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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큐베이터 속 690g 이른둥이 “살고 싶어요”

  • 상생
  • 입력 2017.09.04 13:34
  • 수정 2017.09.0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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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화계사·법보신문 이주민돕기 공동캠페인

▲ 베트남 이주민 뉴엔티렁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인큐베이터 속 아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690g의 작은 생명체. 31주 3일 만에 엄마 뱃속에서 나와 벌써 몸의 이곳저곳에 튜브를 달고 있었다. 투명한 인큐베이터 속 아기는 숨 쉬기조차 버거워 보였다.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 들어가자마자 뉴엔티렁(34)씨의 눈시울은 금세 빨개졌다. 제대로 품어주지도 못 한 채 너무 빨리 세상과 만나게 한 미안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이를 만지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작은 구멍으로 손만 넣은 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베트남인 뉴엔티렁씨
조산 후 건강 악화돼 
병원비 2300만원 밀려 
아이 수술비도 마련해야

한국말이 서툰 탓에 간호사의 설명도 진단서의 내용도 정확하게 알 수 없어 그저 애가 탔다. 잠은 잘 자는지, 영양 상태는 충분한지, 배변은 잘 하는지, 잘 웃는지, 잘 우는지…. 묻고 싶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아이 괜찮아요?” 한마디밖에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눈물이 더해진다.

뉴엔티렁씨의 고향은 베트남 중부 응애안성의 바닷마을이다. 선원이었던 아버지의 벌이가 생활비의 전부였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가난한 살림이었기에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생선 손질하는 일을 시작했다. 고사리 같은 손이었지만 자기 밥벌이는 해냈다. 스무 살이 넘어가자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져야했다. 생선 손질로는 부족했다. 나이가 들면서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에는 한국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거나 가족이 나가서 돈을 벌어 형편이 나아진 이웃들이 있었다. 한국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질 무렵 어머니가 뉴엔티렁씨를 불렀다.

“한국에 나가서 돈을 벌어보면 어떻겠니? 경비나 비자마련은 내가 할 테니 너는 한국에 가서 네 미래를 준비하고 가족에게도 도움을 주면 좋겠구나.”

그렇게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핸드폰 공장에서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일주일에 하루밖에 쉬지 못했지만 제몫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에 하루하루 견디며 지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해할 수 없는 차별을 받아도, 한국말이 서툴러 소통이 되지 않아도, 월급을 받지 못해도 가족생각을 하며 참았다.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주민 단체의 도움을 받아 월급을 되돌려 받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외로웠던 타국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 공장에서 처음 동료로 만났지만 고향이 같아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1년여의 연애 끝에 2015년 결혼했다.

뉴엔티렁씨는 빨리 아이를 낳고 싶었다. 산모가 되기에는 조금은 늦은 나이였기에 산부인과부터 찾았다. 당장 임신할 수 없었다. 검사결과 혹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혹을 제거하고 아이를 기다리길 2년. 드디어 임신에 성공했다.

“아이가 생겼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간절히 원했기에 저에게 와준 아이에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자궁 상태가 아직 완전하지 못한 탓이었을까. 임신 후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다. 최대한 안정을 취했지만 24주째 하혈을 하며 병원에 입원했다. 큰 이상은 없었지만 한 달 뒤 진행한 검사에선 아이가 너무 작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주일 뒤 다시 검사를 받았을 땐 엄마와 아이 모두 위험한 상태였다. 아이는 여전히 작았고 양수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당장 수술이 필요했다.

그렇게 31주 만에 나온 아이는 유난히 작았다. 피부도, 폐도, 심장도, 장도 온전하지 못했다. 빨갛고 검은 피부, 실같이 가는 팔과 다리에 호흡곤란 증세로 태어나자마자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심장이 약해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았고 장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배에는 변이 꽉 찬 상태였다. 수술을 견디기에는 너무 약한 상태라 지금으로써는 아기가 건강해질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일이 최선이다.

뉴엔티렁씨 역시 갑작스러운 수술로 몸 곳곳이 아프다. 배를 가른 상처에는 염증이 생겼고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해 혼자 몸을 가누기도 힘들다. 병원비 마련이 어려워 일찍 퇴원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고 생활비를 빌려 아내 간호에 전념하고 있다. 현재 밀려있는 병원비만 2300만원. 아이가 건강해지자마자 수술할 비용도 없다. 

뉴엔티렁씨는 서툰 한국말로 간절하게 말했다. “아이가 살아 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인천=조장희 기자 banya@beopbo.com

[1406호 / 2017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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