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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티베트 국왕 앞에서 펼쳐진[br]인도·중국불교 돈점 논쟁 승자는?

  • 불서
  • 입력 2017.09.18 15:47
  • 수정 2017.09.1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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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 종교회의’ / 폴 드미에빌 지음 / 배재형·차상엽·김성철 역 / 씨아이알

▲ ‘라싸 종교회의’
1200년 전 인도불교의 근간을 위협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중국에서 초빙해온 마하연이라는 스님의 이야기를 들은 불교도들이 중국불교의 가르침을 따르기 시작해, 그 무리가 급증한 것이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인도불교 사람들은 마하연의 주장이 잘못된 이설임을 강조하면서 급기야 왕에게 그들의 활동을 금지시켜 줄 것을 청원하기에 이르렀다.

인도의 논사 까말라쉴라와
중국에서 온 선승 마하연이
전법 현장 퇴장 감수한 논쟁
양측의 기록마다 승자 달라

이에 티베트 제국의 법왕 티쏭데짼은 양측을 불러 자신 앞에서 각자의 주장을 펼치도록 했다. 물론, 여기서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고 말문이 막히는 쪽은 전법의 무대에서 떠나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이 책 ‘라싸 종교회의’는 바로 그때의 논쟁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인도불교의 교학주의 전통과 대비를 이루는 중국적인 불교, 즉 반교학적 논의의 일단을 음미할 수 있다.

이 라싸 논쟁의 핵심 논점 중 하나는 마하연으로 대변되는 중국불교의 선수행법이 가르치는 것처럼 번뇌를 일거에 제거하고 해탈에 진입할 수 있는지, 아니면 단계적으로 번뇌를 차츰 제거해야 하는지의 문제였다.

이 논쟁에 여러 인물이 참석자로 등장하고 있으나, 라싸 논쟁의 주역은 역시 인도 논사 까말라쉴라와 중국 선사 마하연이다. 둘은 이 논쟁을 통해 티베트불교의 명운을 결정할 숙명의 한 판 승부를 벌였다. 그것은 패배한 한 쪽이 무대에서 퇴장당하는 정치·종교적 생존을 건 한 판 승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논쟁의 결말은 어떻게 됐을까? 승패의 주인공은 각각 누구였을까? 자못 궁금한 결과지만 아쉽게도 논쟁의 결과는 ‘부뙨불교사’와 ‘돈오대승정리결’ 등 전해지는 기록에 따라 다르다. ‘부뙨불교사’는 티베트 왕이 중국불교도들에게 반대표를 던지며 인도불교의 승리를 선언했음을 암시하고 있고, ‘돈오대승정리결’은 왕이 선(禪)을 위시한 중국불교도의 전법 활동을 용인했다는 것이다.

당시 인도불교도들은 중국불교도들의 돈오나 돈입의 가르침과 관련한 수행법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중국불교도들의 돈오론을 지지하는 이들을 동시론자로 명기하고 있으며, 번뇌가 단계적으로 제거된다고 주장하는 인도불교도들을 점수론자 혹은 차제론자로 불렀다. 여기서 이 라싸 논쟁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돈점논쟁에 다름 아니었다.

당시 인도불교도와 중국불교도가 다툰 또 다른 논쟁거리는 불교 수행론에서 개념적 사유와 사변적 사유의 유효성 문제였다. 까말라쉴라로 대변되는 인도불교 측이 개념적이고 사변적인 사유를 긍정한 반면, 마하연은 의식적 사유작용 일체를 배척하거나 그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돈오대승정리결’에서 마하연은 모든 반성적 사유의 제거, 정신적 활동의 소멸, 사유의 지멸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 그는 분별을 동반하기 마련인 사유활동의 부재, 혹은 의식적 개념을 수반하지 않는 경지야말로 궁극적 무분별의 상태임을 역설하고 있다.

왕의 주재 하에 벌어진 이 논쟁과 관련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역자들은 “대승의 아비달마라 부를 만한 주도면밀한 논의를 품은 논쟁이자, 인도불교와 중국 선종의 방법론적 차이를 선연히 드러낸 역사적 일대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인도와 중국이 극적으로 맞대면한 순간을 옮긴, 지성사적 갈등과 인문적 횡단의 소중한 기록이라는 평가도 덧붙였다.

이 책 ‘라싸 종교회의’는 양측의 주장을 담은 기록을 바탕으로 저자가 해박한 지식과 폭넓은 자료를 더해 당시 인도불교와 중국불교의 극명한 차이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인도와 중국의 정치 사상적 면까지 엿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배재형, 차상엽, 김성철 등 역자들이 오랜 세월 강독회를 통해 한국 독자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에 공을 들였다. 덕분에 독자들은 8세기 말 티베트 왕 앞에서 펼쳐진 인도불교와 중국불교의 돈점 논쟁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2권 1세트 4만3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408호 / 2017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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