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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재마 스님의 존재여행
32. 폭력성을 무력화하는 지혜로운 연민화·미움 없이 고통을 손님으로 바라보라
재마 스님  |  jeama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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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1  17:4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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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한 주 모든 이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가슴이 열린 경험을 해보셨는지요? 그런데 만약 고통을 싫어하는 마음으로 고통에 맞서는 분노를 일으켰다면 진정한 연민심 보다는 좋고 싫어함으로 이분법하는 습관의 힘에 딸려간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연민의 마음은 고통에 대한 화나 미움 없이 고통을 그저 손님으로 바라보면서 측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자신과 타인에 연민 없는 것은
내재된 잔인·폭력적 습관 때문
나와 남 고통에 측은지심 날 때
순수 동기 살피면 연민수행 돼


연민수행은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보복하고 원한을 갚고 싶은 마음을 키우지 않고, 나아가 행동으로 드러내는 잔인함을 대치할 수 있다고 붓다께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맛지마니까야’의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M62)에서 몸과 몸의 요소를 닦는 수행을 일러주신 후 네 가지 고결한 마음을 닦는 수행의 이익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라훌라야 연민의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네가 연민의 수행을 닦으면 어떤 잔인함도 다 제거될 것이다”라고 자상하게 일러주셨습니다.

잔인함은 인정이 없고, 모진 인간의 폭력성과 잔학성을 말합니다. 우리가 자신과 타인에게 연민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우리 안의 잔인함과 폭력적인 습관 때문입니다. 16세기 영국의 철학자 홉스(Hobbes, 1588~1679)는 폭력의 동기와 논리에 대해 3가지로 정리해놓았는데요, 첫째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경쟁(competition)하고 침입하고 획득하기 위해 폭력을 쓰고, 둘째는 그 획득한 것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폭력을 쓰는데 이를 불신(diffidence)으로 보았습니다. 셋째는 자신의 평판에 가해진 사소한 멸시 등의 해를 입지 않으려고 자신의 영광(glory)을 지키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고 보았습니다.

어떠신가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혹은 자신의 평판이나 명예를 위해 스스로를 몰아가고, 자신에게 인정이 없고 모질고 잔인하게 대한 적은 없었는지요? 또는 내 것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가 나의 지식이나 정보, 혹은 재물 등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아 갈까봐 두려워한 적은 없었는가요? 혹은 누군가 나를 깎아 내리려고 하거나 안 좋게 평가할 때 원한을 품고 보복이나 해악을 가한 적은 없었나요?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알게 모르게 부정적인 폭력성을 당연하게 여겨, 잔인함이 조금씩 자라도록 내버려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출가를 하고 나서도 경쟁심을 극복하거나 줄이지 못하고 ‘수행자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잣대를 대고 제 스스로를 몰아간 적이 많습니다. 얼핏 보면 보살행으로 보일 수 있지만 평판이나 제 자신이 편하자고 한 것이 더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손해볼까봐, 불이익을 당할까봐 미리 겁먹고 나와 타인의 불성(佛性)을 신뢰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라훌라야, 물질이나, 느낌, 인식, 심리현상, 의식작용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 모든 물질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는 말씀이 제 가슴과 혼을 후려쳐 다시 자세를 다잡아봅니다.

우리는 내 것이 없다는 지혜로 깨어있을 때 탐욕으로 인한 경쟁심과 평판에서 자유로워 자신과 타인에 대한 잔인함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발현됩니다. 또한 어리석음으로 자신을 몰아붙이고, 자신과 타인을 믿지 못하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온갖 평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는 동기를 순수하게 합니다. 특히 자신과 타인의 고통에 측은지심을 일으킬 때 순수한 동기가 있는지 살펴본다면 지혜로운 연민수행이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 동안 지혜로운 연민을 일으켜 고통에서 자유롭거나 벗어나는 새로운 경험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순수한 동기로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그분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수행을 실천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재마 스님
jeama3@naver.com
 

[1407호 / 2017년 9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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