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간 같았던 집안 분위기
스님 권유로 복지과 진학
불교복지 실천 원력 세워
집안은 마치 절집 같았다. 집안 어르신들의 반듯한 위의, 검박한 생활 속에 녹아있는 부처님 가르침을 보고 자랐다. 걷기 전에는 어머니 등에 업혀 그 후엔 어머니 손을 잡고 수없이 절에 드나들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를 무척이나 귀여워해주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의 장례는 부처님 곁에 더욱 다가가는 계기가 됐다. 강가에서 임시 다비식을 치르고 김용사 화장암에서 49재를 모셨다. 한 줌 재로 남은 할아버지를 보며 어린 마음에도 삶의 무상함을 느꼈는지 그 후 더욱 열심히 절에 다녔다. 그렇게 불교는 자연스럽게 삶에 스며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유학왔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서울에서 크게 방황하지 않고 학업을 마칠 수 있었던 건 부처님 법 덕분이었다.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부처님 말씀에 대한 갈증도 크게 일어났다. 집 근처 절에 다니면서 신행생활을 지속했고 조계사 법당에 나가 부처님 전에 기도드렸다.
“사회복지를 해보면 어떻겠니?”
대학에 진학할 무렵 전공을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어린 시절부터 곁에서 나를 지켜보며 삶의 방향을 잡아주시던 스님의 권유였다.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고 국정 4대 지표 중 하나로 ‘복지사회 건설’을 제시해 겨우 복지라는 말이 일반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릴 무렵이었다. 복지를 공부하면서도 불교에 대한 마음은 식지 않았다. 복지와 불교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불교복지는커녕 사회적으로도 ‘복지’라는 말이 낯선 때여서 공부에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 때 만난 것이 여익구씨가 쓴 ‘민중불교입문’이었다. 그 책을 읽고 신군부 시절 사회현실에 눈을 떴고 불교의 대사회적 역할에 주목했다. 그렇게 고민을 안은 채 군대에 갔다. 군생활 중 군법당 활동은 마음을 밝혀주는 등불과 같은 시간이었다. 하루는 법당이 아닌 근처 개울에서 법회를 진행했다. 군화를 벗고 물에 발을 담그니 극락이 따로 없었다. 엄격하기만 했던 군대 생활 중의 휴식인지라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때 불교복지가 멀리 있지 않고 이렇게 사람들 곁에 있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필요한 곳에, 세상이 원하는 곳에 응답해야 한다. 산속이 아닌 세상에 있을 때 불교도 살 수 있다.’
졸업을 앞두고 교수님의 추천으로 한 복지관에 면접을 보러 갔다. 당시만 해도 4년제 대학 복지관련 전공자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졸업장만 있어도 간부로 채용하던 때였지만 세례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취업을 거절당했다. 당황스러웠다. 곧장 조계종을 찾아가 사회부장 스님을 만났다.
정리=조장희 기자 banya@beopbo.com
[1408호 / 2017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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