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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선이 독선을 탓하다논설위원칼럼-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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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3  15: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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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자비없이 외치는 ‘정의’
독선·오만으로 흐르기 쉬워
아집·독선 감옥에 갇힌다면
불제자 자처해도 불자 아냐

   
 미국의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 지역의 고교 여자배구 선수 메건 라이스(왼쪽)는 팀원들과 달리 홀로 기립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 ESPN 홈페이지
지난 2월1일 한국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정우진의 ‘그래도 난 서 있겠다-홀로 선 고교생의 조용한 시위’라는 기사에 실린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어 자세히 읽게 되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 지역 여자고등학교 배구대회 개막 경기 시작에 앞서 국가가 연주될 때, 허리케인스 팀의 선수들이 미국 내에 깊게 뿌리박힌 아시아 ‧ 아프리카 ‧ 남미계 유색인종 등 소수집단 차별에 항의하는 뜻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기립을 거부하였지만 라이스라는 선수는 ‘차별 항의 표시를 해야 한다’는 동료들의 뜻에 동의하면서도 국가 연주가 끝날 때까지 일어서서 의례를 마쳤던 것이다.

라이스는 “(미국 내에 인종차별 등) 부당함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기립을 거부하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 나는 국기와 국가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자신이 함께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러나 동료들의 행동도 전적으로 지지하고, 자랑스럽다”며 존중을 표했다고 한다. 팀 동료들도 라이스가 자신들의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동료들은 “그를 존중하고, 라이스가 무릎을 꿇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행동을 지지하지 않는 건 아니다”라며 서로에 대한 믿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물론 라이스도 처음에는 동료들이 자신의 행동에 나쁜 반응을 보일까 두려워했지만, 그것은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몇 경기를 치르고 난 뒤, 동료들이 내 행동에 편견을 갖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 편안해졌다. 심지어 서로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내 결정을 존중한다는 걸 알게 됐다”며 팀의 단결력을 자랑했고, 팀의 코치도 “당신도, 나도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존중한다”며 ‘다름을 인정하는 팀 분위기’를 확인해주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 길지 않은 이 기사를 저장해두고 가끔 꺼내볼 때마다 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일어난다.

부처님과 같은 성인일지라도 100% 완벽한 인간은 없을 것이고, 따라서 지식이 뛰어난 이들 중에도 각자 갖고 있는 생각이 틀릴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완벽하다. 결코 틀릴 리가 없다”는 지나친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이들이 점점 많아져서 우리 사회의 갈등을 더욱 넓고 깊게 만들고 있어 걱정이다. 정치인을 비롯한 각 분야의 독선에 빠져 있는 이들을 비판하면서 “다른 사람들, 특히 소수자의 의견도 존중하라”고 요구하는 이들 중에도 아집에 사로잡혀서 ‘독선이 독선을 탓하는 상황’을 연출하기까지 한다.

19세기 영국 출신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자신의 명저 ‘자유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인천(人天)의 스승으로 받들어 모시는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한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믿지 말고, 그것이 진리에 부합하는지 따져 본 뒤, 맞지 않으면 과감히 버리라”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히며 ‘독선’을 경계하였다. 우리가 그분을 ‘지혜와 자비를 함께 구족하신 귀한 분[兩足尊]’이라 칭하며 존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그러니 누구든 ‘아집과 독선’의 감옥에 갇혀 있다면, 설사 부처님 제자를 자처할지라도 그는 불제자가 아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 곳곳에 ‘정의(正義)’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매우 당연하고 적극 환영할 흐름이다. 그러나 지혜와 자비를 함께 담아내지 못한 채 외치는 ‘정의’는 자신의 독선과 오만(傲慢)으로 흐르기 쉽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차서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며 자신과 ‘다른 인종‧다른 생각들’을 증오하였던 히틀러와 스탈린이 인류 역사에 끼친 죄악이 얼마나 컸던가. 다른 생각과 의견이 많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표시이다. 어느 집단이든 일사불란(一絲不亂)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1408호 / 2017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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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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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두씨 2017-09-19 10:57:47

    난 병두씰 보고 진즉 파악했지요.자길 돌아봐 부끄러움을 모르는 잔 사실 교활하기가 쉽니다. 그 런이 일 수록 남 비판을 잘하니까요.그것이 사람의 근성. 병두씨 어떻게 남의 말을 함부로 하겠어요,.그러나 진실을 가장하는 떳떳지 못한 글 보면 말해 주어야 소위 말하는 척사현정이 되기에 때문,신고 | 삭제

    • 법보신문은 댓글 삭제 말라 2017-09-19 08:12:04

      이병두씨가 명진스님을 일방적으로 비판했듯이 댓글로 이병두씨에 대한 비판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내로남불 식으로 댓글을 삭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법보신문도 이병두씨를 2004년 8월 10일 기사로 비판했습니다.신고 | 삭제

      • 이병두씨 2017-09-19 08:01:40

        이병두 국장의 폭언

        법보신문 기사 2004.08.10 16:00

        “야 X같은 년아, 어린 것이 어디다 대고 잘해야 한다 마다냐.”

        2월2일 파라미타청소년협회 이병두 사무국장이 <주간불교> 김수정 기자에게 내뱉은 발언이다.

        당신의 그릇된 언행도 정의롭지도 자비롭지도 못하다는 것을 법보신문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요.신고 | 삭제

        • 이병두씨 2017-09-18 05:04:23

          아무리 좋고 멋진 글을 써도 이제 당신의 이중성에 갇힌 거짓 글들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간파했기에 전혀 공감도 감동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기름칠해 뻔지르해 보이는 이런 글로 혹세무민하지 마시고 그냥 잠이나 자세요.신고 | 삭제

          • 이병두씨 2017-09-17 07:27:57

            당신의 글은 위선 교만 아만이 가득해서 읽을 가치가 없는 늘 기우러진 운동장이요. 8년간 불교를 망쳐온 자승 총무원장을 제대로 비판한 적을 보지 못했소.신고 | 삭제

            • 병두씨 2017-09-15 21:26:39

              독선이라.. 사람의 성품은 부처나 중생이나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가리면 달리 나온다. 그리고 독선이 나온다 독선이 없는 곳은 가린 마음을 여는 것이다. 글 또한 가린데서 온 글은 독선일 수밖에없다. 누가 누굴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가려져 있는 성품을 열고 그리고 글을 써야한다. 글을 쓴 이는 스스로 기린 줄 모른다 그러니 저런 글을 써 댄다. 남까지 혼란시킨다. 더 큰 어둠 속에 독선이 아니겠는가 !.신고 | 삭제

              • 독선이 독선을 탓하다 2017-09-15 15:21:16

                좋은 칼럼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쭈욱 댓글들도 읽어보니 비판하는 글들도 꽤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글 어디어디가 잘못되었다는 내용 자체를 비판하는 글은 하나도 없군요. 그만큼 깊은 사색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할 것입니다. 쓰지만 보약 같은 글 감사합니다.신고 | 삭제

                • 내곡동 박광수 2017-09-15 14:15:08

                  이병두 원장님 글을 애독하는 사람이오.
                  댓글 다는 사람들 실명 안 단다고 졸렬하기 그지 없구려
                  독선을 비판한 것이 무엇을 잘못 했다고 교활 운운하오.신고 | 삭제

                  • 병두씨에게 2017-09-15 11:14:56

                    정의가 나오는 곳은 사람 마음이며 마음을 가리고 나오는 정의는 없어요 글 또한 마음에서 옵니다. 이 마음을 등지면 글도 얼마든지 교묘히 꾸며 교활하게 써댈 수 있지요, 부처 가르침을 가져오고 운동 선수 예를 가져와 글을 놓지만 당신의 저변에는 교활함이 뵙니다. 이 교활함이 당신의 마음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 글은 어떨까요. 자승의 적광사미 폭력은 어디에 속하는 정의 일까요?신고 | 삭제

                    • 병두씨에게 2017-09-15 10:49:09

                      이병두씨, 세존은 개개인을 인정해 주신 분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각자 옳든 글튼 사람안에는 부처의 씨앗이있기 때문입니다. 이면서 불법은 평등입니다. 불교 종단은 평등을 품고있는 승가 단체입니다. 당신의 글엔 치웃침이있어요. 총무원에서 적광 사미를 폭력으로 제압하는 것은 부처의 법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있습니다. 정의와 자비는 그 근본이 부처성품 바탕에서 옵니다. 그나머지는 당신 말마따나 기우입니다. 정의을 바로 알고 글을 놓으세요.신고 | 삭제

                      29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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