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여! 내 인생을 너에게 바친다”

봉은사 육조단경 혜국 스님 논강2

2004-03-22     이재형
깨달음 쉽게 얻겠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

좌복에 뜨거운 눈물 흘려야 참선 맛 알아


제주 남국선원장 혜국 스님은 봉은사가 2월 28일 보우당에서 개최한 두 번 째 『육조단경』 논강에서 ‘좌선의 정의’라는 주제로 논강을 이끌어갔다. 이날도 첫 논강과 마찬가지로 350여 명의 스님과 재가불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편집자


제가 태백산 도솔암에서 참선할 때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화두는 잡히지 않고 온갖 망상만 활개를 쳤습니다. 내가 왜 그 때 짜장면을 왜 남겼을까. 결혼해서 사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심지어 이 참선으로 내가 부처가 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까지 들었습니다. 이때 저에게 힘을 준 것이 바로 『육조단경』입니다. 이 경전은 우리가 왜 공부를 해야하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가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는 보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 경에는 ‘선지식아(善知識)’라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그러면 여기서 선지식이란 무엇일까요. 너도 부처요, 나도 부처요, 분별의 벽을 허물어 버리면 다 선지식입니다.

<사진설명>혜국 스님은 법에는 돈점이 따로 없다고 강조한다.

법무돈점(法無頓漸)이라. 법은 이름이 끊어진 자리입니다. 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대자연의 진리를 억지로 이름하여 법이라고 한 것입니다. 즉 마음 법을 말합니다.

돈(頓)이라는 것은 지난 번 말씀드렸듯이 무념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으로 천 가지 만 가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흔히 선사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고 하는데 이 말을 알아듣게 되면 그 자리에서 함께 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돈과 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돈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이 끊어진 자리이고, 점이란 생각이 남아있는 자리입니다. 그렇다고 어느 것은 법이고 어느 것은 법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허공이 어디 크기가 있습니까. 우리 눈이 그저 작은 허공 큰 허공으로 나눌 뿐이지요.

『육조단경』에 ‘인유리둔(人有利鈍)’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날카로움(利)과 둔함(鈍)은 익히는 과정을 말합니다. 즉 쉽게 얻으려고 하는 것은 ‘둔’이고 평생 바쳐서 우직하게 공부하는 것을 ‘이’라고 합니다.

옛날 선사들은 쉽게 깨달은 줄 아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무상대도를 쉽게 깨칠 수 있겠습니까. 그 똑똑하다는 설봉 스님도 13살에 출가해 44살의 나이에야 비로소 깨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청춘을 바치고 평생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그렇게 수행하지도 않고 할 것 다하면서도 깨달음을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도둑놈 심보에 불과합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진다는 당연한 사실을 항상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요즘 세간에서 얼짱, 몸짱 등이 유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건 단지 껍데기를 사랑할 뿐입니다.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은 눈을 뜨고 바로 보기 위해 참선을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내가 나를 진정으로 모시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물이 가득한 쇠발우를 머리에 이고 수행했던 이야기를 잠깐 말씀드렸지요. 수마(睡魔)를 물리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때 수도 없이 물을 쏟으며 절망도 많이 했고, 좌복에 눈물도 여러번 떨구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두에 들었는데 어느새 하루가 지난 것이 아니었어요. 쇠발우의 물도 쏟지 않고요. 얼마나 기뻤던지요. 지금도 저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 최소한 뜨거운 눈물을 세 번은 쏟아야 화두의 참맛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만큼 쉬운 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럴 때 망상을 화두로 바꿀 수 있고, 병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노력한 만큼 변한다는 것을 늘 잊지 마십시오. 정말 화두 드는 법을 알면 온 법계가 편안해지고, 자다가도 웃음이 납니다. ‘화두여, 내 인생을 너에게 바친다’ 이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정리=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