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선원 회주 성관 스님
보현선원 회주 성관 스님
  • 정리=김형규 대표
  • 승인 2017.08.2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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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선택 속 연기적 지혜 있어야 바른 판단 가능”

▲ 성관 스님은 “부탄이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지도자의 지도력, 부처님과 스님들에 대한 굳건한 믿음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금강경’의 마지막 사구게에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연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易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뜻은 이렇습니다. “모든 유위법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 또 이슬과 같고, 번갯불과 같다. 그러므로 마땅히 이와 같이 봐야한다.”

삶은 탄생과 죽음사이서
계속되는 선택의 연속
유위적인 세계서 벗어나
본래 ‘나’ 없음 자각해야

부탄이 행복한 나라된 건
국민이 의지하는 지도자와
불교 향한 깊은 신심 비결
매 순간 연기적 사고만이
지혜로운 판단으로 이어져


지금 우리는 부탄에 와 있습니다. 고색 찬란한 불화들과 수많은 부처님들도, 그리고 아름다운 절들도 세월이 가면 사라질 것입니다. 영겁의 세월에서 보면 눈앞의 모든 것들이 그저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그림자 같은 것입니다.

부탄 국민들의 문화와 그 속에서 꽃 피운 상상의 질서들, 그리고 아름다운 신화와 전설들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은 함이 있는 법, 즉 유위법(有爲法)의 영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땅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해야 합니다. 모든 유위법은 응당 사라짐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에 의지하고 형제에 의지하고 친구에 의지하고 나라에 의지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 또한 결국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이슬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모든 것을 뿌리치라는 말은 아닙니다. 바로 살면서 삶이 이와 같음을 우리는 항상 직시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소중히 하는 모든 존재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서양의 위대한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1905~1980)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이란 B와 D사이에서 C의 연속이다.” 여기서 B는 탄생(Birth)입니다. D는 죽음(Death)입니다. 그러면 C는 무엇일까요? 바로 선택(Choice)입니다. 우리의 삶은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의 연속입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무수하게 이뤄졌던 선택의 결과입니다. 지금 부탄에 와 있는 이 순간까지도 각자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유의법의 영역입니다. 우리는 삶과 죽음의 선택을 넘어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영원한 세계,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바로 그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세계를 의지처로 삼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무위법의 세계입니다. 함이 없는 세계, 집착함이 없어 고통이 없는 세계, 그것이 바로 무위법입니다. 집착하고 욕망하면 번뇌와 고통이 생깁니다. 그것으로부터 자유스러운 세계가 바로 무위의 세계입니다. 여러분, 장시간의 비행일정으로 무척 피곤하고 힘든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룻밤을 푹 자고 나니 어떻습니까?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해졌습니다. 이렇게 순간순간 변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꿈과 같고 환영과 같은 것입니다.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나라는 왜 행복할까요?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모든 국민이 의지하고 존중할 만한 것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고 통일을 이뤄냈던 위대한 영웅이 있고, 왕의 자리를 내려놓고 스스로 입헌군주제를 도입해 정치를 국민들의 몫으로 돌렸던 지혜로운 왕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처님에 대한 깊은 신심은 이들의 의지처가 어디인지 명확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고통은 믿고 의지하고 신뢰할 곳이 없을 때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탄은 이런 절대적인 의지처와 귀의처가 있기에 비록 소수의 국민이지만 저 거대한 티베트를 상대로, 주변의 강대국들을 상대로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지도력, 부처님과 스님들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위대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특히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립공예예술학교에서 부탄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부탄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참으로 지혜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한때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부끄러워한 적이 있었습니다. 천하고 미개한 것으로 여겨, 버리고 숨겼습니다. 그 결과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이어갈 많은 장인들을 잃어버렸고 전통 또한 곳곳에서 끊겨버렸습니다. 이제는 과거 문화유산을 보전하기에도 버거운 실정이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부탄은 정부 차원에서 문화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탄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며 이것을 후대까지 이어가게 하겠다는 국가적인 노력입니다. 이런 자부심이 부탄 국민들의 행복 비결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부탄에도 자본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음을 나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을 위한 수많은 호텔들이 건설되고 있고, 사람들이 도심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과연 20년, 30년이 지나도 지금의 전통과 문화를 변함없이 지킬 수 있을지 우려가 없지 않습니다.

아메리카를 점령한 서양 사람들을 향해 어느 인디언 추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산에서 나무가 잘려나가고, 모든 강물이 더러워지고 마지막으로 고기가 사라진 뒤 너희들은 알 것이다. 우리가 돈을 먹고는 살수 없다는 사실을.”

지금 지구의 자원은 고갈되고 있습니다. 자연이 황폐화되고 물이 오염되거나 말라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과 물이 조화롭게 어울려 남아있는 부탄을 보며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떠올려봅니다. 이런 아름다운 나라도 자본주의 탐욕에 휩쓸리면 파괴되고 오염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다만 국립공예예술학교에서 봤듯이 부탄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려는 국가적인 노력이 이런 우려들을 불식시켜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존재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풀이하면 우리는 의지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태어났으니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결국 순간순간 판단과 그 판단에 따른 결과로 우리는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이데거의 말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에 빠져 있습니다. 따라서 불자라면 해답을 결국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상식은 끊임없이 변하고 바뀝니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자연의 법칙, 우주의 법칙을 통찰하신 분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자연은 연기(緣起)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연기합니다. 무수한 원인과 조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의존하면서 변해가는 것입니다. 부탄 국민들은 자국의 문화가 고유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근본을 따지자면 부탄의 불교와 문화는 모두 티베트를 통해 들어 온 것입니다. 티베트 스님들이 나라를 세우고,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여 오늘날 부탄의 역사와 전통이 성립됐습니다. 선행된 문명이 있었기에 그 위에서 더욱 발전적인 진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연기법입니다. 서로 의존하고 의지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 변화 속에 우리가 있습니다.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틀에서 우리는 하나의 생명입니다. 서로 싸우기도 하고 보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실로 안다면 서로의 생명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인연을 맺고 의존하며 변하고 있기에 주변의 변화가 곧 나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연기법, 인연법은 세상을 가장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목적의식도 없이 그냥 내던져진 존재입니다. 따라서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합니다. 매순간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도정(道程)입니다. 그 선택의 과정에서 우리가 연기적 존재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 바탕 위에서 균형감을 갖고 매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방거사의 오도송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시방동취회(十方同聚會) 개개학무위(箇箇學無爲) 차시선불장(此是選佛場) 심공급제귀(心空及第歸).” “온갖 곳으로부터 함께 모여서 저마다 무위의 법을 배우니, 여기가 바로 부처를 뽑는 곳이 아니던가, 본래 공함을 깨달아 무위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번 부탄 성지순례가 진정한 성지순례가 되기 위해서는 연기에 따른 무위법을 이해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본래 나란 것은 존재하지 않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본래 공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순간순간 상황에 집착하고, 감각기관과 환경에 의해 이리저리 비틀대지만 그럼에도 연기법에 따라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이번 성지순례가 선택의 순간마다 지혜로 번뜩이며 가장 바르고 좋은 결정만 내릴 수 있는 계기로 이어지길 기대해봅니다. 또한 부탄의 부처님과 절을 참배하며 가졌던 간절한 염원과 서원이 여러분의 기도와 수행, 정진 속에서 원만히 성취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정리=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이 법문은 8월14일~20일 광교산 보현선원의 부탄성지순례에서 회주 성관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405호 / 2017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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