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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목적과 방법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7.09.11 15:54
  • 수정 2017.09.11 15:55
  • 댓글 1

‘반야심경’에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내 몸과 마음의 경험들이 하룻밤 꿈과 같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몸의 느낌과 마음의 작용들(감정, 생각, 갈망)을 잘 살피는 것이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수행의 목적과 방법이 그대로 담겨있어 보입니다.

배부른데도 계속해서
먹으려는 욕심이 고통
몸·마음 잘 살피는 게
번뇌서 벗어나는 수행

“배고프면 배고픈 줄 알고, 목마르면 목마른 줄 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쉬운 것 같지만 실제 일상생활에서는 밥 먹을 때 배부른 몸의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과식을 하게 됩니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지만 한두 수저를 먹고 나면 사실은 배고픈 느낌은 이미 사라집니다. 그런데 “아니야 나중을 위해서 좀 더 먹어야 해”라고 생각하고 더 먹게 됩니다. 그러니 다이어트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음식조절도 아니고 약 처방도 아니고 자기 몸의 느낌을 먹는 순간마다 알아차리는 수행으로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며칠 전에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배가 고프거나 혼자 있을 때면 라면이 생각납니다. 지나던 마트에서 라면을 샀습니다. 하나를 사면 될 텐데 나중에 먹을 것을 생각해서 5개가 포장된 두 묶음을 삽니다. 들고 오면서 내내 생각합니다. ‘어느 것을 먹어야 후회하지 않을까?’ 선택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더 맛있는 것을 선택하고 싶은 욕심과 그렇지 못했을 때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라면을 사들고 10분을 넘게 걸어가는데 그 주변의 자연과 아름다운 길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온통 그 생각에 빠집니다. 무언가에 집착을 하게 됨으로써 지혜가 어두워진 순간이고 삶의 아름다움을 놓친 순간들입니다.

드디어 라면을 끓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한 봉지만 끓여야지, 그러면 배고픔을 달래는 약으로 삼아 먹는 것이 될 거야’ ‘오늘은 꼭 성공해야지’라고 하면서 물을 올립니다. 그런데 왠지 물이 작아 보여 더 붓게 되고 결국에는 라면을 한 봉지 넣었다가 작을 것 같아 반을 더 넣게 됩니다. 이번에도 ‘배고픈 느낌만을 달래는 좋은 양약으로 삼는다’는 수행에서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혼자만의 계획이었지만 또 좌절을 겪습니다.

라면의 양을 결정할 때 한두 수저만 먹어도 배고픈 느낌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멈출 수 있었다면 아마 성공했을 것입니다.

옛 스님들이 “도 닦는 것은 밥 먹는 것보다 쉬운 일”이라고 하신 말이 기억납니다. 그야말로 단순하게 ‘배부른 몸의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배부른데 더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배부르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더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틈나는 대로 몸의 느낌을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것이 나의 삶을 편안하게 가는 길에 좋은 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 하림 스님
오늘도 하루를 살아갑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첫발은 기쁨과 신비함으로 발걸음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렇듯 인생에서 한 발을 내려놓기 전에 좀 더 살펴보아서 지금 경험하는 것들이 “다 지나간다”는 사실을 나중이 아니라 경험하는 그 순간에 알 수 있다면, 그리고 멈출 수 있다면 삶이 평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다시 배가 고파 옵니다. 이제는 수행에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꼭 깨어있어서 과식하지 않고 내 뱃속에 평화를 선물할 것입니다. 기대가 되는 하루입니다.

하림 스님 행복공감평생교육원장 whyharim@hanmail.net
 

[1407호 / 2017년 9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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