가톨릭은 부활절을 앞두고 단식하며, 이슬람교는 라마단 한 달 동안 대낮에 식음을 전폐한다. 인도 브라만교와 중국 도교에서도 단식을 수행법의 하나로 활용한다. 그렇지만 불교는 단식을 그리 강조하지 않는다. 부처님이 출가 후 6년간 뼈가 선연히 드러나도록 단식에 가까운 고행을 했지만 수자타의 유미죽 공양을 받으며 중도를 취했다. 극단이 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단식은 종교인보다 정치인들의 퍼포먼스나 생명을 건 노동자들의 저항이라는 이미지가 크다. 하지만 단식과 달리 참회에 있어서는 불교가 가장 앞서 있다. 포살(布薩)과 자자(自恣)는 초기불교 때부터 중시됐던 참회방법이다. 포살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허물을 다른 이들 앞에 드러내고 참회하는 것이라면, 자자는 다른 이들의 지적을 받아 참회하는 방식이다. 포살과 자자는 출가자의 청정성을 이끌 뿐 아니라 승가라는 공동체 존속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승불교에서 참회 중요성은 더욱 강조됐다. 참회라는 행위를 통해 최고의 지혜와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이종참회, 삼종참회, 삼품참회, 육근참회 등으로 세분화됐고, 종파 및 출재가자에 따라 다양하게 실천됐다. 알게 모르게 지은 행위에 대한 참회가 선행돼야 하고, 그럴 때 참다운 발심이 이뤄져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게 불교의 사상이다.

원효대사는 ‘발심수행장’에서 “계를 파하고 다른 사람들의 복전이 되겠다는 것은 날개 부러진 새가 거북이를 업고 하늘을 나르려는 것과 같다”고 했다. 계행이 청정해야 중생구제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회가 출가자에게 더욱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교사에는 참회와 관련된 고승들의 얘기가 많이 등장한다. 통일신라시대의 진표 스님은 온몸을 바위에 내던져 손과 발이 부러져나가는 과격한 참회를 했으며, 근대 중국불교의 중흥조인 허운 스님은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참회와 극락왕생의 마음을 담아 보타락가산에서 오대산까지 무려 4000km에 이르는 거리를 3년간 삼보일배로 횡단했다. 조계종 정화불사의 주역인 청담 스님도 치열한 참회수행자였다. “가문 이을 씨앗 하나만 심어놓고 가라”는 어머니의 한 맺힌 절규를 외면하지 못해 하룻밤을 파계한 뒤 홑옷에 맨발 차림으로 북간도까지 만행을 다녔다. 수좌들 사이에서 ‘눈 위에 피 묻은 발자국이 있으면 청담 스님이 다녀간 자리’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청담 스님의 참회는 진실했고 처절했다.

▲ 이재형 국장
명진 스님은 삼천배라는 전통적인 참회방법 대신 무기한 단식을 택했다. 요구조건을 내세우며 진행하는 참회가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에 대한 통렬한 반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렇더라도 참회는 불교공동체의 기본 원리다. 종단도 서운함과 반감을 내려놓고 참회의 자세로 이번 사태에 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로의 허물을 돌아보고 감싸 안으려는 가장 불교적인 방법에서 이번 갈등을 풀 수 있는 해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405호 / 2017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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