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미완의 과제 ‘9·7해인사 승려대회’ 결의

불교 자주화·사회 민주화를 외치다 1986년 열린 3번째 승려대회 전국 내로라하는 스님들 동참 전두환 정권을 규탄하는 내용

2018-10-08     이병두
‘9·7 해인사 승려대회’에서 스님들이 ‘사찰 관광지화 반대’ 팻말을 들고 있다.

1983년 조계사와 1984년 해인사에 이어 1986년 9월7일 가야산 해인사에서 또다시 승려대회가 열렸다. ‘9·7해인사 승려대회’ 로 불리는 이 대회에는 스님 2000여명이 모여 ‘불교관계 악법 철폐’ ‘불교자주화’ ‘사회민주화‧조국 통일’을 요구했다. 당시 해인총림 부방장 혜암 스님의 법어로 시작된 대회는 집행위원장 월주, 준비위원장 종하, 대회장 법전(당시 해인사 주지) 등 내로라하는 스님들이 주요 역할을 맡았고, 이는 이 대회에 무게가 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대회에서는 전두환 독재정권 아래 신음하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민족 자주권 수호를 위한 불교의 사회참여를 천명하고 선언문 낭독,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과 발원문 및 결의문 채택으로 마무리됐다. 그런데 결의문 낭독 중 김제 금산사 지광 스님이 오른쪽 손가락 4개를 잘라 ‘불자여 눈을 떠라’라는 혈서를 썼고, 이에 자극받은 스님들 여럿이 함께 혈서를 써서 결의를 다졌다. 혈서가 이어지게 된 것은 당시 승단에서 불교와 사회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증거가 아닐까.

이날 채택한 결의문에서는 정권에 대해 “①불교관계 악법 즉각 철폐 ②실질적인 경승 내규 즉각 제정 ③사원의 관광·유원지화 즉각 중지 ④(5·3인천사태로 구속 중인) 성연 스님 즉각 석방 ⑤부천경찰서 성고문의 진상 규명 ⑥총무원 및 각 사찰의 기관원 출입 즉각 중지 ⑦교과서 왜곡과 편파성 즉각 중지 ⑧ 언론의 편파·왜곡보도 즉각 시정 ⑨민족경제 침탈하는 수입 개방 즉각 중지 ⑩10·27법난 책임과 해명”을 요구했다.

이 사진은 대회에 참석한 스님들이 “신성한 사원을 관광화시키지 마라!”고 쓴 피켓을 들고 있는 장면이다. 누군가가 매직펜으로 쓴 이 구호는 1970년대 후반 이후 국민소득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게 된 불교계가 “이렇게 가다간 큰일 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드러낸 것일 수 있다.

다른 결의사항은 거의 정권에게 요구하는 것이지만, 이 문제는 오히려 내부로 향한 요구와 몸부림의 성격이 컸을 것이다. 정부가 문화재 관람료와 국립공원 입장료를 도입해 불교를 정권에 예속시키고 ‘돈’이라는 ‘꿀맛’에 매달리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것을 떨쳐버리지 못한 불교계 책임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간이 흐르면서 불교관련 악법 문제는 ‘불교재산관리법’을 폐지하고 ‘전통사찰보존법’을 제정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또 10‧27법난 해명과 정부 책임 문제를 비롯한 다른 사항들도 해결되고 기관원 출입 문제는 1994년 종단개혁 이후 완전하게 이루어졌지만, ‘사찰의 관광지화’는 더욱 심각해져 가는데 길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59호 / 2018년 10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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