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탐한 숙부 수양대군은 1453년(단종1년) 계유정난을 일으킨다. 단종을 지지했던 세력을 대거 숙청하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단종의 가장 든든한 신하 김종서는 철퇴에 맞아 쓰러졌고, 영의정 황보인도 피살되었다. 그리고 의정부의 수많은 대신들도 피살되거나 축출당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양대군은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된다. 1455년(단종3년) 9월에는 스스로 왕위에 오르니 조선의 7대왕 세조이다. 세조의 왕위찬탈에는 많은 이들의 희생이 따랐다. 성삼문 등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처형당한 사육신을
조선 중기 대표적 화가로 명성을 날렸던 김홍도는 영혼이 자유롭고 창의성이 풍부한 천재적 작가로 불렸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궁중의 도화서에서 과감하고 자유로운 발상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전통의 규범이나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시대에 맞는 제재를 창안하고 새롭게 표현하며 새로운 기법을 시도했다. 그가 보여준 창의성은 조선시대 회화에 변곡점을 마련해 당시 회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혁신을 통해 조선 회화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그를 기점으로 변화가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후대의 회화는 물론 민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책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서양 문물이 밀려 들어오던 근대기, 불교회화는 서양의 화풍을 만나 어떻게 변화했을까. 조선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불교회화의 전통을 간직하면서도 근대기 새롭게 도입된 서양화의 영향을 받아들이며 독특한 표현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근대기 불교회화의 진화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은 2월 15일부터 7월 21일까지 상설전시관 2층 불교회화실에서 19~20세기 불교회화와 초본 총 23건 37점을 전시한다. 특히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활동한 대표적 화승들의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태효 스님, 민추본)이 남북 평화와 화합을 위한 기원법회를 봉행키로 했다. 이는 불자들의 대북인식을 전환하고 교계 통일 의식 확산에 주력하겠다는 취지다.민추본은 2월 6일 서울 인사동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주요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본부장 태효 스님은 “내년은 남북분단이 고착화된 지 80년이 되고,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 발발 75년이 된다. 분단과 전쟁을 겪은 후에도 수없이 많은 격랑의 시간을 거친 끝에 평화를 이뤄냈지만 지금 그 평화가 다시 위협받고 있다”며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다
월정사 성보박물관(관장 해운 스님)이 국립춘천박물관과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특별전 ‘오대산 월정사: 절, 산 속에 피어난 이야기’를 개막했다.1월 9일부터 3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는 오대산의 신앙과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물들이 대거 출품된다. 주요 유물은 국보 1건, 보물 7건, 국가민속문화유산 1건,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5건 등이며 출품작은 60건 140점이다. 오대산을 둘러싼 역사와 문화, 신화와 신앙을 3부로 구성된 전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오대산 월정사: 절, 산 속에 피어난 이야기
수많은 고승들은 청춘의 한복판에서 깨달음을 이뤘다. 2011년 본지가 조사한 43명 고승들의 평균 오도 나이는 32.4세였다. 그 가운데 30대가 절반이 넘는 22명으로 가장 많았고, 20대가 14명으로 뒤를 이었다. 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승가공동체는 혈기 넘치는 청년이 모여있는 집단이었고, 불교는 활기넘치는 청춘의 종교였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선사들의 목숨을 건 수행도 결국 굳건한 보리심과 맑은 식(識),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체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한국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 스님(1846~1912)도 젊음의 꽃이 만개
태고종 전 종정이자 현대 한국불교의 선지식으로 추앙받던 덕암 스님의 열반 20주기를 추모하는 다례재가 봉행됐다.덕암문도회(회장 혜일 스님)는 12월11일 서울 불이성 법륜사에서 ‘태고종 제13·16대 종정 덕암당 흥덕 대종사 열반 20주기 추모다례재’를 봉행한다. 이날 다례재에는 덕암문도회장 혜일 스님을 비롯한 문도스님들과 태고종 총무원장 상진, 행정부원장 능해 스님 등 종단 집행부 주요 소임자들이 참석해 덕암 스님의 20주기를 추모하고 가르침을 되새겼다.총무원장 상진 스님은 “태고종의 정신적 지주이며 지금의 태고종을 있게 한 덕암
지난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 후기 일선 사찰의 스님들은 공권력과 지배층으로부터 부과된 각종 잡역으로 하루하루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혹독한 노동과 날로 어려워지는 경제적 상황은 승도의 이탈과 사찰의 퇴락으로 이어져, 18세기 후반에는 지역의 거점 사찰에서조차 소수의 스님들만 남아 절을 지키고 나라에서는 그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정조실록’ 31권, 14년 8월23일, “절이 퇴락하고 승려의 수가 적기는 어느 곳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별의별 부역과 이러저러한 갖가지 관청 공납이 번다
해봉당(海峰堂) 자승(慈乘) 대종사(大宗師)의 갑작스러운 입적 소식을 접한 심정은 고통스럽고 비통하다. 사부대중의 크나큰 의지처이자 이 시대의 큰 스승이 한순간에 떠났으니 그 슬픔과 허전함은 말할 수 없이 깊고 크다. 자승 대종사가 걸어온 여정에서 우리는 스님의 고뇌를 읽을 수 있다. 그 고뇌가 한국불교의 위상을 격상시켰음을 또한 새삼 알 수 있다. 제33·34대 총무원장(2009∼2017)에 취임하며 내 건 두 개의 슬로건은 ‘소통과 화합을 통한 불교중흥’ ‘자비와 화쟁으로 이웃과 함께’였는데 과감한 결단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목적
태고종 전 종정이자 현대 한국불교의 선지식으로 추앙받던 덕암 스님의 열반 20주기를 추모하는 자리가 마련된다.덕암문도회(회장 혜일 스님)는 12월11일 오전 10시30분 서울 불이성 법륜사에서 ‘태고종 제13·6대 종정 덕암당 흥덕 대종사 열반 20주기 다례재’를 봉행한다. 덕암 스님은 한국불교태고종의 오늘을 있게 한 스님이다.스님은 1913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1930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벽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운암 화상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1935년 일본 동경 대성학교를 졸업한 뒤 1942년 철원 심원사 불교전문
11월29일 ‘전법합시다’라는 말을 남기고 소신(燒身)한 조계종 전 총무원장 해봉당 자승 대종사는 한국불교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든든한 문중의 뒷배도 없이 50대에 총무원장에 선출됐고, 숱한 저항과 도전 속에서도 재임에 성공해 8년 임기를 꽉 채운 첫 총무원장이었다. 총무원장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상월선원 천막결사, 만행결사, 인도순례 등을 진행하면서 전법을 통한 한국불교 중흥에 앞장서는 등 현대 한국불교사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자승 스님은 195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19세 되던 해 조계종 3·9대 총무원장을 역임한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을 지휘하며 조국과 백성을 구한 호국대성사 서산대사와 의승군을 추모하는 대흥사 표충사 항례가 봉행됐다. 조계종 제22교구본사 해남 대흥사(주지 법상 스님)는 11월11일 경내 에서 ‘서산대사 탄신 503주년 호국대성사 서산대제 - 추계제향 및 호국의승 추모재’를 봉행했다.‘호국대성사 서산대재 – 대흥사 표충사 항례’는 조선 정조 대왕의 왕명으로 예조와 경양찰방, 장흥, 흥향(고흥), 해남, 진도, 낙안(순천) 등 전라도 5개 고을군수가 합동으로 주관, 매년 봄과 가을에 국가제향으로 진행해왔다. 구한말 서원철폐령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