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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같은’ 청년 노동자들 죽음

기자명 이중남

시민단체 활동을 해 온 기간 내내 네팔과 인연이 유독 깊었던 탓에 네팔인들 관련한 소식을 들으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그런데 요즘 부쩍 애석한 소식들이 줄을 잇고 있어 심난하다.

지난 5월12일 경북 군위군에 있는 한 농장에서 돼지 분뇨를 치우던 네팔 이주노동자 두 명이 사망했다. 돼지 분뇨를 모으는 땅속 집수조에는 맹독성 가스가 차있기 때문에 보통은 기계로 청소하는데, 이 농장은 얼마 전 기계가 고장 난 뒤부터 사나흘에 한 번씩 이주노동자들이 수작업으로 청소해 왔다. 그날도 노동자 두 명이 맨몸으로 청소 작업을 하다가, 먼저 내려간 사람이 쓰러지고 그를 구하러 내려간 사람이 뒤따라 쓰러졌다. 숨 한 번만 맡아도 쓰러지는 고농도의 황화수소를 들이킨 탓으로 추정된다.

한 ‘진실탐사그룹’의 연재물은 군위 돼지농장 사고의 경위를 좀 더 소상히 파헤치고 있다. 그것에 따르면, 사고 뒤 네팔에서 온 유족(사망자의 형)을 처음 만난 사장 부부는 “그렇게 위험한 줄 몰랐다. 유족이 바라는 것이 있으면 다 해 주겠다”고 진지하게 사과했다고 한다. 그런데 보름 쯤 지난 뒤부터 말을 바꿔, 작업반장인 고참 테즈(25)가 신참 차우다리(23)를 골탕 먹이려고 분뇨 집수조에 들어가라고 강요하는 등 자기들끼리 다투다 발생한 우발사고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보상에 관한 합의절차도 멈췄다.

이 농장에서 일해 온 네팔 동료들은 본래 이곳을 그다지 나쁘지 않게 평가했다. 한국의 농축산 노동 실태를 감안하면 그래도 이 농장은 괜찮은 편이고 사장도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어에 능하고 성실한 테즈는 일한 지 6개월 만에 작업반장이 되었고, 얼마 전에 만기 3년을 채우고 성실근로자로서 1년 10개월 고용연장까지 받았다. 테즈를 ‘아들 같이’ 생각했다던 사장의 태도는 그러나 그가 사고로 죽은 뒤 돌변한 것이다.

테즈는 네팔 포카라 출신으로 삼형제 가운데 둘째였다. 그는 생전에 형제들에게 입버릇처럼 한국에 와서 일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실제로 테즈의 형과 동생은 한국어능력시험을 준비해 왔다. 그런 테즈가 돼지 분뇨에 빠져 죽었다면, 나머지 형제들은 이제 어떻게 할까? 동생은 아랑곳없이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했고, 형은 테즈의 시신을 수습하러 오느라 올해 시험을 포기하는 대신 한국어 교재를 지참해 와 틈틈이 공부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오늘, 국적에 따른 노동 분업의 현실이다.

현실적으로 한국어 시험에 합격하고 고용허가(E-9) 비자를 받는 것은 평범한 네팔 청년이 바랄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한국 청년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에 가는 것은 댈 게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호주의 워킹홀리데이 비자와 달리, 고용허가 비자로 한국에 온 청년들은 작업장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고용허가제가 처음 도입되던 2004년도에는 첫 1년 동안은 본국에서 계약했던 직장에 묶이더라도 나머지 2년간은 직장을 옮길 자유를 인정했지만, 2009년부터는 3년 내내 오로지 사업주에게만 계약해지의 자유를 부여할 뿐이다.

대상을 네팔로만 한정해도, 8월 들어서만 벌써 두 명이 한국의 직장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충주에서, 천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은 죽기 전에 여러 차례 고통을 호소하고, 잠시 쉬거나 직장을 옮기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네팔에 있을 때 한국이 좋다고 한국어 시험을 쳤고 근로계약에도 동의했으니까, 이들의 최종적 선택은 그저 개인 책임으로 돌려도 무방한 일인가.

요즘 우리 사회에서 ‘아들 같은’ 청년들에게 진짜 아들에게는 절대 안 할 짓을 서슴지 않는 ‘갑질’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국민’이 아닌 이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제도적인 갑질은 여전히 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이중남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운영위원 dogak@daum.net

[1405호 / 2017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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