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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지역단 염불포교 황련팀 박돈우-상

기자명 박돈우

딸이 남기고 간 불연으로 전법의 길 들어서다

▲ 58, 지민
슬픔은 한꺼번에 찾아왔다. 한여름, 시야를 순식간에 가리는 폭우처럼 갑작스러웠다. 의사의 입술 사이로 빠져나오는 단어 하나하나가 거센 빗줄기 같았다.

딸아이와 사별로 후회·자책
3000배 등으로 극복하면서
불교대학·포교사 인연 닿아

“의사의 한계를 느끼고 이런 말을 할 때가 가장 힘듭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말끝을 흐리는 의사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니,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느라 의사의 말을 제대로 듣기 어려웠다.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12월 초였다. 딸아이는 급성골수성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1년 6개월 동안 절망과 희망이 교차했었다. 무균실 병동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어린나이에 힘겨운 투병생활을 버텼던 딸아이였다. 딸아이와 행복했던 시간이 바늘처럼 가슴을 찔렀다. “아빠랑 발가락까지 닮았네!” “정말 그러네. 아빠.” 그런 딸아이가, 봄이 무르익는 오후에 지는 벚꽃처럼 혼자 긴 여행을 떠났다.

살아갈 희망과 의미였다. 빛이었으며 내 분신이었다는 사실을 딸의 빈자리가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후회와 자책으로 삶마저 포기하고 싶었다. 마음이 모래처럼 흩어졌다. 견디기 힘든 슬픔과 그리움의 시간이 계속됐고, 몸도 지쳐 체력은 바닥이 났다. 조금만 빨리 걸어도 몇 발자국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어느 날 문득, 좀 더 체력이 떨어지면 부처님께 절도 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틈틈이 혼자 해오던 3000배가 생각났다. 하지만 바닥난 체련으로는 혼자 3000배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부처님께 마지막일지도 모를 3000배를 올리고 싶었다,

무작정 같이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성철 스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아비라 카페를 알게 되었다. 매월 셋째 토요일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예불 전까지 3000배를 하는 포항과 대구 도반의 도움으로 해인사 백련암과 인연을 맺었다. 백련암을 둘러보고 지심귀명례를 따라하며 3000배를 하던 날, 관음전을 가득 채운 분들의 뜨거운 신심과 열정이 내 지친 마음과 몸을 움직였는지 모른다. 포기하지 않고 3000배를 마친 후 심공이란 법명과 삼서근이란 화두를 받았다. 법명을 주신 스님께 “스님! 마음을 비워야 합니까?” 물었을 때 선문답처럼 “예. 너무 늦게 왔습니다” 하시던 말씀이 그날 새벽, 서늘한 바람처럼 기억된다.

꾸준히 3000배에 참가했지만 끝날 때마다 너무 허전했다. 계속되는 알 수 없는 허전함과 그 허전함의 원인을 풀지 못해 답답했다. 법보신문 기사에 실린 봉암사 스님이 순례단에게 했던 소참법문에 답이 있었다. 아니, 백련암 첫 3000배 회향 후 받은 법명과 문답에 이미 그 해답이 있었지만 알지 못했으리라.

“법당에서 소원을 비는 기도는 초급이다. 부처님께 중생 제도 그만두시라고 말씀 드려야 한다. 당신을 대신해 자신이 깨달음 성취해 중생을 제도 하겠노라 서원하는 것이 기도다.”

3000배와 소참법문은 그렇게 쓰러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불교대학과 포교사 입문은 어느 날 우연(?)처럼 찾아왔다. 하루하루 직장생활로 바쁘게 보내던 날 죽림사 앞을 지나게 됐다. 포항 불교대학 신입생 모집공고를 본 후 바로 접수하고 그 해 2012년 봄에 입학했다.

대흥사에서 일요법문으로 불교 전반에 대한 교리를 들었으나 되새기지 못하고 듣고는 잊어버리는 일을 반복 하고 있던 시기였다. 입학 보다 앞선 2002년에 죽림사 자성 스님께 수계를 받는 인연이 있었으나 공부 인연으로 이어가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정식으로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등록했다. 막상 교리는 막연했고 강의가 끝나면 다시 책을 펴지 않는 날이 많았다.

박돈우 경북지역단 염불포교 황련팀 mlain@hanmail.net

[1408호 / 2017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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