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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삼소관음중생사, 기적을 일으키는 불상

기자명 주수완

공양 받는 존재에서 중생 구제하는 보살로의 변화상 담아

▲ 우리나라 11면관음상을 대표하는 석굴암의 11면관음보살상. 8세기중엽.

‘삼소관음중생사’란 제목도 번역본에서 대체로 원문 그대로 사용되는 제목인데 언뜻 그 뜻을 알기 어렵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결국 “세 곳에 나타났던 중생사의 관음상”이란 뜻이다. 그 안에 옴니버스식의 이야기 네 편이 실려 있다. 중생사 관음상은 어떻게 세 장소에 나타나셨다는 뜻일까? 그리고 어떤 상이었을까?

세 곳 나툰 관음상 의미지만
네 가지 옴니버스 기록 남아

중국의 대표 화가인 장숭요
신라로 와 꿈 속 관음상 조성

고려 초 유명 정치인 최승로
중생사 관음상 점지로 탄생

사찰 운영 어려움에 처하자
스님으로 변신 시주 받아와

‘삼국유사’ 기록 종합해 보면
관음상, 여성미 풍부했을 것

첫 번째 이야기는 이 보살상이 처음 만들어지게 된 내력에 관한 것이다. 중국 천자에게 사랑하는 절세의 미녀가 있었는데 천자는 그녀를 그림으로 그릴 것을 지시했다. 그런데 화가가 그림을 그리다 실수로 붓을 떨어뜨려 그림 속 미녀의 배꼽 아래에 점이 찍혀버렸다.  화가는 어떻게 고쳐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자 하늘의 뜻인가 보다 하고 그냥 그 그림을 천자에게 바쳤는데, 실은 그 미녀에게는 정말로 그런 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벗지 않으면 결코 그릴 수 없는 부분을 화가가 그린 것은 틀림없이 애정행각이 있었기 때문이라 믿고 분노하여 화가를 가두고 벌주려 하였다. 아마도 천자가 화가에게 그리라고 주문한 그림이라는 것은 배꼽이 드러나는 꽤나 야한 옷을 입고 있는 형상이었던 모양인데, 실제 화가에게 그릴 때는 다만 그 미녀를 모델로 얼굴만 그리게 하고 몸은 상상에 맡겨 그리라고 했던 것 같다.

사건이 커지자 화가의 평소 인품을 알고 있었던 당시의 승상이 나서서 화가는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용서를 구했다. 그러자 천자는 엉뚱하게 어젯밤에 자신의 꿈속에 나타났던 사람을 알아맞혀 그림으로 그려내면 살려주겠다고 하였다. 참으로 희한한 테스트다. 아마도 문맥상 연결해보면 승상은 이 화가가 때때로 예지력이 있는 사람이라 그런 것이지 실제 천자의 여인의 몸을 본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황제가 이런 문제를 냈던 것이 아닐까.

▲ 장승요 작품으로 전하는 5성28수신형도권(五星二十八宿神形圖卷). 일본 오사카 시립미술관소장.

여하간 이 문제를 받아든 화가가 답안으로 제출한 그림은 십일면관음상이었는데, 이는 정답이었다. 풀려난 화가는 분절(芬絶)이라는 박사를 만나 회포를 푸는 중에 중국을 떠나 불교를 숭상한다는 신라로 갈 것을 결심하여 바다를 건넜다. 그리고 신라에 와서 천자의 꿈에 나타났고 자신에게도 현몽하여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관음보살을 상으로 조성하여 모셨는데 이곳이 바로 중생사라는 것이다. 결국 관음상은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중국 황제의 꿈 속에 나타났던 사건이 첫 번째이다. ‘삼국유사’는 전해지는 말에 이 중국화가가 바로 남북조시대의 유명한 장승요(張僧繇)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고 하였는데, 결국 장승요가 말년에는 신라로 귀화했다는 것이니 사실이라면 대단한 일이다.(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장승요는 꼭 ‘삼국유사’가 아니더라도 이미 중국에서 다소 신통력을 지닌 화가로 유명했다. 예를 들어 “화룡점정”이란 말도 그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당나라 장언원의 ‘역대명화기’에는 장승요가 벽에 용을 그려놓고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는데 마침내 눈동자를 그리니 용이 날아가 버렸다든가, 천왕사라는 절에 공자의 그림을 그려두었는데, 나중에 불이 났을 때 그곳만 타지 않았다는 등 다소 신비주의적인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삼소관음 중생사’의 화가가 장승요는 아니었겠지만 아마 특별한 능력을 지닌 화가의 대명사가 장승요인지라 그에게 의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달리 보면 이 중생사의 관음보살상의 얼굴 묘사가 장승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생겨났던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흔히 남북조시대의 3대 화가로 꼽히는 고개지, 육탐미, 장승요를 꼽는데, 이중에서 장승요는 ‘육(肉)’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다. ‘육’은 그가 구사했던 풍만한 인물묘법이나 음영법 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이며, 특히 불교미술에도 능하여 양무제가 큰 불사를 일으킬 때 자주 참여하여 이후 불교미술의 모범이 되었다고도 한다.

▲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석조십일면관음보살입상. 통일신라. 중생사 관음상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짐작케 한다.

‘삼국유사’ 속 중국에서 건너온 화가는 천자의 꿈에 나타났던 십일면관음보살이 자신을 살렸기 때문에 천자에게 그려 바쳤던 바로 그 십일면관음상과 똑같은 상을 만들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그 상은 다소 풍만한 형태의 사실성을 지닌 보살상이었기에 후대 사람들이 장승요에 연결해보려고 만든 이야기이리라.

이 관음상의 두 번째 이야기는 중생사 안에서 이룬 기적이다. 아들이 없어 걱정하던 최은함이란 사람이 이 관음보살상 앞에서 기도한 뒤에 아들을 얻었다. 그런데 927년 후백제 견훤이 경주로 쳐들어와서 경주가 혼란에 휩싸였을 때 최은함은 자신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보다 관음보살에게 맡기는 것이 더 안전하리라 믿고 이 상의 발밑에 아이를 놓고 오며 말했다. “이 아이는 대성께서 주신 것이니 부디 대성께서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난리가 지나고 나서 반달 뒤에 돌아와 보니 아이는 막 목욕한 것처럼 뽀송뽀송했고, 입에서는 방금 젖을 먹은 것처럼 젖냄새가 감돌았다고 한다. 조금 앞선 추측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설화를 통해 혹시 이 관음보살이 매우 여성적인 모습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물론 관음보살님이라면 꼭 여성이 아니었더라도 신통력으로 어려움 없이 아이에게 젖을 먹일 수 있으셨겠지만 그렇게 신통한 능력이시라면 굳이 젖을 먹여서 아이를 보호하셨을까? 왠지 이 설화는 약간은 관음보살을 어머니의 인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음이 아닌가, 그래서 중생사 관음보살상이 여성적인 모습임을 은연중에 나타낸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물론 실제 관음보살을 여성적인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은 보편적인 개념이기도 하지만 젖을 물릴 정도라면 분명 더더욱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풍부한 보살상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이때 관음보살께서 씻기고 먹이신 최은함의 아들은 자라서 고려초기에 이르기까지 정치가로 활동했던 유명했던 최승로였다.

세 번째로 모습을 드러내신 것은 고려시대인 992년이었는데, 당시 이 절은 성태(性泰)라는 스님이 주석하고 있었으나 보시가 들어오지 않아 절의 운영이 매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성태 스님은 이 관음보살상 앞에 나와 사정을 말씀드리고 중생사를 떠날 생각이라는 말씀을 올렸다. 그러자 꿈에 이 관음보살께서 나타나서 “법사는 떠나지 마시오. 곧 절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충분히 마련해줄 것이오”라며 성태 스님을 안심시켰다. 그 후 13일 만에 어떤 두 사람이 소와 말에 물건을 잔뜩 싣고 와서는 시주를 자청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자신들이 김해에서 왔으며 그곳까지 시주를 부탁하러 온 중생사 스님의 청에 의해 이곳까지 보시하러 왔다는 것이다. 성태 스님은 중생사에는 자기 밖에 없으므로 김해까지 갈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마도 번지수를 잘 못 찾은 것 같다고 말했으나 그들은 조금 전 중생사 근처 신견정(神見井)에서 그 스님이 이리로 가라고 일러 주었으니 틀림없다며 법당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 봉안된 관음보살을 보고는 자신들에게 시주를 구하러 온 스님이 바로 저 관음보살이라며 깜짝 놀라는 것이 아닌가? 결국 중생사 관음보살님이 김해에까지 모습을 드러내셨던 것이다. 이를 통해 보면 중생사 관음상은 여성적인 외모이면서도 비구스님으로 분장해도 그럴 듯한 얼굴을 지니신 분이었을 것이다.(시주를 다녔던 스님이 비구니 스님이라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 굴불사지 사면석불 중의 선각 11면천수관음상. 십일면관음 도상은 천수관음 도상과 결합되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에 추가된 또 하나의 이야기는 직접 관음보살께서 모습을 나투신 것은 아니다. 1173년 이 절에 머물던 점숭(占崇)이란 스님은 불력이 깊었지만 글을 읽을 줄 몰랐다. 그런데 이 절이 탐났던 한 승려가 점숭의 이러한 약점을 노려 친의천사(?衣天使)를 찾아가 점숭이 주지 자격이 없다고 모함을 했다. 이 친의천사가 누구인지, 혹 어떤 직책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 불교 교단에 관한 분쟁을 처리하는 관리가 아니었나 생각되는데, 여하간 진상을 조사하러 나온 친의천사가 시험 삼아 점숭에게 의례문을 거꾸로 주며 읽어보라고 하니 점숭이 술술 읽어내려갔다. 친의천사는 점숭이 스스로 읽을 줄을 몰라도 이 절 관음보살께서 보살펴 필요할 때 읽게 하시는구나 싶어 점숭이 계속 주석하도록 했다는 이야기이다.

‘삼국유사’에는 많은 기적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 ‘삼소관음 중생사’가 주목되는 이유는 다른 기적들은 부처님이나 보살님이 직접 나타난 기적을 다룬 반면에 여기서는 관음보살상 자체가 기적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이는 ‘관음보살’과 ‘관음보살상’은 사실상 동일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상’이 가지는 신성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를 통해 점차 불상이 단순히 공양을 바치는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로서 그 중요성이나 신성성이 점차 커지고 있었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아쉽게도 중생사의 십일면관음상은 현존하지 않지만, 남아있는 십일면관음보살상, 혹은 십일면관음으로 추정되는 상들을 보면 일세를 풍미했던 중생사 관음상의 흔적들을 읽어볼 수 있는데, 여성적이며 풍만하고 그러면서도 당당한 모습은 왜 이러한 설화가 나왔는지 짐작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중생사의 삼소관음보살님은 지금 어디서 다섯 번째 이야기를 쓰고 계실까?

주수완 문화재전문위원 indijoo@hanmail.net
 

[1406호 / 2017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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