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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한국불교사 시대구분론 ②

왕조중심 벗어나 흥망성쇠·분리통일 등 독특한 사관들 등장

 
1910년대 출간된 최초의 한국불교통사는 권상로(1879~1965)의 ‘조선불교약사(朝鮮佛敎略史)’(1917)와 이능화(1868~1945)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1918) 등 두 책이다. 이 두 책은 근대불교학의 성과로 분류되지만, 시대구분은 모두 전통적인 왕조 중심의 구분법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불교의 계몽운동과 불교사의 연구에 매진하였던 이들의 문제의식은 삼국·고려·조선 등 왕조 중심의 시대구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교학과 실천불교로 구분한
이능화 학설, 진일보 이론

불교쇠퇴의 유교 책임론은
개화지식인 특성이자 한계

권상로의 ‘조선불교약사’는
최초 불교통사로 평가받아

일본과 서양학자들이 인용
한국불교학의 선구적 저서

권상로 한국불교사 연구는
분리·통일 사관으로 발전

종헌제정 등 통합 긍정시각
총본산설치 기대감 이어져

먼저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 상편의 ‘불화시처(佛化時處)’에서 불교의 전래부터 20세기 초기까지를 왕조별로 구분하고 연대별로 서술하는 편년체를 취하였지만, 같은 책 하편 ‘입동방이백품제(入東方二百品題)’의 서문에서는 한국불교사를 5시기로 구분하여 삼국과 통일신라 500년간의 경교창흥시대(經敎創興時代), 신라말기(헌덕왕이후)부터 고려초기까지 200년간의 선종울흥시대(禪宗蔚興時代), 고려초기 이후 400년간의 선교병융시대(禪敎幷隆時代), 조선 500년간의 선교통일시대(禪敎統一時代 : 150년간의 禪敎衰微時代·350년간의 禪敎統一時代)로 나누고, 1911년 사찰령 반포 이후 일제강점기를 선교보수시대(禪敎保守時代)로 규정하였다.

이능화는 근대불교사에서 특히 조선총독부의 사찰령 반포, 30본말사제 시행, 선교양종의 이름아래 사법의 제정, 30본사연합사무소의 설치, 중앙학림 설립과 승려교육 실시 등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또 선교양종의 역사적 종지를 보수(保守)하고 다른 쪽에서는 시기에 맞는 교육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후의 불교를 판정하여 선교보수시대라는 명칭을 부친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당시대를 선교양종이 계승되어 오는 가운데 교육을 통해 앞으로의 진흥을 모색하는 과도기라고 보는 온건한 역사인식에서 불교인들에게 선교를 진흥시킬 책임이 막중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었다.

이능화의 시대구분론에서 기준으로 삼은 것은 불교의 내용인 ‘경교(經敎)’와 ‘선종(禪宗)’의 관계였던 점이 주목되는데, 이것은 바로 불교사의 전개과정을 교학불교와 실천불교의 관계 변화로 보는 역사인식으로서 뒤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능화의 시대구분론과 함께 오교양종설(五敎兩宗說)은 권상로(權相老)·누카리야 카이텐(忽滑谷快天)·김영수(金映遂) 등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면서 한국불교사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앞서 살펴본 박한영의 시대구분론이 불교사 전개를 ‘흥성’과 ‘쇠망’의 변화과정으로 인식하는 관점이었던데 비하여 이능화의 그것은 ‘교학’과 ‘실천’이라는 불교 내용의 변화과정으로 인식하였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불교사의 이해체계로서 크게 진일보한 학설로 평가된다.

박한영과 이능화의 한국불교사에 대한 시대구분의 의도는 당시대 불교의 진흥을 염원하였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었으면서도 시대구분 기준의 차이로 말미암아 각기 다른 구분의 결과를 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능화도 박한영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시대구분론에 의거하여 체계적인 불교사개설은 내놓지 못하고 ‘입동방이백품제’ 편에서 200개의 주제를 나열하고 해설하는데 그침으로써 그의 역작인 ‘조선불교통사’로 하여금 자료집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능화의 폭넓은 안목과 자료섭렵은 편년체 서술이나 선교관계에 의한 시대구분론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하였다. 그는 ‘조선불교통사’를 간행한지 9년만인 1927년에 ‘조선불교의 삼시대(三時代)’(‘佛敎’31, 1927)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한국불교사를 과거시대(過去時代)·과도시대(過渡時代)·미래시대(未來時代) 등 3시기로 구분하고, 불교의 미래를 낙관하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앞서 ‘한국불교통사’에서의 5시기의 구분기준이 불교내용인 교학과 선종의 관계였던 반면에 3시기 구분기준은 ‘흥성’과 ‘쇠퇴’의 변화라는 관점이었던 점이 주목된다.

3시기 구분에서는 먼저 과거불교를 고려 이전의 전성(全盛)시대와 조선의 쇠퇴(衰退)시대로 나누고, 전성의 원인으로 구법고승의 노력과 불교에 대적할만한 타종교 부재 등의 사실을 들고 있으며, 쇠퇴 원인으로는 비행(非行)승려의 책임론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오직 유교의 억불척승(抑佛斥僧) 때문이라고 하여 앞서 불교계 자체의 책임을 강조한 박한영과는 상반되는 견해를 보이었다. 그리고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승려도성출입금령 해제, 사사관리서 설치, 사찰령과 30본산제도 시행, 불교중앙학림·보성학교·불교전문학교 등 교육기관의 설립과 일본과 유럽에의 유학생 증가, 각 사찰에서의 참선과 강경의 성행 등의 사실들을 적시하면서 미래시대 불교의 발전을 확신한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이능화는 특히 당대의 강사로서 박한영·진진응, 선승으로서 백용성·방한암·백학명을 들고 이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음이 주목된다.

그러나 이능화의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과 당시의 불교계 상황에 대한 안일한 인식, 그리고 불교전통의 모순에 대한 비판의식의 부족과 다른 종교에 대한 경쟁의식 등은 개화지식인으로서의 특성이자 한계로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박한영·이능화와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불교의 신지식인이자 개혁론자인 권상로는 근대적 의미의 불교사 연구에서 최초의 학문적 성과로 평가되는 ‘조선불교약사’(1917)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제목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간략한 불교사서로서 국한문 혼용체로 쓰였으며, 한국불교사를 삼국·고려·조선 등 왕조별로 시기를 구분하고 연도에 따라 별다른 해석 없이 사실을 기계적으로 나열한 편년체 사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고승전류의 전통적 사서에서 벗어나 한국불교사 전체의 전개과정을 연대순으로 정리한 최초의 불교통사라는 점에서 불교사학사에서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1918)보다 1년 앞서 발간되었고, 일본인 다카하시 토오루의 ‘이조불교’(1929)나 누카리야 카이텐의 ‘조선선교사’(1930), 그리고 서양인 최초의 체계적인 한국종교개설서로 평가되는 클라크(Charles Allen Clark)의 ‘Religions of Old Korea’ 등에 자주 인용되고 있었던 것을 보아 한국 불교학의 선구적인 저서로 평가할 수 있다.

권상로가 서문에서 인도·중국·일본 등 불교가 있는 곳마다 모두 불교사가 있는데, 유독 우리 조선에만 없다고 개탄하면서 ‘약사’라도 저술한다는 취지를 밝히고 있었던 것을 보아 민족 단위의 불교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당시 불교계의 새로운 인식을 반영하여 저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불교종파의 역사와 임제종 중심의 선종 전등사(傳燈史)를 부록의 별도 항목으로 편성하여 자세하게 서술한 것은 한국불교사의 원류를 파악함으로써 정통성의 확립과 개혁 이념의 정립을 추구하는 작업과 같은 연장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불교의 원류를 파악하고 임제종 중심의 정통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은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뒤에는 한국불교의 종조(宗祖) 논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권상로의 불교사 연구는 계속되어 1930년 이후에 ‘신찬조선불교사(新撰朝鮮佛敎史)’(저술연도 미상)와 ‘조선불교사개설(朝鮮佛敎史槪說)’(1939)을 저술했는데, 이 두 책은 한국불교사를 현대 한국어로 써진 최초의 체계적인 개설서라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조선불교사개설’에서는 한국불교사를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되는 372년부터 자신의 시대인 1939년까지 1568년간을 4시기로 구분하여 고대의 불교향상시대(佛敎向上時代), 고려의 불교평행시대(佛敎平行時代), 조선의 불교쇠퇴시대(佛敎衰退時代), 근대의 갱생과도시대(更生過渡時代)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고대의 불교향상시대를 다시 3기로 구분하여 신라 눌지왕부터 무열왕까지 약 200년간을 불교수입시대(佛敎輸入時代), 문무왕으로부터 헌덕왕까지 약 150년간을 교종분립시대(敎宗分立時代), 헌덕왕부터 경순왕말년까지 약 150년을 선종울흥시대(禪宗蔚興時代)로 세분하였다. 이어 고려의 불교평행시대를 2기로 나누어 태조부터 의종까지 약 250년간을 여열계승시대(餘烈繼承時代), 명종부터 고려말까지 약 250년간을 쇠퇴조맹시대(衰退兆萌時代)로 나누었다. 그리고 조선의 불교쇠퇴시대를 다시 3기로 나누어 태조의 개국부터 문종말년까지 약 60년간을 압박절정시대(壓迫絶頂時代), 세조원년부터 광해군말년까지 약 170년간을 중간명멸시대(中間明滅時代), 인조이후부터 병합이전까지 약 290년간을 유지잔천시대(維持殘喘時代)로 세분하였다. 마지막으로 근대의 불교사는 1902년 경성 동대문 밖의 사찰 창건과 국가로부터의 사찰 관리를 계기로 불교가 부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의미에서 갱생과도시대라고 규정하였다.

권상로의 시대구분론은 불교사의 전개를 흥성과 쇠망의 과정으로 이해한 박한영의 시대구분론과 불교 내용인 교학(교종)과 실천(선종) 관계의 변화로 이해한 이능화의 시대구분론을 종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앞서의 ‘조선불교약사’에서의 왕조별 시대구분에서 크게 진전된 이해체계를 나타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의 시대구분론은 상당히 타당성을 가진 주장이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권상로의 근대불교에 대한 인식과 갱생과도시대라는 표현은 재검토할 필요성이 없지 않다. 권상로는 1902년에 원흥사를 창건하여 대법산국내수사찰이라고 한 것을 산림불교에서 도시불교로, 승니불교에서 민중불교로, 사찰불교를 사회불교로 진출시키는 제일보가 되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그리고 이어 1902년 이후의 종무기관의 설치 경위와 각황사의 창건과정, 교육기관의 설립과정과 해외유학생의 증가현상 등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약술하였다.

그러나 1911년 조선총독부에 의한 사찰령과 30본말사제라는 분립적인 교단체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1929년의 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회와 종헌 제정, 1937년에 시작된 총본산 설립운동을 높이 평가하고, 통합적인 종무기관의 출현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하였다. 특히 1929년의 승려대회와 종헌제정을 계기로 하여서는 ‘조선불교사의 이합관(離合觀)’(‘佛敎’62, 1929.4)을 발표하여 한국불교사의 전개를 분리(分離)와 통일(統一)이라는 독특한 사관에 의한 시대구분론을 제시하였다.

권상로는 한국불교사의 전개과정에서 3번의 이합(離合)이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첫째 불교 수입이후 분리를 형성하였다가 원효에 의해 제1회 통일을 이루었으며, 둘째 화엄종 등 교종의 분파와 선문9산의 분열은 태고보우의 9산문 통일 주장과 세종대의 선교양종 통합을 거쳐 청허휴정에 의해 제2회 통일을 이루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셋째 조선후기의 남북한 산성의 총섭제와 5규정소(糾正所) 설치 등 행정상의 분리정책과 근대의 사사관리서와 대법산·중법산제도, 조선총독부의 사찰령과 30본말사제 등의 행정상의 분리정책으로 인한 불교계의 분열은 1929년의 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회와 종헌에 기초한 통일기관인 교무원 설립으로 제3회 통일을 이루었다고 하였다. 분리와 통일이라는 독특한 사관에 의한 한국불교사의 시대구분론은 1929년의 승려대회와 종헌제정, 중앙교무원 설치에 대한 권상로의 기대감의 표출이었다. 그리고 권상로의 통일기관의 출현에 대한 기대감은 ‘조선불교사개설’(1939)의 시대구분론에서는 1937년 이후 추진된 총본산설치운동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 shilrim9@snu.ac.kr
 

[1405호 / 2017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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