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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김권태의 마음을 읽다
16. 신데렐라 ③동화·신화 세계는 고통 속 희망 발켠케 하는 매개
김권태  |  munsach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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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5  10: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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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신데렐라가 되는 꿈을 꾼다. 원치 않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고 영혼을 병들게 한다. 그래 병든 자에겐 환상이 필요하다. 우리가 꿈꾸는 신데렐라는 실은 신데렐라의 불안을 달래주던 신데렐라의 꿈이었다. 없는 것으로 원래 없던 것을 없애는 것이다. 불안으로 불안을 지우고, 환상으로 환상을 치유하는 것이다.

불안은 영혼 잠식해 병들게 해
고통 견디려 욕망 덧입히지만
양심은 우리 마음·행동 통제
욕망 얘기로 승화시켜 꿈 실현


내가 이대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멸절불안과 나의 공격성이 투사되어 되돌아오는 박해불안, 그리고 나를 두고 엄마가 영영 떠날 것 같은 유기불안으로 두근거리며 우리는 힘겹게 생의 안쪽을 향해 걸어간다. 내면의 풍경처럼 펼쳐지는, 아니 내면의 풍경이 되어버린 전(前) 오이디푸스시기(pre-oedipal stage)의 죽음불안과 분리불안이다. ‘혹시 나는 주워온 아이가 아닐까, 지금 저 엄마는 내 친엄마가 아니라 계모가 아닐까, 실은 나는 어느 고귀한 가문의 부잣집 외동딸인데 어떤 사연으로 인해 잠시 여기에 맡겨진 것은 아닐까. 아, 나에게 숨겨진 날개가 있다면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갈 수 있을 텐데…….’ 가족로맨스(family romance), 오이디푸스기의 아이들이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현실에 덧입히는 욕망과 환상들이다.

이제 이 현실의 풍경들은 아이의 욕망과 겹쳐져 환상과 마법이 펼쳐지는 공간이 된다. 그리고 이 환상을 통해 고통을 극복하고, 이것을 계단 삼아 환상이 시시하고 유치해질 만큼 성장하게 된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며 양말을 걸어 넣고 자는 동생에게 짓궂게 진실을 이야기하며 도망치는 것이다.

‘유혹하고 싶고 또 유혹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왜 그는 몰라주는 걸까, 그러나 내가 이렇게 아빠를 사랑하는 것을 엄마가 눈치챈다면 내가 가진 소중한 능력을 빼앗길지도 몰라…….’ 이성부모에 대한 흥분과 관심의 독점욕은 동성부모에게서 뭔가 자신의 소중한 것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거세불안을 불러오고, 이 거세불안을 통해 아이는 욕망의 연을 마음껏 날리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찾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거세불안과 욕망의 극복에 대한 선물로 양심이라는 초자아를 얻게 되고, 이 초자아는 사회의 도덕을 대변하는 내면의 목소리로 끊임없이 불안을 야기하며 죄책감(초자아불안)의 형태로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다.

불안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야기 속의 인물과 사물들은 우리 내면의 감정들이 이미지로서 그 몸을 얻은 것이다. 내 것이지만 현실에서 도무지 꺼낼 수 없는 충동과 욕망들이 슬그머니 환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불안을 뱉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야기는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자 환상이 실현되는 곳이다.

환상은 피 묻은 칼을 들고 울며 들어오는 아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안아주는 따뜻한 엄마품과 같은 곳이다. 환상은 어떠한 경우에도 항상 행복한 결말(해피엔딩)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책 없는 낙관이 아니라 고통의 잿더미에서 끝내 희망의 불씨를 발견하는 긍정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언젠가, 반드시’ 악은 그 대가를 받는다는 권선징악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보편적인 세계의 질서이자, 우리 내면의 질서가 되는 것이다.

초라한 부엌데기 소녀 ‘신데렐라의 꿈’과 그런 ‘신데렐라가 되는 꿈’을 꾸는 사람들. 신데렐라의 꿈을 꿈꾸며 빛나는 별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환상의 환상을 품으며 고통과 불안을 달래는 사람들. 상처 입은 조개가 온몸으로 모래를 씹어대며 진주를 만들어내듯이 고통과 불안을 곱씹으며 마술처럼 하나씩 희망과 사랑으로 바꾸어내는 사람들. 동화와 신화의 세계는 우리를 눈멀게 하는 환상이 아니라 마치 불난 집에서 아이들을 달래느라 보물이 가득 실린 수레를 약속하고 마침내 그들을 불길에서 구원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김권태 동대부중 교법사
munsachul@naver.com
 

[1406호 / 2017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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