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도 '청탁’이라니

2004-08-10     남수연 기자
얼마 전 지방에서 만난 한 주부불자가 걱정스럽게 속내를 털어놨다. 얘기인 즉 그 지역 내에서 이른바 명문으로 손꼽히던 교계 유치원이 몇 해 전부터 이런 저런 청탁 때문에 그야말로 엉망이 됐다는 얘기였다. 교계의 교육단체 부설인 이 유치원의 교사 채용을 놓고 스님들과 이른바 '큰 보살’들의 청탁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채용된 교사들 사이에서도 어느 스님, 어느 보살의 후광을 입었는지를 놓고 공공연히 줄이 그어지고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편가르기가 생기게 됐다는 기가 막힌 내용이었다. 이 주부는 네 살 짜리 딸아이의 유치원 입학 문제를 고민하며"다른 유치원을 알아봐야 할지, 아니면 아는 스님이라도 통해서 청탁을 해야 할 지 고민"이라는 것이었다. 유치원에 입학할 나이의 아이가 있는 부모로서는 이러한 분위기의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기가 마땅치도 않으려니와, 그야말로 변변한 배경도 없이 아이를 입학시켰다가 편가르기에서 낙오될 것이 안타까워서(?) 인지 '청탁’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개 유치원에서 벌어진 별난 사건쯤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교계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데에는 참으로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 등 대도시에 비해 교육 여건이 열악한 지방의 중소 도시에서 비교적 재정이 튼튼한 사찰이나 불교단체 등이 운영하는 유치원들이 급성장해 '좋은 유치원’으로 호평 받고 있는 사례들이 최근 몇 년 사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학부모들에게 특히, 주부 불자들에게 '좋은 유치원’은 입소문 대상 1순위 가운데 하나이고 그런 만큼 사찰이나 불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의 포교 영향력은 지역에서 그야말로 막강하게 발휘된다. 이 같은 포교 사업이 '인연’과 '안면’을 내세운 청탁 때문에 훼손을 입는다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정재 유실임에 틀림없다.



남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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