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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백중날에 든 생각

기자명 최원형

낮추며 살겠다는 서원이 모든 생명 행복케 해

내가 불교에 귀의하도록 이끌어준 첫 존재는 나무와 숲이었다. 나무를 공부하느라 숲에 드나들며 자연이 들려주는 설법에 감동하던 어느 날 우연히 ‘금강경’을 선물 받았다. 그 인연으로 불법에 귀의하게 되었다.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가는 동안 오래도록 궁금했던 글귀 하나가 스르르 풀려버렸다. 대학 졸업식 때 기념품으로 받은 돌에는 선교사가 세운 학교라 그런지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좋은 말이니 적혀있을 거라 짐작하면서도 도무지 진리가 어째서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나라고 할 게 없다’는 부처님 법을 만나고 그 의미를 배워가면서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의 의미를 터득하게 됐다. 여전히 진리를 만날 듯 말 듯 경계에서 서성이긴 하지만 이제 머리로는 아주 조금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왜 경계에서 서성이는 걸까? 그건 내 안에 여전한 집착 때문이다. 집착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그걸 버리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내 무지함 때문일 것이다.

조상 극락왕생 발원하는 백중
가까운 이들 안위도 함께 기원
뭇 생명이 괴로움 없이 살려면
우리 모두가 이로운 길 찾아야

집착은 정말 다양하게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집착은 마구 성장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타의에 의해 잘려나가기도 한다. 잘려나가는 순간 새로운 화살이 내게 와 박히면서 괴로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분노가 일며 더 큰 집착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돌아보면 바로 그 순간 분노를 일으키는 대신 내 모습을 타자화시켜 괴로움의 소용돌이에서 순식간에 벗어난 경험도 더러 해 보았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집착은 대체 무엇일까에 대해 가끔 생각해본다. 삶에 대한 집착인 것 같다. 지금 이곳에서 행복하고 싶은 마음, 풍요롭고 싶은 마음, 잘 나고 싶은 마음, 명예를 갖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이 서로 뒤엉키면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집착이 되는 것 같다. 내 삶이 남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강박도 한 몫 한다.

내 삶이 윤택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조건 지어져야 할 게 얼마나 많은가를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특히 종교시설에서는 정말 많이 만나게 된다. 내 행복을 위해 내 자식이 잘 돼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 이곳에 없는 내 부모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먼먼 조상 또한 내 행복의 조건이 된다. 백중은 음력 칠월 보름에 돌아가신 조상님과 외롭게 떠도는 영혼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베푸는 날이다. 불가의 4대 명절 가운데 하나이다. 돌아가신 영혼의 극락왕생을 빌어주는 모습은 아름답다.

친정어머니는 백중 기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절에 가서 기도를 하셨다 했다. 어떤 기도를 하셨느냐 여쭈니 비밀이라 신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어떤 기도를 하셨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기도의 내용이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결국 선망 조상의 극락왕생과 더불어 기도하는 사람과 가장 가깝게 연결된 이들의 평안과 안위가 아닐까. 그런데 이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과연 이루어질까? 요즘처럼 너를 밟아야 내가 설 수 있는 경쟁 구조에서 모든 사람들의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가볍게 생각해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렇지만 기도가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이 사실 없는 건 아니다. 모든 생명 사랑하고 나를 낮추며 살겠다는 서원이라면 실현 가능하지 않을까? 이미 그런 마음을 내는 데서부터 기도는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행복을 바라는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그렇다면 뭘까? 역으로 괴로움이 없다면 그것이 곧 행복 아닐까? 나와 남을 괴로움에 빠지도록 만드는 행위가 바로 괴로움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남을 딛고 내가 행복해진다면 나는 행복해질지언정 타자는 괴로움에 빠지니 온전한 행복일 수 없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시민들에게 묻는 공론화 기간이다. 며칠 전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집계한 결과를 보면 계속 건설을 원하는 사람들이 우세하다고 한다. 신고리 5,6호기가 지어지면 한 지역에 10기의 핵발전소가 생기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밀집도가 된다. 게다가 그곳은 30km 반경 안에 380만 명이 사는 곳이다. 만에 하나 사고 발생 시 380만 명이 대피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는 예측이 있다. 꾸준히 쏟아져 나오는 핵폐기물을 10만 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할 기술은 요원하기만 하다. 나와 내 후손이 그리고 뭇 생명이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는 길은 어렵지 않다. 내게 돌아올 이익보다 우선해서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길을 찾으면 가능할 것이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해줄 수 있지만 진리를 보는 눈을 뜨지 않고는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07호 / 2017년 9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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