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청심] 바다의 향기

2008-04-07     법보신문

밤새 소리 없이 순하게 내리던 비가 그쳤다. 바다는 흔적이 없는 듯 여여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앞마당에 나와 썰물의 때를 살피다가 그간 벼르던 바다로 내려간다. 겨우내 일체 흐름을 끊고 깊은 선정에 들었던 골짜기는 다시 깨어나 흐르고 함께 동행을 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갯바위는 부딪치는 파도에 더욱 둥글고 성숙한 모습으로 다가와 지난 동안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정겹기만 하다.

무심도 하나의 관문이어서 적멸을 비추고 있다면 아직 주객이 남아있어 법성의 바다에 들지 못하나니 적멸이 비춰야 마침내 바다가 된다고 설하고 있다. 여기저기 톳과 돌미역이 지천으로 널려있고 갯바위에 붙어있는 연둣빛 파래와 먹빛 돌김이 달마대사의 수염처럼 자라서 손길이 가면 부드러운 촉감에 얼굴에는 파안대소가 번지고 있다. 갯바위는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돌이켜 지혜의 묘음으로 바꾸는 쉼 없는 정진으로 더욱 둥글어지고 원만해 졌다. 한참 동안 널을 뛰고 숨바꼭질 하듯 이리저리 살피고 건너면서 해초를 뜯고 나니 답답했던 가슴이 훤하게 열리고 어느덧 바다와 하나가 되었다.

때는 어느덧 밀물의 시간이라 등을 돌려 서둘러 몸을 빼고 나오는데 갯바위는 하나, 둘 다시 입정에 들고 하루해는 바다로 침몰 하려는 듯 미적미적 황금빛 가사를 벗는다. 어깨에는 해초를 자루 가득 메고 돌아오는데 동구 밖 물가에 수양버들은 세찬 바닷바람에 백번이나 꺾였어도 해마다 가지는 다시 자라나 휘늘어진 자태가 그윽하기만 하다. 조주 스님께 어느 봄날 납자가 찾아와서 “불법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버들가지, 버들가지”라고 대답을 했다.

봄이 어느덧 시끄러운 선거철 속에서도 점점 깊어가고 있다.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버들가지처럼 일체 시비와 승패에 걸리지 않는 마음을 바로 가리키는 것이니 가슴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후보들은 저마다 주장이 다르지만 모두가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겠노라고 한결같은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빈 약속이 아닌지는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선거가 끝나더라도 서로 비방하고 싸우지 말고 다시 화합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저녁 공양에는 해초가 바루때 가득 넘치고 바다의 향기에 코끝이 싱그럽다. 그간 겨우내 마무리 하지 못했던 도량 정비를 끝내고 텃밭을 정리하여 채전을 가꾸느라고 바빴다. 해초를 마음껏 먹고 나니 이제사 온몸에 봄이 꽉 찬 것만 같다. 봄바람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가는 곳 마다 차별 없이 꽃을 피우고 새싹들을 불러내고 있다. 여기에 응하고 응하지 않음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산에는 산벚꽃이 솜사탕처럼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다.

거금도 금천 선원장 일선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