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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목적과 방법
하림 스님  |  whyhar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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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1  15: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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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에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내 몸과 마음의 경험들이 하룻밤 꿈과 같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몸의 느낌과 마음의 작용들(감정, 생각, 갈망)을 잘 살피는 것이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수행의 목적과 방법이 그대로 담겨있어 보입니다.

배부른데도 계속해서
먹으려는 욕심이 고통
몸·마음 잘 살피는 게
번뇌서 벗어나는 수행


“배고프면 배고픈 줄 알고, 목마르면 목마른 줄 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쉬운 것 같지만 실제 일상생활에서는 밥 먹을 때 배부른 몸의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과식을 하게 됩니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지만 한두 수저를 먹고 나면 사실은 배고픈 느낌은 이미 사라집니다. 그런데 “아니야 나중을 위해서 좀 더 먹어야 해”라고 생각하고 더 먹게 됩니다. 그러니 다이어트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음식조절도 아니고 약 처방도 아니고 자기 몸의 느낌을 먹는 순간마다 알아차리는 수행으로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며칠 전에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배가 고프거나 혼자 있을 때면 라면이 생각납니다. 지나던 마트에서 라면을 샀습니다. 하나를 사면 될 텐데 나중에 먹을 것을 생각해서 5개가 포장된 두 묶음을 삽니다. 들고 오면서 내내 생각합니다. ‘어느 것을 먹어야 후회하지 않을까?’ 선택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더 맛있는 것을 선택하고 싶은 욕심과 그렇지 못했을 때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라면을 사들고 10분을 넘게 걸어가는데 그 주변의 자연과 아름다운 길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온통 그 생각에 빠집니다. 무언가에 집착을 하게 됨으로써 지혜가 어두워진 순간이고 삶의 아름다움을 놓친 순간들입니다.

드디어 라면을 끓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한 봉지만 끓여야지, 그러면 배고픔을 달래는 약으로 삼아 먹는 것이 될 거야’ ‘오늘은 꼭 성공해야지’라고 하면서 물을 올립니다. 그런데 왠지 물이 작아 보여 더 붓게 되고 결국에는 라면을 한 봉지 넣었다가 작을 것 같아 반을 더 넣게 됩니다. 이번에도 ‘배고픈 느낌만을 달래는 좋은 양약으로 삼는다’는 수행에서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혼자만의 계획이었지만 또 좌절을 겪습니다.

라면의 양을 결정할 때 한두 수저만 먹어도 배고픈 느낌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멈출 수 있었다면 아마 성공했을 것입니다.

옛 스님들이 “도 닦는 것은 밥 먹는 것보다 쉬운 일”이라고 하신 말이 기억납니다. 그야말로 단순하게 ‘배부른 몸의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배부른데 더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배부르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더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틈나는 대로 몸의 느낌을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것이 나의 삶을 편안하게 가는 길에 좋은 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 하림 스님
오늘도 하루를 살아갑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첫발은 기쁨과 신비함으로 발걸음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렇듯 인생에서 한 발을 내려놓기 전에 좀 더 살펴보아서 지금 경험하는 것들이 “다 지나간다”는 사실을 나중이 아니라 경험하는 그 순간에 알 수 있다면, 그리고 멈출 수 있다면 삶이 평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다시 배가 고파 옵니다. 이제는 수행에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꼭 깨어있어서 과식하지 않고 내 뱃속에 평화를 선물할 것입니다. 기대가 되는 하루입니다.

하림 스님 행복공감평생교육원장 whyharim@hanmail.net
 

[1407호 / 2017년 9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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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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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리 2017-09-12 03:42:52

    과학과 종교가 이유를 알 수 없는 현상을 신비주의적으로 설명해서 인류를 혼동에 빠지게 만든다.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복잡한 개념이나 어려운 수학을 동원하면 그것은 모두 가짜라고 봐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우주의 원리는 단순하고 명쾌해야 우주만물이 혼동에 빠지지 않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원리와 생명의 본질을 알고 싶은 사람은 ‘과학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참고하라. 상대성이론을 포함해서 기존의 과학이론은 대부분 가짜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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