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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전국비구승대표자대회와 조계종

기자명 이병두

“취처·육식·음주 승려, 승적서 삭출”

▲ 1954년 8월24~25일 서울 중앙선원에서 열린 제1차 전국비구승대표자 대회에 참석한 스님들. 맨 앞줄 왼쪽에서부터 청담, 인곡, 적음, 금봉, 동산, 금오, 효봉, 향곡, 자운 스님.

“세계는 이제 혼란이 극(極)에 이르러 바야흐로 그 귀의처(歸依處)를 지향하고…안으로는 우리 교단정화운동으로 민족의 등대가 됨과 동시에 밖으로는 혼란의 극에서 방황하는 세계인류에 목탁이 될 것을 내외에 성명한다. 우리는 선망(先望)의 유훈(遺訓)을 여실봉행(如實奉行)하여 인류의 의심을 타파하고 실증(實證)을 보일 것이며 허위망집(虛僞妄執)한 대중의 표월지(標月指)가 되어 서원을 실현시킬 것을 선서하는 바이다.”

1954년 8월 선학원서 개최
청담·동산·금오스님 등 동참
비구승 주도 불교정화 시발
정치권 외부세력 의존 한계

1954년 8월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청담·동산·금오·효봉·향곡·자운 등 내로라하는 비구스님들의 주도로 선학원 중앙선원에서 열린 ‘제1차전국비구승대표자대회’를 마치며 결의한 ‘전국불교도에게 드리는 선서문’을 통해 불교정화 추진세력이 전국 불교도들에게 한 약속이다. 상황이 급박했던 만큼 한 달 뒤인 9월27일에 제2차 비구승대회를 열어 다시 결의를 다졌지만 정화의 길은 멀고 험했다.

“한국불교는 과거 40년간의 왜제침략독아(倭帝侵略毒牙)에 여지없이 파괴되고 해방 이래 왜식승배(倭式僧輩)의 발호로 인하여…본종은 영명하신 이대통령각하의 유시를 봉체(奉體)하여 교단을 재정(再整)하고…첫째, 한국불교는 종풍상 법통상 본종에 귀일(歸一)되었나니 한국 내에는 본종 이외 타종파가 있을 수 없다. 둘째, 재래 취처(娶妻)·육식·음주하는 승려는 일체 승적에서 삭출(削出)하여 호법중(護法衆)이라는 신도로 취급할 것이다. 셋째, 사찰 및 종단기관은 전부 본종에서 인계 관리할 것이며 재산사용에 대하여는 삼보호지(三寶護持)의 목적에만 국한될 것이다. 넷째, 재래 교단을 농단하던 대처왜색승(帶妻倭色僧)들이 자가(自家)의 구명책으로 본종을 훼방코자 종종 선동하는 경향이 있음을 경계한다.”

수적으로 열세인 비구승들의 힘만으로는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대처승들을 감당할 수 없었으므로 선명성을 내세우고 국가권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같은 해 11월10일 비구측의 핵심 주역인 종정 동산·부종정 금오·도총섭 청담 스님 명의로 발표한 위 성명서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그러나 정화의 목적이 정당했다고 할지라도, 60여년이 지나도록 그 후유증이 남게 된 것은 앞으로 뼈아프게 새겨야 할 교훈이다. 아직도 불교계 각 종단들이 내부 갈등과 분쟁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막대한 삼보정재를 소송비용으로 허비하고, 정치권력 등 외부 세력의 힘에 기대어 자신의 종단 내 입지를 강화해보려는 구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당시 정화를 추진했던 스님들이 의도했던 바는 아니겠지만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제1차 비구승대회 뒤로 통합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이 탄생되기까지 10여년 동안 한국 불교는 ‘비구-대처’의 갈등을 넘어, 주도권을 잡기 위한 양측의 유혈 충돌과 절 빼앗기, 재판 진행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심지어 신문에 “불상 앞에서 유혈격투. 태고사(조계사)서 비구승 6명 중경상”, “나날이 심각해지는 불교계 파동. 이번엔 간판 떼기 싸움. 비구승, 대처승 분쟁이 최고조”, “새벽의 조계사에 유혈극. 대처승, 비구승을 습격. 30명 중경상, 200여 경관 출동으로 진압”, “대처승측 물러나갔을 뿐 신도 늘었다는 표적 없고. 서로 팔아치워 재원 고갈, 사찰은 유원지화. 승리의 기쁨보다 앞서는 곤경”이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까지 있었다.

자문(自問)해보자. “만 63년 전 전국 비구승대회에서 출발한 조계종은 민족의 등대가 되고 방황하는 세계인류에게 목탁이 될 것이라고 했던 당시의 약속을 잘 지켜왔는지 아니 앞으로라도 지킬 것인가?”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06호 / 2017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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