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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신현득의 내가 사랑한 동시
16. 서정슬의 ‘어머니’일평생 걷지도 서지도 못한 시인이
어머니 향한 그리움·사랑 담은 노래
신현득  |  shinhd70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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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5  11:3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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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고맙지 않은 어머니가 없지만, 1급 장애의 딸을 길러낸 어머니라면 그 정성이 남달랐을 거다. 그 딸이 장애를 딛고 시인으로 성장해서 어머니의 고마움을 시에 담았다면 그 감동이 어떨까? 그러한 딸이 그러한 어머니에게 보낸 영혼의 편지 같은 동시 한 편을 맛보기로 한다.

장애 지닌 자기 모습 안타까워
울어버리면 말 없이 안아 주고
세상 비바람 막아주던 어머니
그 목소리 바람결에 듣고 그려

 

어 머 니 / 서정슬

바람결에 당신 목소리
들릴 것 같아
가만히 불러봅니다
어 머 니

내 모습이 슬퍼서
당신 가슴 치다가
울어버리면
말없이 꼬옥 안아 주시고

달리다가 힘들어
주저앉으면
당신 무릎베개로
쉬게 하시며

비바람에 추울까봐
온몸으로 우산 되어
막아주시던 어머니

구름결에 당신 얼굴
보일 것 같아
가만히 불러봅니다
어 머 니


‘솟대문학 60호(2005. 겨울호) 서정슬 특집’

시의 작자는 아득한 거리에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다. 그것이 장애인 요양원에 딸을 보내고 밤낮으로 염려하는 어머니일 수도 있고,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일 수도 있다. 어머니의 괴로움이 나 때문이다. 나를 돌보다가, 나 때문에 괴로워하시다가 일찍 저세상으로 가셨다는 안타까움이 시 귀에 배어 있다.

시의 작자는 일평생 걷지도, 서지도 못했다. 왼쪽으로 몹시 기울어져 있던 목 고개를 한 번도 바로세우지 못했다. 손 움직임이 더뎌서 음식을 마음대로 먹지 못했다. 아주 천천히 손을 움직여 글자를 썼다. 

이러한 장애의 딸이, 먼 나라의 어머니 목소리를 바람결에 듣는다. “잘 있니?” 하는 염려의 목소리다. “참고 견뎌라”하는 타이름이다. 지난 적 일을 떠올린다. 내 모습이 안타까워 내가 울어버리면 말없이 안아주던 어머니였다. 무릎베개에 눕혀 쉬게 하던 어머니였다. 세상일에서 비바람을 막아주던 어머니였다. 그러한 어머니 모습이 구름결에 보이고 있다. 한 번 더 “어 머 니!”하고 조용히 불러본다.

시를 지은 서정슬(水晶瑟, 1946~ 2015) 시인은 광복 이듬해에 서울에서 출생했으며, 산파가 놓은 촉진제 부작용으로 뇌성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6·25무렵에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없어서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 그는 형제들 어깨너머로 한글을 배우고, 독서에 힘을 기울여, 세브란스 병원부속 소아재활원 초등학교 명예졸업장을 받기도 했다. 어머니의 정성과 서정슬 본인의 노력이 이룬 결과였다. 

글 솜씨가 뛰어났던 장애어린이 서정슬은 1960년대 초반부터 어린이신문과 잡지에 아동시를 투고했다 한다. 그의 첫 작품은 소년한국일보에 발표된 아동 시 ‘해바라기’(키다리 아저씨/ 무얼 보세요?/ 담 너머 고개 빼고/ 무얼 하세요?// 담 너머 이웃 마당/ 꽃을 본단다./ 봉숭아 아가씨와/ 얘기한단다.)였다. 그러다가 홍윤숙 시인의 도움으로 첫 동시집 ‘어느 불행한 탄생의 노래’(1980)를 출간하고, 윤석중 새싹회 회장이 주관하는 새싹문학상(1982)까지 받게 되었다.

그 뒤 서정슬 시인은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1983), ‘꽃 달력’(1987), ‘하늘 보며 땅 보며’ 등 6권의 동시집을 남겼다. 윤석중 회장은 그의 동시에 대하여, 자유스럽고, 평화롭고, 순결하고 동심이 어린 작품이라는 칭찬을 했다. 1급 장애인 서정슬의 일생을 견주어 가며 그의 전 시집을 읽은 독자는 “서정슬 시인의 동시는 감동과 사랑이 이어진 작품”이라는 감탄을 한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406호 / 2017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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