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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위해 한 순간도 헛되이 말라”

  • 교계
  • 입력 2017.08.2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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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 하안거 해제법어

금년 하안거는 윤달이 있어 수행기간이 더 길어서 인지 해제의 분위기 또한 새로운 생기가 느껴집니다. 그 사유는 수행자에게는 오로지 알 수 없는 의문을 깨닫기 위한 끝없는 정진의 시간보다 더 귀중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마조 선사의 단순한 선(禪) 질문에 삼승교학공부(三乘敎學工夫)를 했던, 무업 스님이 문득 깨달음을 얻고는 큰 절을 올렸다고 하며, 법상 스님도 “마음이 바로 부처다(卽心是佛)”라는 말씀에 그 자리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깨달음의 근원이자 수행자들이 항상 궁구하고 있는 이뭣고(是甚麽)? 즉 의식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이 마음은 무엇인가?

불가에서는 깨달음의 비밀은 언어도단심행처멸(言語道斷心行處滅)이며, 사량분별(思量分別)이 끊어진 경계이기에 그 상태를 언어문자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근래에 와서 그 실체를 밝히고자 철학자, 심리학자, 정신의학자, 현대 생명공학 및 물리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부수행자들도 “깨침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찾아내어 보편화하고, 모두가 공유할 수 없을까?”하는 의지로 융·복합적인 다양한 접근방법으로 연구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학적 접근은 우주생성의 근원을 창조주(神)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과론으로 증명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의식은 물질을 가진 입자가 아니라 파동과 에너지라는 사고를 가지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믿고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 수행자들은 ‘자연’과 ‘나’는 하나라는 자타불이동체자비(自他不二同體慈悲)를 주장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목적지향적인 생각과 행동을 지속해야 되지요. 이러한 실천노력은 창조론이나 인과론 등과 같은 기계적 결정론을 거부하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의 힘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불교의 연기론적 인생관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21세기의 수행자는 새로운 인생관과 세계관을 열어 보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연기의 자각, 즉 깨달음의 실현을 해야 된다고 강조하는 의미와 지금여기 이 한순간의 중요하고 소중함을 헛되이 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경계의 뜻으로 감산홍각선사의 비한가(費閑歌) 게송 한 구절을 설하니 수행정진에 양약으로 삼기바랍니다.

염진용이출진난(染塵容易出塵難)
불단진노총시한(不斷塵勞總是閑)
정성반연공비역(情性攀緣空費力)
불성도과야도연(不成道果也徒然)
티끌세상에 물들기는 쉬우나 그 번뇌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번뇌를 끊지 못한다면 모두가 한량의 짓일 뿐이며 감정과 성품에 인연을 휘 잡히면 공연히 힘만 소비할 뿐 도과를 이루지 못한 헛된 일이로다.

불기 2561(2017)년 9월5일

[1406호 / 2017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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