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경전 한글화 주춧돌을 놓은 용성 스님

불법의 진리 연구하는 나침반 만들다 3‧1운동 후 투옥돼 옥중생활 중 조선글 종교서적 계기 역경발원 경전번역 모임 ‘삼장역회’ 설립 진정한 선양은 제2·3 용성 육성

2019-03-18     이병두
용성 스님이 한자에 갇힌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번역한 조선글경전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민족운동과 불교개혁 분야에서 큰 자취를 남긴 용성 스님에 대해 최근 새롭게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용성 스님은 독립운동과 도심포교를 비롯한 불교개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주 귀한 자취를 남겼다. 이 모두가 선구적인 역할이었던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한문 경전을 한글로 옮기는 불사에 원력을 세워 실천에 옮겨서 ‘경전 한글화의 주춧돌’을 놓은 것은 특히 빛나는 일이다. 용성 스님이 경전 번역에 뜻을 두게 된 것은 3‧1운동 직후 투옥돼 1921년 5월에 풀려날 때까지 겪은 옥중 생활에서였다. 

“독립선언서 발표의 대표 1인으로서 경성 서대문감옥에서 3년 동안 철창생활의 고단한 맛을 체험하게 되었다. 각 종교의 신자로서…각각 자기들이 신앙하는 종교서적을 청구해 공부하고 기도를 하였다. 그때 내가 열람해 보니 모두 조선글로 번역된 것이었고, 한문으로 된 서적은 별로 없었다.” “비록 수십년을 공부할지라도 한문을 모두 알고 죽는 자는 없을 것이고, 다 통달한다 할지라도 장래에는 무용의 학문이 될 것이니, 어디에 쓰겠는가.…우리 조선 사람들에게는 조선의 글이 적절할 것이다.…이에 내가 출옥하면 즉시 동지를 모아서 경전을 번역하는 사업에 진력해 이것으로써 불법의 진리를 연구하는 데 한 나침반을 만들 것이다.”(용성 스님 ‘저술과 번역에 대한 연기’)

출옥했을 때 쉰여덟살, 그 시절 평균 수명에 비추면 이미 노년에 들어선 지 한참 지나 상늙은이 대접을 받을 나이였지만 원력과 의지가 탄탄하니 거칠 것이 없었다. 투옥 중 배신자들이 팔아 버린 옛 대각사 옆에 공간을 마련해 새로 대각사를 짓고 경전 번역 모임인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설립했다. 이 소식을 접한 동아일보는 ‘불교의 민중화운동, 삼장역회의 출현’이라는 제목의 사설까지 실었다.

이렇게 해서 ‘금강경’ ‘원각경’ ‘능엄경’을 번역해 출간했으며, 1926년 4월부터는 ‘화엄경’ 번역에 착수해 1년 반 만인 1927년 11월에 마무리하고, 1928년 3월 ‘조선글 화엄경’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열두권으로 편집한 책마다 ‘첫 권’ … ‘열두재 권’ 식으로 순 한글을 사용하였다. 이 책의 출간을 앞두고 ‘불교’지에서는 “조선불교의 유사 이래에 처음 있는 파천황(破天荒)의 대사업이다. … 조선불교를 위하여, 조선사회를 위하여, 조선민족을 위하여 용성화상을 축하하노니 조선불교계에 용성화상 1인이 있는 것을 축하함이 아니라 이어서 제2, 제3 내지 무수한 용성화상이 나타나기를” 기대하였다.

용성 스님을 기리는 다양한 사업이 펼쳐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스님의 뜻을 이어 ‘제2‧제3 … 제100의 용성을 키워내는 것’보다 더 바르게 스님을 찬탄하고 모시는 일이 있을까.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81호 / 2019년 3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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