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 원통보전 앞에서 열리는 낙산사 산사음악회는 동해안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불교문화를 소개하는 문화포교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화마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았던 2005년 10월 낙산사에서는 세 번의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화마를 간신히 피한 낙산사 보타전 특설무대에서는 ‘꿈과 희망의 한마당 KBS산사음악회’가 열렸고 강원예술고등학교 재학생들이 마련한 의상음악회도 곧바로 이어졌다. 그리고 낙산노인전문요양원 개원에 맞춰 실버음악회도 마련됐다. ‘낙산사와 함께하는 희망 만들기’라는 주제로 열린 이들 음악회는 산불로 피해를 입은 지역주민들의 고통을 나누고 희망을 키워나가자는 격려와 위로의 자리였다. 도심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적 혜택이 적은 양양지역에서 청소년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불자 강 모 씨는 얼마 전 낙산사에서 배달된 우편물 한 통을 받았다. 제법 두툼해 보이는 봉투 속에서 나온 것은 상자모양으로 접어서 사용할 수 있는 보시함과 백일기도 동참 발원문, 그리고 낙산사가 수신처로 인쇄돼 있는 회신용 봉투 몇 장이었다. 12월 23일 입재에 들어가는 11차 백일기도 동참 안내와 함께 ‘신도님들은 매일 가정에서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10차 백일기도 동안에 보시한 불전함을 열어서 11차 백일기도 입재 동참금으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가 적혀 있었다. 상자모양으로 접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동봉한 보시함은 바로 가정에 비치해놓고 매일 기도 때마다 보시금을 넣는 불전함이었
“보살은 큰 시주(施主)가 되어 온갖 가진 것을 다 보시하되, 그 마음은 평등해 후회하거나 인색함이 없으며, 과보를 바라지 않으며, 명성을 구하지 않으며, 이득을 탐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온갖 중생을 구호하고, 온갖 중생을 이롭게 하기만을 위할 뿐이다.”『화엄경』의 이 가르침은 이웃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그들을 이롭게 할 방법을 고민하면서도 명성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야말로 불자가 힘써 실천해야할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보살이 수행하는 여섯 가지 실천인 육바라밀 가운데에서 그 첫 번째가 보시이듯 보시는 모든 보살행의 출발이며 불자로서 행해야할 가장 중요한 실천 덕목의 하나이다.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나눔의 손길 낙산사가 전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불자들은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천년
홍련암 기도동참 불자들의 숙소인 연하당 ‘…관세음보살을 지성껏 부르면 설사 큰 불이 들지라도 불이 능히 태우지 못하며, 큰 물에 빠질지라도 죽는 일이 없으며, 바다에서 검은 바람을 만나 죽음에 임박했더라도 해탈을 얻을 것이다.…’ 『법화경』 보문품 중에서. 관세음보살의 가피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낙산사를 몽땅 집어 삼키고 동해바다까지 치달아 오를 듯 기세등등하던 4월의 화마 속에서도 티끌하나 묻지 않는 연꽃처럼 탈 없이 무사했던 홍련암의 모습 앞에서 불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을 떠올렸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이 끝까지 홍련암을 보듬고 화마를 막아준 것은 수행과 기도의 원력으로 낙산사를 다시 세우라는 뜻이었음을 깨달았다. 화마에 덴 상처가
낙산사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전 직원을 대상으로 친절교육(위)을 실시했다. “어서 오세요, 낙산사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환한 미소를 안고 달려 나오는 반가운 인사 소리가 종무소에 가득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종무소 입구에 발길을 들이면 안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인사소리에 낯선 방문객조차 마음이 푸근해진다. 『화엄경』에서 문수보살은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面上無瞋供養具 면상무진공양구),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口裏無瞋吐妙香 구리무진토묘향)”라는 게송으로 밝은 얼굴과 부드러운 말을 칭송하셨다. 사람을 대하는 밝고 환한 미소, 그리고 친절한 인사 한 마디는 참다운 공양과 미묘한 향에 버금가는 귀한 공덕이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1회성 인연을 평생 불자로 만들자.’ 낙산사 주지 정념 스님은 “잠깐 들렀다 발길을 돌리는 관광객에게도 불교를 알려 평생 불자로 만들어야 된다”고 역설했다. 낙산사가 찾아오는 사찰을 만들기 위해 설치해 놓은 지압로〈사진 위〉와 무료 커피 자판기〈사진 아래〉. “이거 정말 되는 거야?”“그런가보네, 여기 무료라고 써 있잖아. 한 번 눌러봐.”“어? 진짜로 나오네. 와 이거 정말 좋다.”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하는 낙산사 보타락 아래서 커피자동판매기 한대를 둘러싸고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함껏 터져 나온다. 자동판매기 옆에 붙어있는 ‘커피 한잔의 여유, 무료입니다’라는 문구에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은 자동판매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 ‘톡’하고 따끈한 커피 한 잔이 모락모락
낙산사 대중 스님의 지도로 진행되는 방과 후 특별활동(사진 위)과 낙산사의 지원으로 결실을 맺은 강원 파라미타 청소년 협회 발족식.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에서 이르시기를 “승방·공한지·성읍·항맥·부락·마을 중의 어디에 있거나, 그 들은 바와 같이 부모·친척·선우·우인 등을 위해 힘자라는 데까지 가르침을 설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듣고 나서 기뻐하여 다시 부처님을 대신해 가르침을 설할 것이며, 그것을 들은 사람 역시 기뻐하여 부처님을 대신해 가르침을 설해서 차례차례로 영향을 미쳐갈 것이다”고 설하셨다. 언제 어느 곳에 있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노력한다면 그 가르침을 들은 이들 하나하나가 또 다시 불법을 전하는 포교사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시다. 오늘
원통보전 주변에 들어서는 전각의 축대. 옛 부재를 최대한 활용해 역사를 계승하는 의미를 살렸다. “오죽헌-해운정-회전문 등강원 지역 명품 고건축들낙산사 전각 모델로 삼아” 2005년 발생한 산불의 상처 위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자’는 국민들의 염원을 모아 시작된 낙산사 복원 불사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었다. 전소된 가람의 잔해를 거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아래 잠들어 있는 1700년의 역사를 되찾는 동시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던 전각의 배치를 전통과 법식에 맞는 여법한 형태로 바로잡기 위한 산고와도 같았다. 어느새 3년 여의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는 이 대작불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선장은 낙산사 복원불사의 도감 소임을 맡은 현고 스님〈사진〉
2005년 6월부터 발굴조사가 진행된 원통보전지. 2005년 6월 낙산사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를 비롯해 건축학자, 고고학자 등 문화재관련 전문가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낙산사를 주시했다. 두 달여 전인 4월 발생한 화재로 잿더미가 된 원통보전. 그 안타까움을 가슴에 쓸어 담고 이제 그 잿더미 아래 간직돼 있는 낙산사 천년의 역사를 조심스레 열어보기 위한 역사적인 첫 발굴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산불이 낙산사를 덮쳐 원통보전이 화마에 휩싸이고 동종이 녹아내리며 전 국민의 가슴도 새까맣게 타들어가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각에서는 ‘복원’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낙산사를 화재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 하려면 얼마의 시간과 얼마의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는 식의 추측과 제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사찰은 우리 생활과 떨어질 수 없는 공간이었다. 민중들의 정신적 귀의처였고 다양한 문화가 꽃피는 무대였으며 사회적 약자들의 의지처였다. 그러나 최근 잇따르는 종교편향사건들이 대변하듯 추락하고 있는 불교의 위상은 그 끝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원인에 대해 8·15광복 이후 수립된 친기독교 정권을 비롯한 외부적 요인들을 손꼽기도 하지만 불교계 내의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어린이·청소년 등을 주축으로 하는 포교 강화, 사회의 약자를 보살피는 복지사업의 확대, 그리고 새로운 문화 창출의 리더로서 자리매김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본지에서는 2005년 발생한 화재의 아픔을 딛고 도량복원의 대작불사를 진행하는 동시에 지역 사회의 포교, 복지, 문화 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