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닝(西寧)역에 도착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열차 밖으로 나간다. 23시간 만에 밟은 땅의 감촉이 포근하다. 잠시 짐을 내려놓고 안개에 젖은 아침공기를 한껏 들이마신다. 짙은 농도의 산소가 몸 속 구석구석에 파고든다. 고산증세가 씻은 듯 사라진다. 두통도 호흡곤란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는다. 실로 오랜만의 편안함. 아무런 장애 없이 숨 쉴 수 있다는 게 이토록 환희로운 일이었는지. 히말라야에 들고 나오며,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부재(不在)와 그에 따른 고통을 겪은 후에야 새삼 깨닫게 된다.쫑카파 태어난 뒤 태반을 묻자그 자리서 한
이른 새벽 숙소를 나선다. 시커먼 하늘에 별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멀리서 차가운 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온다. 옷깃을 여미고 주변을 살핀다. 도로에 차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사람들은 부산하게 움직이며 어디론가 향한다. 간간히 경적소리도 들린다. 사그라지는 별빛, 온기가 스며든 바람 대신 쾌쾌한 매연과 오가는 사람들의 처진 어깨가 아침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뒤로는 철근과 콘크리트가 만들어낸 회색풍경이 무미건조하게 이어진다. 오늘은 칭짱(靑藏)열차를 타고 티베트를 떠난다. 이 모습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라싸에 도착한 직후 자본에
“당신은 그 어떤 것이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사물의 모양을 잘 관찰하여 선악을 분별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의혹을 끊게 하는 묘관찰지(妙觀察智)를 부정하는 셈이다. 묘관찰지가 없다면 과연 어느 누가 무분별지(無分別智)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또한 생각을 멈춰야 한다지만 그 생각 자체도 이미 마음작용을 일으켰다는 증거 아니겠는가.”티베트불교 향방 결정짓게 될인도·중국불교 측 논쟁 벌어져마하연이 선종 돈오 설파하자오류를 지적하는 카말라실라논쟁 끝에 인도불교가 승리해약속대로 마하연 티베트 떠나754년, 토번 사절단
라싸 외곽을 통과한다. 공사현장에서 흘러나온 소음이 곳곳에 내걸린 오성홍기(五星紅旗)들을 흔든다. 먼지는 멀리 돌무더기 산에서부터 바람에 실려 날아와 아스팔트 도로와 콘크리트 건물로 곤두박질친다. 현재 라싸는 시시각각 자신의 몸을 불리고 있다. 과거 황량한 벌판이었던 곳에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깔렸다. 높이가 깊음을 대신하고, 속도는 현상을 가로질러 질주하고 있다. 회색 라싸의 무미건조한 풍경을 무심히 바라본다. 오늘의 티베트를 응축하고도 내일의 청사진을 그려내고 있음인가. 알알이 박혀있는 신심만은 변치 않길 기원할 뿐이다.8세기
‘신들의 땅’ 라싸로 돌아왔다. 에메랄드빛 호수 얌드로쵸에서 고색창연한 갼체로, 그리고 판첸라마의 흔적 짙게 배어있는 시가체까지. 티베트가 히말라야 고원 곳곳에 아로새겼던 부귀와 영광을 뒤로하고 다시 한 번 라싸와 마주한다. 며칠 전, 이곳에서 목격한 티베트인들은 냉엄한 현실에 억눌려 신음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얼굴들에는 굳건한 신심에서 비롯된 결연함이 가득하다. 무엇이 그들을 변화시켰을까. 아니, 순례자의 마음은 어떤 변화를 겪은 것일까. 사상이 침투하고 자본에 잠식당해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히말라
옅게 드리운 구름이 이제 막 떠오르려는 태양을 잠시 숨겨놓는다. 가리어진 빛은 구름 위 하늘로 자욱하게 퍼져나가며 어스름을 뿌린다. 밤의 차가움에 움츠러들었던 대지가 미약한 빛을 머금고 조심스럽게 생명력을 발산한다. 햇살이 드러나자 모든 광경은 순식간에 확연해진다. 티베트인들의 오체투지가 향하는 곳, 시가체(Shigatse) 타쉬룬포(Tashilhunpo) 사원 지붕의 황금빛이 햇살을 타고 광장으로 흘러내린다. 빛이 선명해질수록 기꺼이 몸을 낮춘 티베트인들의 기도 또한 선명해진다. 어둠은 영원하지 않다. 이들은 찬란하게 떠오른 가피
얌드로쵸를 지나 설산을 배경으로 뻗어있는 협곡을 가로지른다. 높은 산과 낮은 하늘 사이에 걸쳐있는 도로가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며 끝없이 이어진다. 저 멀리 하얀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더니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진다. 풍경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주변에는 뜻밖의 적막만이 가득하다. 마치 수만 년 동안 감춰졌던 비밀을 향해 성큼성큼 들어가고 있는듯하다. 이 광활한 대자연 앞에서 순례자의 마음은 환희로 고동친다. 인간의 힘으로 이 모습을 만들어낼 수 없듯, 인간의 언어 또한 감히 이 모습을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티베트에 도착한
순례단을 태운 버스가 히말라야의 품속으로 들어간다. 판첸라마의 도시, 시가체로 향하는 길. 라싸에서 벗어나자마자 눈부신 대자연과 얄룽창포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얄룽창포강은 신들이 살고 있는 카일라스산에서 발원해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을 흐르는 티베트 문명의 발상지다. 12개 마을 부족장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됐던 네치짼뽀가 강림했던 얄룽 계곡을 품었기에 뵈릭 민족에게는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진다. 보랏빛 야생화가 곳곳에 피어있는 강가 주변으로 등짐 진 아낙들이 한갓진 걸음을 옮긴다. 목동은 풀을 뜯어먹기 위해 멈춰선 면양을 가벼운 돌팔
포탈라궁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티베트 불교의 보고(寶庫) 포탈라궁이 차창 밖으로 흐릿하게 사라져간다. 그 모습 못내 아쉬워 흘깃거린다. 마음은 아직 저곳을 서성이건만, 버스에 의탁한 육신은 이미 라싸 시내를 질주하고 있다. 그 속절없음에 가슴이 아려온다. 언제 저 풍경을 다시 친견할 수 있을 것인가. 몇 분 전, 버스 안에서 바라본 장면들이 마지막 기억으로 남게 되진 않을까. 라싸에 우뚝 솟은 반야용선(般若龍船) 포탈라, 그 장엄함을 되새기고 또 되새겨본다.쫑카파 제자 샤카 예쉐가 창건매년 열리는 금강저축제 유명마두금강 등
노블링카를 출발해 라싸시내를 달리던 버스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다. 적막했던 버스 안이 순례단의 갑작스러운 탄성으로 술렁인다.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바라본다. 히말라야의 강렬한 햇살이 시야를 뿌옇게 흐린다.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이곳 햇살과의 대면은 언제나 힘겹다. 용기를 내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니 풍경은 조금씩 선명해진다. 도로와 차, 수많은 인파 그리고 하얗고 붉게 물들어있는 포탈라. 완만한 곡선의 마르뽀리(紅山) 언덕 위로 솟은 포탈라궁의 압도적인 위용이 순례단 앞에 홀연히 나타난다. 라싸로 진입하는 외곽도로와
1959년 3월, 라싸에서 신년 축제기간에 맞춰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1년 전인 1958년 티베트 동부 캄과 암도 지역을 피로 물들인 무장봉기에 이은 독립투쟁이었다. 중국정부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12만 명이 학살되고 6000개 사원이 파괴됐다. 불안한 정국이 지속되자 중국정부가 달라이라마를 납치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연극공연에 초대하면서 홀로 중국군 사령부로 오라는 조건을 붙인 것이다. 수만 명 티베트인들이 달라이라마를 보호하기 위해 노블링카로 모여들었다. 중국정부는 이들을 짓밟기로 결정했다. 달라이라마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사천왕상이 서 있는 정문을 지나자 중정이 나온다. 느닷없는 적막이 당황스럽다. 외부의 번잡함은 이곳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우성 들끓는 사바세계에서 순식간에 극락으로 들어온 것 같다. 순례단과 함께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황금빛 옥상에서 반사된 햇살이 바닥 위로 소복하게 쌓여있다. 히말라야 고원의 자극적인 햇살을 지극한 신심으로 여과해 담아놓은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버터램프의 독특한 향내음이 코끝을 간질이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티베트인들은 저마다 공양용 야크버터를 손에 들고 법당으로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며
새벽기운 스산하게 남아있는 거리에 마니차를 손에 쥔 티베트인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간간이 오체투지로 몸을 낮춘 사람들도 보인다. 옷매무새를 다듬는 사소한 동작 하나에서도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직 부처님을 위한, 부처님을 향한 지극한 신심만이 느껴질 뿐이다. 순례단은 지금 조캉 사원으로 향하는 길 위에 있다.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건만 거리엔 벌써부터 꼬라(순례)를 하는 티베트인들로 가득하다. 라싸에 도착한 직후 기대와는 다른 모습에 적잖이 실망했던 터라 지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낯설게 다가온다. 과연 어느
당혹스럽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믿겨지지 않는다. 꽉 막혀있는 도로. 라싸에서 순례단이 처음으로 만난 것은 교통체증이었다. 순례단 버스를 에워싼 차들에게서 나오는 경적소리가 귀를 따갑게 한다. 차 안의 사람들은 양 손을 운전대에 힘없이 올려놓은 채 무료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도로주변에는 갖가지 공장은 물론이고 포크레인 등을 판매하는 건설장비 업체가 즐비하다. 이제 막 외형을 드러내기 시작한 대형 건물의 공사현장에 안전모를 쓴 인부들이 위태롭게 매달려있다. 고개를 들어 시야를 넓혀보니 공사 중인 건물은 한두 개가 아니다. 강렬한 직
이 기사는 조계종 교육원 승려연수교육의 후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차창 밖으로 황량한 풍경이 낮게 깔린 하늘과 맞닿을 듯 펼쳐진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끝없이 이어지는 잿빛 돌무더기 산, 일행을 실은 버스는 지금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풍경들이 만들어내는 눈부신 조화로움 속을 달리고 있다. 인도 판과 아시아 판의 충돌로 생성돼 아직도 그 높이를 키워가고 있다는 히말라야에서 삶의 터전을 닦아온 사람들이 풍경의 일부인양 드문드문 박혀있다. 마치 이토록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명의 숨결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