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대사 탄생 1400주년 특집

2017-01-03     법보신문

한국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자 종교인인 원효(元曉, 617~686). 이 나라 불교의 새벽을 활짝 열어젖힌 그는 성과 속을 자유로이 넘나들던 무애도인이자 분열과 다툼을 종식시킨 화쟁의 달인이었다. 일정한 스승이 없었지만 뛰어난 저술들로 동아시아 불교를 주도한 사상가였으며, 광대의 옷을 걸치고 불교의 이치를 노래로 지어 민초들에게 들려준 거리의 성자였다. 원효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오늘날까지 한국인들의 큰 존경을 받는 불교인이며, 가장 많은 연구가 이뤄지는 사상의 바다다. 그렇기에 한국불교가 원효를 닮아 가면 대중의 마음을 얻을 것이요, 원효와 멀어지면 불교의 본령을 잃게 되고 결국 대중의 번뇌만 들끓게 할 뿐이다.

법보신문은 원효 대사 탄생 1400주년을 기념해 ‘원효에게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특집을 마련했다. 삶, 사상, 현대적 의미, 동서양에 끼친 영향, 문학 속 원효, 사찰연기 설화, 진영(영정), 문화콘텐츠 활용 방안, 선양사업, 가상인터뷰 등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분석과 시선으로 원효의 진면모를 담아내려 했다. 2017년은 한국불교가 원효를 기억해야만 하는 한 해이기 때문이다.  편집자

▲ 원효 대사가 머무르며 ‘화엄경소’ 등을 집필한 분황사의 새벽. 하얀 구름이 동터오는 하늘의 비천상이 되어 공양 올리는 듯하다. 사진=남수연 기자

 

원효의 새벽 노래

                          고 영 섭 (시인, 불교학자)


1
들풀들 파릇파릇 햇빛에 반짝이는
새 날 새 세상을 열으리
첫새벽 온누리에 비치는 부처님 햇빛이 되어
동두렷이 터오는 새밝을 열으리

달동네 뒷산 언저리 위 공동묘지의
한 무덤 속에서 깨어나 깨달았네
마음이 일어나므로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므로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니듯
마음 밖에 어떤 현상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것이 있으리

황소 두 뿔 사이에 경상을 걸치고
그 위에 붓과 벼루를 올려놓았네
소달구지 위에서 내내
‘금강삼매경론’ 다섯 권을 짓고 나니
박복한 녀석 하나가 훔쳐 달아났네

사흘 만에 다시 ‘약소’ 세 권을 짓고 나서
하늘 떠받치는 노래를 불렀네
지난날 백 개의 서까래를 구할 때
나는 빠졌었지만
오늘 아침 대들보 하나를 들어 올릴 때는
나만이 할 수 있었네.


2
밤골 조그만 마을에 거(居)하는 사나이가 되어
미아리 삼양동 봉천동 달동네의
무허가 판자촌 봉창이 뚫린 집 앞에서

날마다 출근길에 시달리는 맞벌이 들꽃들과
공납금 등록금을 내지 못해 우는 아이들에게
세상의 주인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면서
노래와 탈춤으로 한바탕 마음을 달래주었네

연탄재가 널부러진 길목에서
임금인상 작업환경개선 적정근무시간을 외치다가
노동으로 지쳐 돌아오는 들풀들에게
파릇파릇 생기를 불어넣어 주면서

새 집 짓기 위해 들어 올려진 대들보를
불쏘시개로 쪼개서
세상 밝히는 장작불로
활활 타오르게 했네.

 

[1374호 / 2017년 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