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세기부터 조성된절벽 사원 아잔타석굴은고대 교역로 따라 꽃핀인도 석굴 예술의 기원 바위산 둘러싸인 엘로라엔불교·힌두·자이나 공존선의의 석굴 경쟁 펼치며찬란한 예술작품으로 탄생 ▲ 아잔타석굴군. 기원전 200여년부터 시작된 석굴 조성은 7세기 중반까지 계속됐다. 고대 교역로였던 와고라강가의 수직으로 솟은 절벽에 위치한 아잔타석굴은 1200여 개에 달하는 인도의 석굴 사원 중에서도 단연 백미로 손꼽힌다. 해가 기울고 있다. 길어야 한 시간 남짓이면 해가 질것이다. 서산에 내려앉으려는 해를 묶어둘 수 없으니 걸음을 재촉하는 수밖에. 매표소 입구에 내리자마자 달음박질치듯 내달려 셔틀버스로 갈아탄다. 매표소에서 계곡 입구까지
아쇼카가 사랑한 여인 데비‘부처님 곁 묻히고 싶다’ 유언근본8탑 진신사리 모셔 조성후대 증축하며 현재 규모로지키지 못한 애틋한 사랑이남방 전법 인연으로 이어져 부처님 생애 조각한 ‘토라나’정교함·예술성 단연 최고봉 ▲산치유적의 중심인 그레이트스투파는 아쇼카황제가 조성한 부처님 진신사리탑이다.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여인 데비가 ‘부처님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자 그녀의 고향에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흐른다. 무굴제국의 도시 아그라를 뒤로 하고 다시 야간기차에 몸을 실었다. 스라바스티 기원정사 순례를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발자취를 찾는 불적순례는 사실상 끝났다. 도로사정을 감안, 예정돼 있던 상카시아 순례를
코살라 부호 수닷타가 보시부처님 45번 하안거 가운데24번 머무신 교단의 중심지현전 경전 80% 설해지기도 바라문교도였던 파세나티왕불교 귀의 후 아낌없는 지원 사위성 신변에 담긴 참 뜻은중생 근기 맞춰 제도하려는한없는 원력·자비심일 수도 ▲옛 코살라국의 수도였던 사왓티는 오늘날의 스라바스티다. 사왓티 성벽 유적 밖에는 코살라 최고의 부호였던 수닷타 장자가 승단에 기증한 기원정사터가 잘 보전돼 있다. 부처님은 이곳에서 24번의 안거를 보내셨고 수많은 경전을 설하셨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습니다.…’ 수많은 경전들이 이렇게 시작된다. 사위성(舍衛城), 산스크리트어로는
카필라바스투 위치에 대한네팔·인도 측 주장 엇갈려1898년 명문 새긴 유물이발견된 후 인도 측에 무게 유년기부터 출가 전까지최고의 교육 받으며 성장 ▲인도 우타르프라데쉬주 바스티 지역 피프라와의 카필라바스투 유적. 이곳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사리병과 ‘카필라바스투’라는 명문이 적힌 유물이 발견되면서 이 유적이 카필라바스투라는 주장이 급격히 힘을 얻었다. 룸비니동산이 석가모니부처님의 탄생성지라면 싯다르타가 유소년기를 거치고 성년이 되어 출가직전까지 머물렀던 곳은 카필라바스투다. 진정한 고향인 셈이다. 싯다르타가 태어난 카필라국은 작은 나라였다. 당시 북인도에는 코살라국이나 마가다국, 밤사국, 밧지연합 등 강한 군사
웅장한 나무엔 오색깃발전 세계 수행자들의 성지 1896년 독일학자 석주 발견아기부처 탄생 전설서 역사로 후대인들 탄생관련 기록 속무수한 이적은 찬탄과 경배 생명에 헌정된 진리의 가르침행간 읽는 힘은 마음과 지혜 ▲룸비니동산엔 오색의 깃발이 꽃비처럼 하늘을 장엄하고 있다. 그 아래 하얗게 빛나고 있는 건물이 아기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부인을 기념하는 마야데비사다. 불교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들 뿐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교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 아니 출·재가를 가리지 않고 삼귀의와 사홍서원을 받드는 불자라면 일 년 중 가장 바쁜, 그러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부처님오신날이다. 부처님오신날은
인도·네팔 국경마을 소나울리는 사람·차·가축 뒤엉켜 혼란 극치 여권 필요없는 현지인과 달리 외국인들과 화물 실은 차량은 비자·통관 하염없이 기다려야 룸비니로 가는 성지순례 길목서 더위·먼지에 몰려든 짜증 반성 ▲인도와 네팔에 걸쳐있는 국경마을 소나울리. 인도와 네팔 국민들은 여권 없이도 양국을 오가지만 외국인들과 화물은 통관절차를 거쳐야 한다. 길게 늘어서 차례를 기다리는 차량과 국경을 오가는 사람들이 뒤엉켜 소나울리의 거리는 혼란으로 가득차 있다. 싯다르타, 아기부처님 탄생지 룸비니는 인도가 아닌 네팔에 속해있다. 영국 지배를 거치며 네팔과 인도 국경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부처님 법체 다비했던다비장 람바르스투파둥근탑 손 닿는 곳엔온통 불자들 올린 금박 ▲ 쿠시나가르의 살라나무 아래서 열반에 든 부처님의 법체는 사람들의 애도 속에 이운돼 1.5km 가량 떨어진 이곳에서 다비됐다. 그 자리를 기념해 조성된 전탑이 람바르스투파다. 좀처럼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 해가 떴는데도 사방이 여전히 희뿌옇다. 열반당을 나와 구름 속을 산책하듯 쿠시나가르의 거리를 걸어 다비장으로 향한다. 아직 이른 시간 때문인지 길가는 한산하다. 별다른 집이나 건물도 없어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쿠시나가르의 거리는 평온하다 못해 적막해 보인다. 그저 작고 평범한 인도의 시골마을, 쿠시나가르는 그 이상도
작은 시골 마을에 불과하지만아쇼카왕도 공양한 열반 성지이슬람 침략 후 폐허로 변해19세기 열반상 등 발굴되며전 세계 불자들 발길 이어져 “무아 깨닫는 것 최상의 공양”붓다의 가르침은 생생하지만꽃 한 송이 올리는 손길 위로스승 잃은 슬픔 진득이 쌓여 ▲ “모든 것은 변하고 무너지나니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나는 방일하지 않았으므로 바른 깨달음을 얻었느니라.” 쿠시나가르 열반당 안에는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댄 채 사자처럼 발을 포개고 누워 열반에 드신 부처님의 열반상이 조성돼 있다. 열반은 부처님께서 보이신 위대한 진리의 증거인 동시에 정진하라는 경책이다. 그 앞에 손 모으고 머리 조아린 우리는 그 가르침을 잊지 않고 있는지
인도 최초 공화정인밧지연합 중심 도시 자유로운 토론 문화진취적인 분위기는여성출가·2차결집의정서적·문화적 토대 ▲부처님 입멸 후 수습된 진신사리를 봉안했던 근본 8탑 가운데 릿차비족이 세운 사리탑. 그러나 아쇼카왕의 사리 발굴 후 복원되지 못한 채 남아있다. 아름다운 도시 바이살리로 간다. 부유하고 활기차던 릿차비족의 심장. 인류 최초의 공화정을 실현했던 밧지연합의 수도. 붓다가 사랑한 도시. 바이살리는 석가모니부처님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도시다. 수행자 싯다르타가 첫 스승인 알라라깔리마를 만난 곳이었고 성도 후에는 다섯 번째와 마지막 하안거를 보내셨다. 여성 출가를 처음으로 허락하신 곳도, 가뭄을 퇴치하는 이적을 보이신 곳
지혜·신통제일 존경받으며 죽음까지 함께한 평생 도반 초기교단 형성·포교 헌신 빔비사라·왕사성으로 익숙 죽림정사·영취산 불연의 땅 옛 영화 사라진 시골이지만 불교사 영원히 기억될 성지 ▲날란다사원에는 이곳 날란다에서 태어나고 입적한 사리불존자를 기념해 아쇼카왕이 세웠다는 석탑이 있다. 세계 최초의 불교대학이자 최대 규모, 최고 수준의 교육환경을 갖추고 있던 날란다사원. 날란다라는 작은 마을을 세계적인 명소이자 불교성지로 끌어올린 날란다사원은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서도 초기 교단의 버팀목이 되었던 두 제자, 사리불존자와 목건련존자의 추억을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섯 왕들이 대이어 이룩한세계 최대·최고 종합대학 현장스님 상세한 기록 남겨신라 학승들도 이곳서 입적 보대·옥루 즐비했던 교정13세기 이슬람교 침략으로1만여 스님과 함께 불길 속 ▲5세기 시작된 날란다사원의 역사는 700여 년간 화려하게 이어졌다. 대를 이어 여섯 왕이 중창했고 1만여 명의 스님들을 공양하기 위해 100여 마을이 하사됐다. 그러나 12세기 말 이슬람교의 침입으로 사원은 불길에 휩싸였고 스님들은 학살당했다. 그러나 날란다의 명성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 의해서다. 7세기 중국의 구법승이자 역경승, 그리고 ‘대당서역기’의 저자로 유명한 현장 스님은 ‘서유기’에 등장
네란자라 강 보이는 작은 언덕성도 후 49일 머물며 전법 준비 야쇼카왕 보리수 앞에 사원 조성전 세계 불자들 발길 끊이지 않아신라 혜초 스님도 환희의 시 남겨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보드가야 우루벨라의 작은 언덕은 지금 전 세계 불자들의 추앙을 받는 최고의 성지 ‘마하보디사원’이 되었다. 기원전 3세기 야쇼카왕은 이곳에 대탑과 사원을 지었다. 새벽부터 서둘렀지만 해가 중천을 지나고서야 보드가야에 도착했다. 바라나시에서 보드가야까지 동쪽으로 243km. 우리나라에서야 버스로 3시간 남짓에 불과한 거리지만 꼬박 5시간이 걸렸다. 고르지 못한 도로와 턱없이 부족한 휴게소, 성지순례의 만만치 않은 여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