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은 현실도피 아니다

2004-08-10     철우 스님
『채근담』에 '산림에 숨어 삶을 즐겁다 하지 마라. 그 마음이 아직도 산림의 참 맛을 못 깨달은 표적이라. 명리의 이야기를 싫다 하지 마라. 그 마음이 아직도 명리의 미련을 못 다 잊은 까닭이라. 명리의 다툼일랑 남들에게 다 맡겨라. 뭇사람이 다 취해도 미워하지 않으리라.

고요하고 담백함을 내가 즐기나니, 세상이 다 취해도 나 홀로 깨어있음을 자랑도 않으리라. 이는 법에도 안매이고 공에도 안 매임이니, 몸과 마음이 둘 다 자재함이라. 깊은 물은 흘러도 소리가 없나니 시끄러운 곳에서 정적을 보는 취미를 얻을 것이요, 산은 높건만 구름이 거리끼지 않나니 유에서 나와 무로 들어가는 기틀을 깨달으리라.' 한 것처럼 사는 수행자는 있기 힘들다.

요즈음은 공부를 좀 하면 한다고 야단이고 좋은 일을 좀하면 한다고 야단이다. 그것은 아직도 번뇌 망상이 가득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 번뇌로부터의 자유로움이 열반인데 그것을 얻은 기쁨은 얼마나 크겠는가? 사람이 오랫동안 끙끙대며 생각하던 일이 쉽게 풀렸을 때 오는 기쁨도 적지 않는데, 모든 괴로움을 떨쳐버린 열반이야말로 큰 기쁨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그 기쁨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상상만 해 볼 수밖에 없다. 열심히 수행을 하면 적어도 찰나간의 경험은 할 수 있지만 워낙 세속의 때가 앙금처럼 깔려 있어 그것을 상상만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고의 행복이며 영원한 행복의 세계임은 틀림이 없다.

모든 번뇌의 불이 꺼진 열반을 설명하거나 쉽게 정의를 내리면 대망어 죄를 범한다. 어두움은 그 반대인 빛에 의해서 경험할 수 있고 고통이 클수록 그것을 해결한 기쁨이 크다는 사실을 경험해 본 입장에서 생로병사의 괴로움 덩어리를 씻어내는 열반의 경지를 짐작할 수 있다. 과연 모든 고통이 없어진 열반의 기쁨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쾌락도 아니다. 감각적인 기쁨과도 차원이 다르다. 일시적이지도 않다. 경전에서는 '안온한 상태'라고 했고, '모든 욕망이 불길이 꺼진 상태'라 했다.

그런 궁극적인 상태가 성취될 때, 비로소 우리는 탐욕스러운 이 세속 생활의 본성을 바로 이해하게 된다. 모든 부와 권력과 쾌락도 욕망의 대상이 아니고, 살아 있거나 무생물이거나 모든 존재의 무상함도 바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안락과 행복의 길을 정확히 가르쳐 준다. 열반은 이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철우 스님/파계사 영산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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