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경지서 격외가 부르던 설악무산 스님 입적
5월26일 세납 87·법납 60세
30일 조계종 원로회의장 엄수
선사이자 시인으로 큰 발자취
만해축전·유심으로 만해 선양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다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설악무산 스님 열반송(2018. 4. 5.)
선사로서, 시인으로서 아득한 경지에서 유유자적하며 격외가를 부르던 설악무산 스님이 5월26일 오후 5시11분경 속초 신흥사에서 입적했다. 세납 87세, 법납 60세.
조계종 원로의원이자 제3교구본사 신흥사 조실인 무산 스님의 빈소는 신흥사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5월30일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될 예정이다.
‘조오현’이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무산 스님은 1932년 경남 밀양시 상남면 이연리에서 태어나 1937년 밀양 종남산 은선암에서 불연을 맺었다. 1959년 27세 때 성준 스님을 은사로 발심출가해 직지사에서 사미계를, 1968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이후 불교신문 주필, 법보신문 논설위원을 비롯해 제8‧11대 중앙종회의원과 제3교구본사인 신흥사 주지와 계림사, 해운사, 봉정사 주지 등을 지내기도 했다.
스님은 최근까지 백담사 경내 무문관인 ‘무금선원(無今禪院)’에서 정진할 정도로 일생을 수행자로 살았던 선사였다. 1981년 국제포교사로 미국에서 3년간 명상과 설법으로 한국 선의 정수를 알리던 스님은 1989년 낙산사에 주석하며 정진하던 중 마침내 깨달음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밤늦도록 책을 읽다가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먼 바다 울음소리를 홀로 듣노라면
천경(千經) 그 만론(萬論)이 모두 바람에 이는 파도란다
무산 스님이 대중에게 본지풍광을 드러낸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1998년 무금선원을 개원한데 이어 2002년 백담사에 조계종 기본선원을 열어 후학들을 지도해 왔다. 입제와 해제 때면 종종 벼락같은 법어를 내려 불교계와 세상을 일깨웠다. 또 만해 스님의 자유·평등·평화·생명존중사상을 선양하기 위해 1999년 만해 스님 탄생 120주년을 맞아 백담사에서 ‘제1회 만해축전’을 개최했다. 세계평화와 인권, 학술분야에 앞장선 단체와 개인에게 만해대상을 시상하면서 불교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님은 불교학자와 문인들에 대한 격려와 후원에도 늘 적극적이었다. 1999년 ‘불교평론’과 2001년 만해 스님이 창간했던 ‘유심’ 복간을 통해 학문과 시를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또 2003년에는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백담사에 만해마을을 만들어 만해 스님의 민족정신과 문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2013년에는 만해마을을 동국대에 무상 기증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무산 스님은 생전에 ‘부음(訃音)을 받는 날’이란 시를 통해 자신의 죽음을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죽어보는 날이다
널 하나 짜서 그 속에 들어가 눈을 감고 죽은 이를
잠시 생각하다가
이날 평생 걸어왔던 그 길을
돌아보고 그 길에서 만났던 그 많은 사람
그 길에서 헤어졌던 그 많은 사람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
나에게 꽃을 던지는 사람
아직도 나를 따라다니는 사람
아직도 내 마음을 붙잡고 있는 사람
그 많은 얼굴들을 바라보다가
화장장 아궁이와 푸른 연기,
뼛가루도 뿌려본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