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총본산 조계사가 상월결사 인도순례 회향 1주년을 기념하는 법석을 열어 부처님 법 전하는 전법의 길을 묵묵히 실천해 갈 것을 발원했다.서울 조계사(주지 담화 스님)는 3월 23일 오후 경내 대웅전에서 ‘인도순례 회향 및 전법선언 1주년 기념법회’를 봉행했다. 이 자리에는 조계사 주지 담화, 부주지 탄보, 전 불교신문사 사장 삼조 스님을 비롯해 김형규 일일시호일 대표, 주윤식 중앙신도회장, 정충래 만해마을 원장, 이규민 전 국회의원 등 상월결사 인도순례단과 조계사 사부대중 300여명이 동참해 1년 전 봉행된 인도순례의 의미와 감
부처님 법을 올곧이 배우고 전법해 불교를 중흥하자는 ‘상월결사’ 정신으로 출범한 수미산원정대가 7번째 문을 열었다. 제7기 수미산원정대에는 개교 이래 최다 인원인 148명이 입학했다.봉은사 수미산원정대(수미산원정대 단장 원명 스님)가 2월 24일 오후 7시 보우당에서 ‘제7기 수미산원정대 입학식 및 오리엔테이션’을 가졌다. 입학식 및 오리엔테이션은 ‘상월결사 수미산원정대 소개 영상’ ‘6기 졸업 영상’ 시청을 시작으로 학사일정 소개, 입학생 소개, 수미산원정대 단장 원명 스님 인사말, 각 동문회 대표 축사, 불교음악원 축가 순으로
지난 1월 16일 해봉 자승 대종사의 49재 막재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소신공양이다’ ‘분신자살이다’ 궁금해 하고 의심을 품기도 한다. 며칠 전만 해도 왕성하게 활동하셨던 분이 갑자기 자화장으로 입멸하셨으니 자신들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계종 대변인 우봉 스님은 “자승 스님이 종단안정과 전법도생을 발원하며 소신공양 자화장으로 모든 종도들에게 경각심을 남기셨다”고 발표했고, 총무원장 스님은 “가히 범부로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격외의 모습을 보이셨다”라고 찬탄했다. 불교사적으로 소신공양은 ‘법화경’에서 언급되
지난해 11월 29일 원적에 든 조계종 전 총무원장 해봉당 자승 대종사의 49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본지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신 교수는 자승 스님의 입적을 둘러싼 불교계 안팎의 무분별한 비난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하며 불자들에게 남겨진 과제는 수행과 전법임을 강조했다.편집자불교계를 이끌던 지도자 중의 한 분이 입적하셨다. 입적의 기연(機緣)이 남달랐기에 놀랍기도 했고, 건강하시고 평소처럼 활동하시던 분의 갑작스러운 입적이었기에 더욱 놀라웠다. 필자는 법보신문 기사를 통해 자승 스님의 최근 정황을 알게
1962년 조계종 통합종단이 출범한 이후 2009년 제32대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퇴임 때까지 역대 총무원장의 평균 재임 기간은 1년 10개월에도 미치지 못했다. 43년의 세월 동안 총무원장의 취임과 퇴임이 무려 서른두 번이나 반복된 것이다. 이 가운데에는 취임 1년도 안 돼 총무원장이 물러난 일도 17차례나 있었다. 4년 임기를 채운 총무원장은 의현, 월주, 지관 스님 단 3명뿐이었다.총무원장의 이같은 잦은 교체는 불교계의 지속적인 갈등과 혼란 양상을 보여준다. 종헌·종법상 임기가 보장돼 있는 총무원장이 그 임기를 다하지 못하는
조계종 제16교구본사 고운사(주지 등운 스님)가 12월11일 경내 화엄문화템플관에서 제77차 교구종회를 개최했다. 총원 59명중 44명이 참석했으며, 2024년 교구 예산안 심의의 건, 연말 이웃돕기 성금 모금의 건, 상월결사 대학생 전법기금 1억원 배정의 건을 심의했다. 기타 안건으로는 임대승인신청서 1월 중 제출, 신도시포교당건립 비용의 건, 가람지기2 사용, 기부금영수증발급, 일출암 해맞이행사, 말사 성보 지역박물관에서 총무원 박물관으로 위탁 보관할 것 등을 상정해 확정했다.주지 등운 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종교인구가 줄어드는
‘생사가 없다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 구나.’(자승 스님 열반송)12월3일, 겨울바람 시린 서울 조계사 마당에서 봉행된 자승 스님의 영결식장엔 안타까움과 무거운 혼란이 교차했다. 자승 스님의 마지막 모습이 던진 충격이 세간과 출세간 모두에 컸기 때문이다. 11월29일 늦은 밤, 원적 소식이 알려지고 조계사에 분향소가 차려지는 동안 스님의 행적이 하나둘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안성 칠장사 CCTV에는 입적 당일 자승 스님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손수 차량을 운전해 오후 3
영남대 불교동아리 ‘정각회’가 창립됐다. 출범식은 12월 4일 경산 천마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조계종 제10교구본사 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 허창덕 영남대 부총장, 주호영 국회의원, 조현일 경산시장, 장호경 법륜불자교수회 회장을 비롯해 대불련 출신 동문과 정각회원 50여명 등 300여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했다. 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은 지안·성호·법은 스님을 지도법사에, 김한철 영남대 특수교육학과 교수를 지도교수로 위촉해 영남대 불교학생회 지도법사단을 구성했다.은해사 주지 덕조 스님은 출범식에서 치사를 통해 “여러분들에게는 좋은 스승과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인연과 함께 사라져간 자승 대종사의 임종게를 접하고 오랜 시간 먹먹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점에서 홀연히 모든 것을 내려놓으셨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 그동안 남의 말하기 좋아하던 사람들이 스님의 삶을 험담했지만 정말 이제는 자신들의 험담을 반성하고 참회해야 할 시간이 아닐까 싶다. 살아계실 때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고, 수많은 사람들과 누구보다 수많은 인연을 맺어 오셨다가 홀연히 일체를 놓아버렸다. 우리 사회에 스님의 임종을 두고 너
해봉당(海峰堂) 자승(慈乘) 대종사(大宗師)의 갑작스러운 입적 소식을 접한 심정은 고통스럽고 비통하다. 사부대중의 크나큰 의지처이자 이 시대의 큰 스승이 한순간에 떠났으니 그 슬픔과 허전함은 말할 수 없이 깊고 크다. 자승 대종사가 걸어온 여정에서 우리는 스님의 고뇌를 읽을 수 있다. 그 고뇌가 한국불교의 위상을 격상시켰음을 또한 새삼 알 수 있다. 제33·34대 총무원장(2009∼2017)에 취임하며 내 건 두 개의 슬로건은 ‘소통과 화합을 통한 불교중흥’ ‘자비와 화쟁으로 이웃과 함께’였는데 과감한 결단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목적
대한불교조계종 33·34대 총무원장으로 불교의 사회적 위상을 반석 위에 올려놓고, ‘부처님 법 전합시다’라는 제2의 전도선언으로 한국불교 중흥의 대전기를 마련한 해봉당 자승 대종사의 영결식이 12월3일 서울 조계사에서 사부대중 8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결사에서 “천축국 40여일에 걸친 가행정진길에는 아직도 발자국이 그대로 지워지지 않았고, 위례 신도시 상월선원에서 100일동안 앉았던 좌복에는 여전히 따스한 기운이 식지 않았으며, 해동의 삼보사찰을 이어가며 밟았던 순례길에서 떨어뜨린 땀방울은 지금도
조계종이 12월1일 오후 3시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서초구 은정불교문화재단에서 발견한 자승 스님 자필 유언장 3점을 공개했다.자승 스님은 유언장에서 "상월선원과 함께해주신 사부대중께 감사하다"며 "우리 종단은 수행종단인데 제가 여러소임을 살면서 수행을 소홀이 한 점을 반성한다. 결제 때 마다 각 선원에서 정진하는 비구 비구니 스님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존중한다. 해제때마다 많은 선지식들이 나와 침체된 한국불교를 이끌어 가주시길 서원한다"고 남겼다.총무원장 진우 스님에겐 미안함을 전했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