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기준

자신만의 기준 가진 요즘 풍토 ‘금강경’서 경계한 자기중심 혜민 스님 사태보며 쏟아내는 단편적 평가와 분노 안타까워

2020-11-23     성원 스님

어린 시절 국민학교(당시에는 초등학교를 그렇게 불렀다)에서는 제식 훈련이 있었다. 군사 문화의 잔재라는 것은 오랜 후에야 알았다. 줄서기와 줄 맞추어 걷기를 반복해서 어린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모두 너무나 진지하게 연습에, 아니 훈련에 임했다.

당시 선생님이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신 것은 기준이었다. 열을 지어 설 때도 기준이 어디인지, 걸을 때도 항상 기준이 어디인지 생각해야 했다. 어린 시절의 훈련 탓일까? 우리 나이쯤 되는 사람들은 언제나 세상의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잘 두지 않는다. 아니 두지 않으려 하는 성향이 있다. 기준은 주변 어디엔가 두고 거기에 맞추려고 한다. 좋은 점도 있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자신은 책임을 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내 탓이 아니고 기준으로 설정한 기준의 잘못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모든 기준을 자신에게 두고 움직이며 세상을 맞추려 한다. 나는 이토록 당당한 그들이 좋다. 아니 좋아한다. 스스로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부러움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정치적 견해는 물론이고 제법 학문적으로 밝혀진 내용들도 거침없이 새로운 자신만의 잣대로 재단하고 걸쭉한 말솜씨로 비난하고 칭찬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특히 역사를 보는 관점은 놀랍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가끔 ‘아, 저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동조할 때도 많은 걸 보면 다양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처님은 자기중심적 사고에 대해 엄격히 경계하셨다.  ‘금강경’에서 수없이 강조하는, ‘아상·인상을 떠나야만 올바른 길을 볼 수 있다’고 가르치는 말이 바로 이 기준에 관한 말이다.

자신이 세상의 기준이라 생각하지 말라, 사람들이 단지 세상의 모든 가치적 기준이라 말하지 말라. 바로 이런 가르침이다. 하지만 2600년 전 메아리 울림이 귓전에 생생한데도 우리는 조금도 변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 세계에서 괴로워한다.

며칠 전부터 현재 불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혜민 스님의 일상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견해가 쏟아지고 있다. 그 스님과 개인적으로 친밀하고 그러다 보니 고민 아닌 고민을 듣고 함께 나누기도 하며 염려하기도 했던 터라 더욱 세심한 관심이 갔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들 객관적으로 볼 때라고 강조하면서 자신만의 견해가 아니라 대중들이 모두 공감하는 가치임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입장에서 재단하고 뚫어보고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당시의 상황과 실체를 더 이해하려는 노력은 잘 하지 않고 자신이 단편적으로 얻게 된 정보에 너무 의존해 흥분하고 나아가 얼마간의 분노까지 표출하는 것을 보며 참으로 맘 아팠다,

성원 스님

언젠가 식당에서 누군가 혜민 스님임을 알아보고 식사 중인데 사인을 요구했다. 하지만 스님은 몇 명이고 계속 맞아주는 것을 보면서 ‘참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때 가끔 상대를 좋게 보게 되는 것이다. 또 한번은 새로 시작한 ‘코끼리’ 명상앱을 구축하고 콘텐츠를 만드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서 강의료를 모두 넣고도 모자라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고민을 토로한 적도 있었다. 그날 그 스님이 나를 기만했을까? 문득 우리 눈에 나타난 모습만이 전부인양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 세상일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뭐라 위로해드리고 싶은데 할 말이 없어서 “보왕삼매론을 큰소리로라도 읽어보시라”고 했다. 나도 읽었다. 어쩌겠는가. 대통령도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고 무자비하게 비난해버리는 세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 말고 또 다른 기준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쯤 했으면 좋겠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562호 / 2020년 11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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