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일 스님의 계율칼럼]

부처님이 수행자에게 음악을 금지한 까닭

2008-04-21     법보신문

종교와 예술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생명이 길까?
옛 고적에서 사라져버린 고대의 종교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예술의 생명이 더 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예술을 있게 한 원동력은 종교이고, 예술을 연구하다보면 종교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술은 종교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고, 종교는 예술의 좋은 모티브이다. 아잔타나 돈황의 불교예술을 빼고 동양예술을 말하기 힘들고 석굴암이나 고려불화를 제외하고 한국의 미를 논할 수 없다.

불교는 존재에 대한 덧없음을 깨달아 욕심을 제어하여 고(苦)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출가한 사람들에게 세속적인 미(美)는 상관없는 일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계율에 있어서 특히 음악예술은 금기시되고 있는데 사미계나 재가신도의 팔관계를 살펴보면 노래를 하거나 춤추는 것을 구경하지 말라는 계목이 있을 정도이다. 이것은 부처님 당시 인도의 음악이 주로 술자리나 여흥을 위한 것이어서 수행하는 마음을 흐리게 할 소지가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음악은 그때와 달리 클래식이나 명상음악 같은 또 다른 장르가 있으며, 어떤 음악을 듣는가에 따라 삶의 질을 나누기까지 한다.

율장에는 경이나 율문에 음악적 리듬(음율)을 넣어 낭송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 여러 경전에 음악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거나 공양을 올리는 대목이 셀 수 없이 많이 나온다. 세계의 종교가운데 불교만큼 음악에 관련된 대목이 많은 경전을 가진 종교도 없다. 우리나라의 스님들은 경전을 음률로 낭송하는 것을 넘어 아예 북이나 태평소와 같은 악기를 동원하여 예술성이 농후한 범패음악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꽃 춤이나 바라춤이 가미되어 실로 악가무(樂歌舞)의 전형을 이루었다.

율장의 입장에서 보면 금기해야할 이러한 음악들이 한국의 풍토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용수보살은 불교가극으로 유명하였고 용성 스님은 풍금 치는 스님으로 알려졌다. 또 대선사였던 만송 스님과 계율을 잘 지키기로 유명했던 의해 스님은 금(琴) 예술에 정통하였고, 대율사였던 홍일 스님의 음악과 서화는 이름만큼이나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일반스님들이 음악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위의 스님들의 음악이 취미나 기분풀이가 아니라 불보살님께 공양과 중생교화의 도구로 쓰기위한 따름이었으니 음악자체에 집착한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음악을 버릴 수 없다면 보다 심오하고 격조 높은 것을 선택하는 지혜를 길러야한다.

송광율원장 도일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