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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가 기다리는 스님

“정토신앙 없는 한국불교는 짬뽕 없는 중국집과 비슷”

오늘은 비유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집이 있다고 합시다. 거기 메뉴판에는 짜장면, 우동, 탕수육, 양장피, 군만두 등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짬뽕이 없다고 합시다. 짬뽕이 없는 중국집이 있어도 좋을까요?

한국에선 염불 법문 제공 안돼
승가대학·불교교양대학도 홀대
다수 위한 정토 제시 없을 땐
중생들 다른 종교로 향할 것

더욱이 슬픈 것은, 그 점을 신경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사장님은 물론, 주방장님도 무심합니다. 그분들의 생각으로는 손님들에게 짜장면과 우동, 군만두 같은 것을 내놓고, 좀 더 잘 드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탕수육, 양장피 등의 고급스런 요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짬뽕은 잊히고 있습니다. 짬뽕을 찾는 손님들도 별로 없습니다. 메뉴판에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제 아래 겨우 주방보조로 들어온 신입사원 하나가 이 점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어찌 중국집에 짬뽕이 없을 수 있는가? 짬뽕도 있어야 한다. 손님들이 말은 안 해서 그렇지, 애당초 짬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예 다른 중국집으로 가고 말 것이다.

메뉴판의 음식 중에서 그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다 손님의 권리이자 선택이다. 그 점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메뉴판에 그 이름만은 올려놓아야 하는 것 아닐까. 짬뽕, 이렇게 짬뽕도 있다고 말입니다.

이런 불만을 갓 들어온 사원이 갖는 이유는, 어쩌면 그 신입사원이 짬뽕을 좋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몸담고자 하는 중국집의 미래를 걱정해서일 것입니다. 적어도 평등하게 메뉴판에 그 이름만이라도 올려놓자, 그렇게 염원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중국집은 우리 불교입니다. 짜장면, 우동, 탕수육, 양장피… 등 다른 메뉴들은 참선, 경전읽기, 주문, 위빠사나 등등 다양한 불교 수행법들입니다. 유독 없다는 짬뽕은 바로 정토신앙이고, 염불입니다. 손님들은 당연히 중생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를 통해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중생들에게 염불의 법문이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의 이런 평가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한번 따져보기로 합시다. 우선, 스님들의 기본교육기관을 한번 점검해 봅시다. 전통적인 강원(승가대학)의 교육과정(=이력)에서는 정토삼부경이 없습니다. 동국대 불교대학에서는 ‘정토학’이라는 과목이 개설됩니다. 그런데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2017년 1학기에는 수강생이 적어 폐강되고 말았습니다.

승가대학 이외에도 여러 불교학전문대학원들이 많습니다. 초기불전전문대학원이나 선학전문대학원, 화엄학전문대학원은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정토학전문대학원은 없습니다. 또 전국의 8개 총림에는 선원, 강원, 율원과 함께 염불원이 있어야 한다고 종법(宗法)에는 규정되어 있는 줄 압니다. 하지만, 실제로 염불원이 운영되고 있는 총림이 어디에 있는지, 또 거기에서 정토학이 어떻게 연찬되는지 저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스님들에게 정토삼부경의 교육이 제공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정토학을 공부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그 스님들로부터 교육을 받고 법문을 들을 신도들은 “나무아미타불” 이야기를 듣지 못합니다.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49재 등의 각종 불교의식에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따라합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믿음이 없이 하는 염불이 되고, 그러므로 지속되지 못합니다.

다시 재가불자의 교육기관을 살펴봅시다. 지금 포교사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소정의 불교대학(=불교교양대학)을 졸업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불교대학에서 정토삼부경을 가르친다는 소리를 저는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아직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사찰의 각종 법회를 보면, 대개가 종단의 어른스님들이 내리시는 법문은 그 내용이 참선과 관련합니다. 화엄이나 법화, 혹은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베풉니다.

모두가 성도문(聖道門)이고 모두가 자력의 길을 가르칩니다. 그 어디에서고 정토문(淨土門)을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합니다. 타력의 길은 대단히 듣기 어렵습니다. 듣기 어렵다는 정도에서 그친다면, 차라리 다행인지 모릅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가끔 정토법문을 의심하도록, 믿지 못하도록 하는 말씀이 베풀어지기도 합니다. 방편이라고 말입니다.

정토법문은 방편입니다. 그러나 방편이라고 본다면, 그 어떤 불교의 가르침이나 수행법도 다 방편입니다. 성불이라는 목적을 향해 가는 방편입니다. 방편은 방편이 베풀어져야 할 이유가 있어서 방편이 제시되는 것 아닐까요?

이런 형편이기에, 제가 감히 우리 중국집의 메뉴판에는 짬뽕(정토문)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한없이 넓고 넓지만, 우리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선과 염불이 가장 큰 메뉴라고 저는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이 중심이고 염불이 미미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될까요? 선이 법문의 80%를 차지한다면 그 선을 수행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는 중생들 역시 80%가 된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법문은 80%를 차지하고 있지만, 실로 그 법문을 감당할 수 있는 근기가 예컨대 20%나 30% 정도 된다면 그 차이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예를 들면 20%밖에 안 된다면, 60%의 중생들은 헤매고 만다는 것입니다. 제가 짬뽕이 메뉴판에 올라가야 한다는 것도 그 60%의 중생들에게 제시될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그 손님은 다른 중국집으로 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국집의 현실을 타파해 갈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겨우 며칠 전에 입사한 주방보조 하나만이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이 주방보조가 바로 저입니다. 저는 주방보조밖에 되지 못하므로, 밤낮으로 한탄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불교계 안에서 정토신앙의 현실 내지 현주소가 이런 형편이라 봅니다. 물론 개별 단위 사찰에서 염불하는 절이 없지 않습니다. 염불을 넓히려 애쓰는 스님도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터넷에서도 염불신앙의 모임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건대는 전국적인 규모에서 여론을 선도하거나 여론을 조성하는 데 역부족인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는 호넨(法然, 1133~1212) 스님이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호넨 스님은 바로 염불을 하나의 메뉴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 논리를 ‘선택본원염불집’(약칭, 선택집)으로 정리했습니다. 이분의 시대적 과제는 바로 ‘염불을 메뉴판 위에 올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2학기에 한국불교융합학과의 대학원 수업에서 ‘선택본원염불집’을 강의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정말 호넨 스님과 같은 스님은 언제 나타날까요? 목 빼고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스님, 어서 오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김호성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lokavid48@daum.net
 

[1405호 / 2017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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