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삶

2004-08-10     법상 스님
가난은 지혜와 사랑의 원천

소유 기준은 욕망 아닌 필요


가난이란 모든 수행자들의 삶에 있어, 아니 모든 근원적인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가난한 삶이란 곧 본질적인 삶을 의미하며, ‘나’ 자신과 소탈하고 순수하게 대면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가장 체험적인 수행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해야 그 속에서 맑음과 청정이 또 참된 지혜와 사랑이 움튼다. 가난해야 수행하지 부유하면 수행은 벌써 멀어지고 만다. 가난과 수행 이것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 인류의 모든 성인들도 다 가난했다. 어쩔 수 없는 가난이기 보다는, 극복해야 할 과제로서의 가난이기 보다는 그들의 삶의 지혜의 근원으로서의 가난이었다.

그렇다고 가난한 삶이란 단지 외적인 모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돈’ 없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많이 소유하고 있더라도 우리는 그 속에서 가난해 질 수 있는 것. 어쩌면 작은 의미에서 물질적 가난이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도 나도 물질적 가난을 구하려고 애써 좋은 조건의 직장을 그만둘 필요는 없다.

물질적 풍요와 부를 가지고 있더라도 우린 그 속에 살면서 가난해 질 수 있어야 하는 것. 다시말해 삶 그 자체가 가난해야 참된 가난이지 물질적으로 가난한 것만이 참된 가난인 것은 아니라는 말.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마음 속에 욕심과 욕망을, 또 물질적인 부를 원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가난하지 않다.

삶의 모습에 있어 가난이란 말하자면 청빈 같은 것인데, 마음에 바라는 것 없이 자족할 수 있어야 가난이고, 행동에 있어 절약하고 절제하며 최소한의 소비로 살아갈 수 있어야 가난 이며, ‘최소한의 필요’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아낌 없이 베풀어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라야 참된 가난이라 할 수 있다.

많이 소유해도 소박하게 살 수 있다. 배고플 때 인연따라 내게 온 공양을 먹으면 되는데 욕심이 시키는 대로 밥이 있는대로 불구하고 더 맛있고, 더 많고, 더 비싼, 더 좋은 음식, 더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면 이것은 소박하게 사는 것도, 가난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칫솔질을 할 때라도 한 컵으로 할 수 있는데 수돗물을 콸콸 쏟아 붓는다면 이 사람은 가난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추우면 있는 옷 챙겨 입으면 되는데 더 비싸고, 더 좋고, 더 예쁜 옷을 그것도 몇 벌씩,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계절이 다가올 때마다 새로 사 입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끼고 절약하는 것, 보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 욕망 보다는 필요에 의한 작은 소유로 만족하는 것, 소유물에 집착하지 않으며 항상 베푸는 것, 이렇게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맑은 가난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수백억을 가지고 있더라도 가난에서 오는 참된 지혜와 미덕을 그대로 안으로 움트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부유한 물질들은 그 사람 것이 아니라 법계의 것이고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늘 가난을 꿈꾼다. 내가 늘 부유하게 살지만, 그래서 항상 부끄럽지만 내 안에서는 늘 맑은 가난을 꿈꾸고 있다. 우리들 모두가,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맑은 가난을 꿈꾸며 실천할 수 있을 때 이 세상은 항상 충만하고 넘치는 곳이 될 것이다.


법상 스님 buda11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