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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우리는 어떤 기원을 실천하며 살까

기자명 조정육

“돈 많다 하여 가치 있는 삶 되는 것 아냐”

▲ 윤정귀, ‘상념-소년’, 2016, 55x65x25cm, 나무와 흙구이 : 우리 인생에는 성취해야 할 많은 가치가 있다. 나를 위하고 옆 사람을 위하고 생명 있는 모든 존재들을 위한 가치 있는 삶. 이런 삶이야말로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는 삶이다. 그런 가치를 찾기는 쉽지 않으며 찾았다 해도 내 삶 안에서 실현시키기는 더욱 쉽지 않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성현들의 말씀에 항상 귀 기울여야 되는 이유다.

“부자들은 돈이 많으니까 남 도와주는 것도 많이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복을 더 많이 짓게 되고, 복을 지으니까 더 잘 살 수밖에 없는 거죠.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으니까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잖아요. 당연히 복을 지을 수가 없으니까 더 가난해지고…. 복을 짓는 데도 빈익빈 부익부라니까요.”

갑자기 큰 돈 벌어 자랑하지만
나눔은 “여유 생기면 하겠다”
돈을 버는 것 좋은 일이지만
어떻게 쓰냐에 사람 가치 결정

얼마 전에 집안 모임에 참석했다가 실직한 조카를 만났다. 올해 서른여섯 살인 조카는 실직한 지 한 달이 조금 더 되었다고 했다. 실직 기간을 견디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한참 일할 나이에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하니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뽀얗던 얼굴이 온통 여드름과 뾰두라지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활발한 성격은 찾아볼 수 없고 의기소침한 모습이 안쓰럽다. 조카의 눈빛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체념의 감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조카는 작은집 오빠의 딸이니 촌수로는 그다지 멀지 않지만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아 깊은 대화를 나누는 관계는 아니었다. 그저 얼굴 볼 때마다 ‘잘 지내지?’하는 정도의 덕담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였다. 조카가 오늘 어려운 걸음을 한 것은 다리 불편한 아버지의 보호자로서였다. 실직한 상태에서 집안 친척들 앞에 서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부모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착하고 예쁘다. 그런 조카의 입에서 빈익빈 부익부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순전히 큰집 조카의 돈 자랑 때문이었다.

올해 마흔두 살인 큰집 조카는 지난 번 박근혜 정부 때 ‘떼돈’을 벌었다고 했다. 자기 돈 3000만원으로 ‘갭투자’를 해서 강남에 있는 아파트 두 채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직장생활해서 모은 돈으로 꿈에 그리던 아파트를, 그것도 강남에 있는 알토란같은 아파트를 두 채나 소유하게 되었으니 잠을 자다 로또를 맞은 것만큼이나 의기양양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집안 행사는 ‘고색창연하다’는 이유로 코빼기도 비추지 않더니 웬일로 왔을까 싶었는데 자신이 일궈 낸 눈부신 성과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모양이다. 굳이 자랑을 하고 싶다는데 맞장구를 쳐줘야 할 것 같아서 내가 한마디 했다.

“야, 너 정말 대단하다. 우리같이 소심한 사람은 투자하고 싶어도 엄두가 나지 않아서 못하겠더라. 네 말 들으니까 자기 돈이 없어도 강남에 집을 가질 수 있었구나. 진즉 좀 알려주지. 그럼 나도 강남 아파트 주인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아유, 부럽다 부러워. 그동안 아버지 없이 지하 셋방에서 어머니 모시고 사느라고 고생 많았는데 정말 잘 됐다. 이제 장가가도 되겠네. 부자 된 것 축하해.”

사람이 갑자기 큰돈을 쥐게 되면 판단력이 흐려지게 되는 것일까. 내가 부럽다고 말한 것은 이쯤해서 대화를 마무리하고 화제를 바꾸자는 의도였다. 그런데 큰집 조카는 친척들 앞에서 조금 더 자신의 성공담을 얘기하고 싶은 눈치가 역력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요즘 세상에 아파트 두 채로는 부자 축에도 끼지 못한다면서 자랑을 계속했다. 자기 회사 대표는 7억원을 대출받았는데 갭투자를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아파트 70채를 소유하게 되었다며 복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단다. 자기는 월급쟁이라 ‘실탄’이 적어서 어쩔 수 없이 두 채밖에 살 수 없었단다. 그러면서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라며 더 사지 못한 현실을 한탄한다.

눈치 없는 아이 같으니라고. 나이 마흔을 어디로 먹은 걸까.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의 기분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자랑하기에 바쁜 조카를 보니 인생 헛살았구나 싶었다. 더구나 그곳에는 실직한 친척 동생도 있지 않은가. 조카의 오만방자한 모습을 보다 못한 언니가 곁에서 한마디 한다.

“너 돈 많이 벌었으니까 불쌍한 사람들도 많이 도와주고 그래라. 오늘 밥값도 네가 계산하면 되겠네.”

절반은 얄미워서, 절반은 실직한 작은집 조카에 대한 안쓰러움이 묻어 있는 목소리였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큰집 조카가 즉각적으로 대답을 한다.

“저도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어려운 사람들 도와줄 거예요. 그런데 그것은 나중 일이고 아직은  아니에요. 대출 잔뜩 일으켜서 빚으로 아파트 샀는데 지금 제 처지에 누구를 도와주고 말고 하겠어요? 나중에 여유 생기면 저도 남들 도와주면서 살 거예요.”

여태껏 잘난 체하던 아이가 밥값 계산하는 것이 무서워 곧바로 한발 뺀다. 언니가 한마디 하려다가 큰집 올케를 보더니 그냥 입을 다문다. 나의 불행은 다른 사람의 행복 앞에 서 있을 때 더욱 커 보이는 법이다. 기껏 자신보다 네 살 많은 친척 오빠의 성공 앞에서 실직한 조카는 얼마나 비참했을까. 고모의 얘기를 들은 작은집 조카가 복잡한 심정으로 자신도 모르게 한 말이 바로 빈익빈 부익부였다. 한탄하듯 한 말이었다. 슬쩍 흘려버려도 될 말이었는데 언니는 젊은 실직자의 말을 놓치지 않는다. 나이 들었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 대해 세심하게 살피는 마음을 가졌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언니가 곧바로 작은집 조카를 향해 얘기한다.

“아니야. 그것은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야. 부자라고 해서 남을 많이 도와주고 가난하다고 해서 남을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야. 부자 중에서도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기는커녕 더 갖지 못해 안달인 사람이 있는 반면 가난한 사람 중에서도 부자보다 더 만족해하면서 남을 도와주는 사람도 있어.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어.”

언니의 말은 두 조카 모두에게 해당되는 참으로 절묘한 말이었다. 큰집 조카에게는 가르침을, 작은집 조카에게는 격려를 담은 말이었다. 옆에서 듣는 우리에게는 인생의 진리를 가르쳐 준 말이었다.

돈을 버는 것은 좋은 일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더욱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돈은 정당하게 벌어야 존경받고 박수를 받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땀 흘려 버는 것만큼만 누려야 한다. 땀 흘리지 않는 사람들이 큰소리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돈을 많이 가졌다하여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 돈을 부릴 능력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돈의 부림을 당한다. 겨우 아파트 두 채에 돈의 부림을 당하는 조카를 보면서 부럽기는커녕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맹목적으로 돈을 추종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돈에 휘둘리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408호 / 2017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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