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전두환의 백담사 행은 유배가 아니었다

표지판에 편액까지 전두환이 영웅인가 10·27법난 원흉 받아준 백담사 부처님 가르침대로 할일 한 것 전씨 성지로 비춰져서는 안 돼

2018-10-29     이병두
전두환 내외의 백담사 생활 당시 모습.

‘10‧27법난’이 일어난 지 38년이 지났다. 그러나 “왜 이런 일을 일으켰는지?”에 대해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전두환(이하에서는 전씨로 칭함)은 분명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전씨와 불교계는 이런 악연으로 맺어졌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가 당선되고 그 뒤 국회에서 이른바 여소야대 상황이 되어 ‘5공 청문회’가 진행되면서 전씨 처리가 중요 이슈가 되었다. 결국 1988년 11월23일에 전씨가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한 뒤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내설악 백담사로 들어갔다. ‘10‧27법난’을 일으켜 불가와 악연으로 엮인 그를 백담사는 1990년 12월30일까지 2년간 동안 안아주었다. 악업을 지은 사람일지라도 품에 안아주고 교화시키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니까, 그를 받아준 스님들은 수행자가 할 일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백담사 입구에서 “민족성지 백담사에 민족반역자 웬 말이냐!!”는 현수막을 펼치고 그의 백담사 행을 막겠다고 나선 젊은 스님들과 학생들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고 박수를 쳐줄 일이다. 이때 이 일에 나섰다가 인제경찰서 유치장에서 밤을 보낸 이들이 많았고 그중에는 구속까지 당한 이들도 있었는데, 그때 함께 했던 스님이나 학생들이 이제는 50대 중반이 되어 중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전씨는 “첫 해 겨울을 지낸 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거짓말처럼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내 얼굴이 맑아지고 빛이 난다고 했다”고 회고록에 썼다. 그러나 이 말을 믿는 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전씨 내외가 백담사에 들어간 지 한 달 정도 지난 뒤에 찍힌 이 사진을 보면, 불과 8년 전 ‘10‧27법난’을 일으켜 수많은 스님들을 해친 인사를 스님들은 이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서울을 떠나던 날 승용차 안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던 전씨의 부인이 이 사진에서는 꽤 밝은 얼굴이 되어 환하게 웃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으니, 이들이 개인적인 분노를 가라앉혔다는 말은 사실일 수 있다.

문제는 그를 백담사 부처님 품 안에 안아준 데에 있지 않고, 백담사를 마치 ‘전두환의 성지’처럼 비쳐지게 했던 데에 있었다. 전국에서 그를 만나러 찾아오는 지지자들이 이어졌고, 이렇게 ‘순례’를 다녀가던 버스가 추락해 수십 명이 죽고 다치는 대형사고까지 일어났다.

더 큰 문제는, 전씨 내외가 2년 두 달을 머물다 떠난 뒤에 일어났다. 그가 머물던 방인 화엄실에는 그들이 쓰던 플라스틱 목욕통과 옷 몇 점 등을 전시해놓고 방문 위에는 “제12대 대통령이 머물던 곳입니다”는 표지판까지 붙여놓아서 전제왕권 시절에 억울하게 유배당했던 인사들처럼 전씨 내외가 핍박을 당한 인사였다는 인상을 받게 하고 있으며, 그가 쓴 글씨를 새긴 편액이 백담사 주전인 극락보전에 버젓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죄를 지어 유배를 간 전씨를 영웅으로 만들어준 셈이니 아무리 자비문중이라도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62호 / 2018년 10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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