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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말, 그에 따른 행동

기자명 금해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7.09.19 10:51
  • 수정 2017.09.19 10:52
  • 댓글 0

어느 비구니 스님을 만났는데, 선물로 직접 쓴 책 한 권을 드렸습니다. 첫 만남의 기념이 될 만한 좋은 것이라 여겨 그렇게 했지요. 다시 만난 날, 스님은 책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용이 좋아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특히 글과 함께 있는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칭찬을 듣다가 ‘책에서 느끼는 마음으로 일상의 저를 보면 크게 실망할지도 모른다’며 웃었습니다. 이 마음은 실제 제가 경험한 일이었습니다.

매체 통한 간접 대면 많아지며
말·글로 상대를 가늠하는 세상
언행일치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
단어·행동 하나 헛되지 말아야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만화책에서부터 고전 문학까지 가리지 않고 다 읽는 편이었습니다. 그때는 존경하는 시인, 소설가, 만화가가 많았는데 나이 들면서 어느덧 다 잊혀 졌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매우 존경했던 시인 중 한 분의 일상 이야기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때문에 평생 고생한 이야기와 아직도 옛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늙고 지친 아내의 모습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스스로 ‘내가 왜 이런 충격을 받는가’하고 고민했습니다.

그의 시를 통해 시인의 마음을 상상하고, 그의 삶을 형상화했던 사춘기 때의 마음을 아직도 갖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다른 현실의 모습에 충격 받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알아차린 것이지요.

요즘에는 직접 만나는 사람보다,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만나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상대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친근하게 느끼는 인연들입니다. 연예인이나 정치인, 사업가 등 유명한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그의 아름다운 모습, 말이나 글, 업적으로 그의 삶을 상상합니다. 그를 모델로 삼고, 자신도 그렇게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나의 상상과 현실의 그가 일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야만 그를 존경할 수 있고 모델로 삼아 삶의 방향을 이끌어갈 수 있으니까요. 다르다고 생각하면 절대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날 수 없겠지요.

훗날 진실을 알아도, 자신의 상상과 맞지 않다고 그를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그러면서도 자신을 위해 상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러한 세속의 삶 속에서 종교인, 특히 수행자의 자리는 매우 특별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가장 청정한 수행자를 상상하고, 이들만큼은 말과 행이 같다고 절대적으로 믿고, 또 그렇기를 갈망합니다.

실제 스님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면, 삼업(三業)이 모두 여법하기를 서원하며 푸른 칼날처럼 수행합니다. 때문에 말과 행이 저절로 일치될 수밖에 없습니다. 삶 자체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쓴 글을 보면 마음에서 곧장 흘러나와 담백하고 단순하면서도 감동을 줍니다. 스님들의 책이 인기 있는 이유는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그의 글과 행동이 일치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글 또는 말과 다른 행동을 하는 수행자의 모습은 사회적으로 매우 혹독한 비난을 받습니다.

‘자신의 책을 모두 거두어 달라’는 법정 스님의 유언이 이해가 됩니다. 작은 티끌조차도 용납되지 않는 수행자의 자리에서는 당연히 그리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스님의 글이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실제 스님의 삶이 독자들의 상상과 같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 금해 스님
말을 가장 가치 있게 해 주는 것은 행위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세속의 사람들도 언행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아이들도 약속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하물며, 수행자는 단어 하나, 행동 하나조차도 헛된 것이 있어서는 안 될 겁니다.

종교인이나 수행자의 아름다운 글과 말들이 온 세상에 흩날리는데, 대중이 한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참다운 행이 몹시도 그리운 날입니다. 그럴수록 나를 경책하는 선지식의 옛 글귀가 마음에 깊이깊이 머무는 날이기도 합니다.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okbuddha@daum.net

 

[1408호 / 2017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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