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묵 스님의 풍경소리]

남 일에 지나치게 말 많고 참견 많은 세상
하얀 눈처럼 아픔 덮어주는 세상 만들길

2010-02-18     법보신문

작년과 재작년 이맘쯤에는 영각 앞에 서있는 매화가 꽃 방울을 터트리고 약간의 눈이 내려 설중매를 볼 수 있었다. 이는 한겨울에도 눈이 드문 이곳인지라 정말 보기 힘든 귀한 장면이었지만 2년을 연달아 보았기에 올해도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어제 오늘 저리 봄비가 내리는 것을 보니 맘을 접어야지 않을까 싶긴 하다. 그런데 기실 매화보다도 더 그리운 것은 하얀 눈이다.

서울 등 윗녘 사시는 분들이야 지난겨울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고생하신 탓에 눈이란 말만 들어도 진저리를 내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어릴 적 겨울에 늘 눈 속에서 놀던 추억이 있는 사람에게 눈 없는 겨울은 낯이 설다. 특히 설이란 말이 눈과 통하는지 설하면 떠오르는 영상은 눈이 내려 온통 하얀 들판 사이 구름마길로 색색의 한복을 입고 세배 다니는 모습이다.

그리고 설이란 명절이 이웃이나 친족 간에 서운함이나 갈등 상처를 내려놓고 덕담을 통해 새 희망을 부어주는 것이 눈과 닮았다. 군대시절 강원도 산골짜기에 하염없이 내리던 눈은 그렇지만 우리 고향에 내리던 눈은 세상의 이런 저런 모습을 보듬어 가려주고 덮어주며 산과 들이 추운 겨울을 나게 도와주었다. 그런 눈 같은 사람이 그립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되돌아보면 나는 그런 눈 같은 사람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어찌 그리 남의 잘못은 잘 집어내고 한마디를 하려 들었는지.

얼마 전 부산에 사시는 한 보살님이 자신의 시가 실린 사보를 주변의 권유에 못 이겨 보여주셨다. 아직 권위 있는 문단을 통해 등단은 못했지만 이미 주변에서 인정하는 분이고 시도 참 좋았는데 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마디 입을 댔다. 물론 그 분은 ‘스님 참 예리하시네요’라고 했지만 가신 후 내가 괜한 말을 했구나 싶었다. 그저 ‘참 좋네요. 뜨거운 신심도 느껴지고 희망차고 밝아 많은 분들이 정초에 이 시를 통해 마음을 다잡겠는데요’라고만 했으면 좋았을 걸 괜히 주제넘은 말을 한 것 같아 부끄럽고 죄송했다.

남의 일에 담을 쌓고 남이야 어찌됐든 내 맘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긴 하다. 하지만 작은 일도 심상하게 여기지 않고 자기가 맡은 일이 아닌 온갖 일에 귀를 기울이고 뒷방 공사를 하거나 참견하고 확실하게 잘 알지 못하는 일을 가지고 나팔수가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일이 절집에서 조차 심하지 않은가 싶다. 그러기에 보조 스님께서 『계초심학인문』에 “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접 집안의 좋지 않은 일은 드러내지 말고 다만 절 집안의 부처님 섬기는 일을 찬탄할지언정 고방(庫房:요즘의 종무소나 원주실)에 가서는 잡다한 일들을 보고 듣고는 의혹을 내지 말라”라는 내용을 넣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이다. 어찌 보면 지금 이 말도 그런 류에 속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무심도인(無心道人)인양 지나치게 모르는 척 하는 것도 예는 아닌 것 같아 말을 하긴 하지만 편하진 않다.

그리고 인터넷 세상이 되고 보니 지나치게 말이 많고 참견이 많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약간의 내용이 비치기만 하여도 금시 온갖 리플이 달린다. 그래서 별로 실답지 않은 일이 부풀어져 큰일을 만들기도 하고, 악플이 상대를 심한 우울증이나 자살로 몰고 가는 일이 이제 다반사가 되었다. 그것으로 자기가 대단한 일을 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양 하지만 대부분이 자신의 스트레스를 쏟아 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설을 쉬면서 우리 서로에게 하얀 눈이 되어 서로의 아픔을 들추어내기 보다는 가려주고 덮어주고 감싸주며 하얀 세상을 만들었으면 한다. 어차피 우리 같은 범부가 인식하는 것은 진실이 아닌 망정에 의한 허상 일 뿐임을 명심하면서. 

정묵 스님 manib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