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선사들이 이야기』 정천구 옮김
2004-08-10 채한기
베트남 전등록 ‘선원집영’
당대 선사 깨달음 경지 보여줘
정천구씨가 내놓은 베트남 선사들의 이야기는 베트남 불교사서인 선원집영(禪苑集英)을 번역한 책이다. 당시 선승들의 전기를 전등의 계보를 따라 서술한 것으로 일종의 고승전이면서 전등록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한 스님의 일화 한 토막. 어느 날 시자가 쌀을 들고 가다 땅에 엎질렀다. 시자가 놀라 황급하게 주워 담으려 했으나 쌀은 이미 흙과 뒤범벅이 되어버렸다. 이를 본 스님은 스스로 뉘우치며 말했다. “내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지도 못하면서 헛되이 공양만 받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스님은 이 때부터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고 식사하는 것도 잊으면서 10여년을 지냈다. 노년엔 산에 들어가 띠집으로 엮은 암자에서 머물며 평생을 보냈다. 숲 속을 걸을 때면 반드시 주장자에 포대 하나를 걸치고 다녔다. 이르는 곳마다 앉거나 누웠는데, 이를 본 들짐승들도 저절로 길들여졌다고 한다.
이 스님은 바로 베트남 무언통 선사의 계맥을 이은 현광(現光)선사. 입적할 때까지 산을 내려오지 않았던 현광 선사는 바위에 앉아 다음과 같은 임종게를 읊고 세상을 떠났다. 헛된 만법 모두 헛되고,/ 헛된 수행 모두 헛되도다./ 이 두 헛된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게 바로 헛됨을 떨쳐내는 것.
이 책 1부에서는 무언통 선사의 법통이, 2부에서는 비니다류지 선사의 법통이 서술되어 있다. 무언통(無言通, ‘경덕전등록’에는 불어통(不語通)이라 되어 있다.) 선사는 중국 당나라 때 인물로 남악희양의 법맥을 이어 베트남에 선불교를 전파한 인물이며 비니다류지(比尼多流支)는 인도 바라문 사람으로 제3조 승찬의 법맥을 이어 중국을 거쳐 베트남에 들어와 선종을 전한 인물이다. 이 책이 갖는 묘미는 당대 선사들의 개괄적인 이력과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주는 선시와 함께 선문답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선불교를 받아들인 한국불교와 베트남 불교의 선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책이어서 더더욱 무게를 갖는다. (민족사, 12000원)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