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처럼 자신을 태워 남에게 향기 주려면 나부터 먼저 채워야

2011-04-19     법보신문

“내가 사르는 이 한 가지 향이/ 온 누리에 퍼져나가 향연기의 구름이 되길/ 부처님 전에 이 구름 보내오니/ 중생의 어린 이 마음을 받으소서./ 이 한 몸 수천의 몸이 되고/ 그 수천의 몸 하나하나는 다시 또 수천의 몸이 되어/ 그 몸마다 그 몸마다 향불을 사르나이다/ 온누리 계신 부처님 전에 향불을 사르나이다.” 헌향게


향은 자신을 태움으로써 남에게 향기를 준다. 그러므로 향 그 자신으로 본다면 이건 완전한 희생이다. 그러나 이 희생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얻는다. 그러므로 이는 영혼의 심지에 진리의 불을 붙인 구도자들이 취해야 할 삶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자기보다는 남을 위하여’를 외친 대승불교 정신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잠깐! 자기보다는 남을 위해 주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자신을 가득 채워야만 한다는 전제조건 아래서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자신을 채우지도 않고 남을 도우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그들의 이 도움은 결국 도움 받은 자에게 그 대가를 강요하게 된다. 왜냐면 자신을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남을 도울 경우, 그 도움은 결국 자기자신의 강요된 희생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강요된 희생이 어느 날엔가는 그 대가를 요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제 그의 도움을 받은 자에게 그녀는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게 된다. “나는 너를 위해서 내 인생의 절반을 허비했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고. “너는 언제나 나를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너를 도와준 은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또 나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너는 너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내가 너를 보는 이 나의 틀 속에서 단 한 발자국도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 나는 너를 키우기 위해서 내 젊음을 모두 버렸다.”


▲석지현 스님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에게는 여기 향의 경우가 해당되지 않는다. ‘한 줄기 향을 사르오니/ 당신을 향하는 마음이여 내 마음이여/ 누리 이 누리 구석까지 뻗어나가라/ 하늘에서 땅의 끝까지.’(常住勸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