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법륜성지인 녹야원의 부처님 사리탑에 삼배의 예를 올리고 있는 덕킁린포체. “저기 앉았으면 좋겠어.”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나무아래서 깨달으신 직후 칠일 밤낮을 선정에 들어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셨다. 그런 연후 윤회와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길을 일러주기 위해 함께 고행을 했던 다섯 명의 수행자들이 머무르고 있었던 ‘녹야원’으로 향했다. 사슴들이 많이 살았기에 ‘사슴동산’으로 불린 그곳을 향해 부처님께서는 보드가야에서 천천히 걸어서 가셨을 것이다. 문명의 이기가 극도로 발달한 지금, 일행은 편안하게 차를 타고 그 길을 지나쳐 왔다. 차로 달려도 5시간정도 걸릴 만큼 먼 거리를 걸으셨을 석가모니께서는 무엇을 생각하시며 무엇을
▲마하깔라 동굴사원에 봉안되어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붓담 샤라남 갓차미(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다르맘 샤라남 갓차미(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상감 샤라남 갓차미(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전날처럼 보드가야 대탑을 돌고나서 보리수나무 뒤편에 마련된 법회장소로 가보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보리수나무 앞 담장 안쪽에 마련된 불단을 향해 앉아 있었다. 한 시간 가량이 흘렀을까, 삼귀의가 산스크리트어로 조용하면서도 차분한 음색으로 울려 퍼진다. 까규파는 해마다 팔관재계(八關齋戒) 형식으로 일체 부처님들과 일체 스승들의 수행이 완성되기를, 지난 세월 베풀어 주신 법향에 감사를 올린다. 우주를 이루고 있는 일
▲순례자들의 영원한 고향인 보드가야 성지, 마하보디 대탑은 수없이 많은 순례자들의 지극한 마음을 증명하듯 오늘도 여여(如如)한 모습으로 나투어 계시다. 캘커타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곳처럼 성도성지인 보드가야의 ‘시킴하우스’도 시킴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었다. 시킴이 인도에 편입이 되기 전 소유했던 건물로, 편입 이후에도 시킴의 순례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넓은 땅을 가졌음에도 인도가 워낙 가난한지라 보드가야에는 공터로 그냥 방치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시킴하우스 앞에는 앞으로 순례자들을 위한 법당과 게스트 하우스가 들어 설 예정이란다. 일행은 우선 2층에 짐을 풀고 마하보디 대
▲도줄 초텐 사원의 스투파,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이끈다. “조금 있다가 사캬파 도량에 간다고 합니다.”성스러운 도량 ‘룸텍’에서의 맑은 느낌이 채 가시지도 않은 다음 날 아침, 순례 도반인 ‘제니’가 조금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한다.“그래요?”“제가 처음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이 사캬파라서 그런지 꼭 그 도량에 가서 공양을 올리고 싶어요.” ‘사캬파’는 티베트 불교의 4대 종파 중 하나이며 11세기 ‘사캬’라는 지역에 세운 사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13세기 몽골의 힘에 의탁해 100년가량 티베트의 정치와 종교를 통치하다가 몽골의 멸망과 함께 세력이 줄었다. 그러나 성립 초기 다섯 명의 고승들이 체계화시킨 수행법이
▲1960년에 완공된 시킴 최고의 승려교육기관인 룸텍 사원 전경. “야리! 어쩐 일로 시킴의 전통의상을 입은 건가요?”시드니에서 함께 순례에 동참한 ‘야리’가 며칠 전 맞춘 시킴의 옛 의상을 입은 모습을 보고 물었다.“오늘이 린포체님 생신입니다.”“생신이라고요?” 덕킁 린포체의 생일이라는 말에 문득 ‘린포체께 생일은 어떤 의미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마침 ‘소남’도 전통 옷으로 갈아입고 지나가고 있어 물었더니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어떤 의미이냐고 질문했는데 린포체의 정확한 생일은 모른단다. 다만 인도에 망명을 한 뒤 만든 여권에 적힌 생일에 맞추어 축하를 한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그날 아침 우리 일행이 머물고 있었던 그
▲법석에 올라 관정수기를 주관하고 있는 걀찹린포체와 시킴의 불자들. “꼬끼오~”차가운 바람이 콧등을 시리게 하는 데 어디선가 닭의 홰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골 향기가 가득한 닭의 건강한 외침이 반갑기만 하다. 이틀이나 아침을 같은 집에서 맞이했으나 해뜨기 전에 심하게 기침을 했던 터라 미처 듣지 못하고 있다가 고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가만히 눈을 뜨고 이불을 정리하고 문을 열고 툇마루로 나왔다. 순간 마음이 쓰였다. “라마들은 잘 쉬었을까?”다들 일어나지 않았는지 조용한 분위기 속에 날은 이미 밝았다. 어두운 밤에는 잘 몰랐으나 눈앞에 선명하고 예쁜 풍경이 들어왔다. 천연의 노란 빛을 띤 옥수수다. 다음 해 농사를 위
▲마하깔라 가면 춤은 시킴 지역의 까규파 사원에서 1년에 한 번 접할 수 있는 티베트 전통문화공연이다. “빠~라 빠~라 빠아빠 빠아.”기도(푸자)를 시작한지 일주일이 되던 날,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호주에서 온 ‘제니’는 숙소 주인집의 딸에게 티베트 전통의상을 빌려 입었다. 우리 일행이 절로 올라가는데 길가에 아주 익숙한 풍경이 다가왔다. 제주도에서 흔히 보았던 ‘막대기로 걸쳐놓은 대문’의 모습, 반가웠다. 재질은 대나무였지만 생긴 모양새가 너무도 똑같아 한참동안 눈길을 머물렀다. 이역만리 제주와 이곳의 낯익은 대문 풍경에서 ‘사소한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시킴 사람들이 아주 오래
마하깔라춤을 연습하는 라마들의 모습이 정성스럽게 보인다. “린포체님! 이것을 한번 당겨보시지요?” 덕킁린포체의 도움으로 며칠 신세진 집의 큰아들 ‘초펠’이 우리에게 활을 자랑했다. 직접 만들었다면서 우리 일행에게 시위를 당겨 볼 것을 권했다. 우리는 각자 한번씩 시위를 당겨보았는데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초펠은 우리가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보더니 직접 시범을 보이며 거들었다. “시킴에서 인기 있는 남자가 되려면 활을 잘 다루고 말을 탈 줄 알아야 합니다.”웃음이 나왔다.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초펠의 한 마디가 놀랍고 재미있었다. 아직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니, 문화적 차이이리라. 활을 자랑하는
푸동 사원은 시킴에 세운 ‘까규파’의 첫 번째 사원으로, 18세기에 시킴의 4대왕 ‘쵸갈 귬드 남걀’(Chogyal Gurmed Namgyal)이 세웠다고 한다. 척박한 환경인데도 그 규모가 대단하다. 2시간 가까이 달리다 보니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든다. 노(老) 라마의 다비식을 보고 돌아왔던 바로 그 길이라는 사실을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가다보니 지난 번 그냥 지나쳤던 곳이 반복됐다. 차가 옆길로 들어서 막 오르막길로 향했다. 창밖으로 공양물을 이고지고 길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그들의 마음이 이미 법당의 부처님에게 가 있는 듯 가벼워 보였다. 언덕을 오르고 나니 길 아래 공터에는 천막을 쳐서 만든 저잣거리가 들어서 있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
‘엔체 사원’(Enchey Monastery)의 라마들이 가면춤을 연습 하고 있다. “절에 갈 건데 함께 가실래요?”시킴의 수도인 ‘강톡’으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일정 관리 소임자인 ‘소남’은 아침부터 서둘러 출발할 준비를 하면서 함께 가자고 한다.“그렇게 합시다.” 워낙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곳을 가본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두루마기 하나만 걸치면 되기 때문에 대답과 동시에 방으로 가서 나갈 채비를 하고 바로 따라 나섰다. 숙소에서 10분가량 거리에 있는 ‘엔체’(Enchey) 사원에 갔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장단에 맞춰 북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절 마당에 들어서니 라마들이 모여 행사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러 명이 우리나라 소고
땅속에서 발견된 ‘걀와 르셩 첸포’ 좌상. “여기는 우리가 왔었던 곳이 아닌가요?”전날 벨링의 한 도량에서 하산할 때 해는 이미 서산에 지고 난 다음이었다. 그리고 서시킴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짐을 모두 챙겨 출발해서 도착한 곳은 이틀 전에 들렸던 ‘베마양쳉’ 사원이었다.“저리로 한번 가보세.” 덕킁린포체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일주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주문 밖의 요사채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더니 요사채 뒤편에 나 있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게 아닌가. 일행 역시 린포체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순례자들이 들어선 법당은 전에도 이 도량에 들렀을 때 ‘여기도 들어갈 수 없는 신성한 공간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냥 스쳐 지나갔던 곳이다. 그리 크지
‘욕섬’(Yuksum)에 있는 성지다. 이곳은 시킴 왕국의 첫 국왕이 즉위한 곳이자 최초로 법을 설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나니 새로운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출발해야 한단다. 일정 담당인 ‘소남’의 출발 신호에 따라 순례 일행을 태운 차량 두 대가 제법 익숙해진 엔진 굉음을 내며 출발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섰던 터라 말끔하게 교복을 입고 학교로 향하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푸릇푸릇하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시킴은 숲도 우거지고 물도 많고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고 여름에도 덥지 않다. 이런 모든 면을 종합해 볼 때 시킴은 히말라야가 안겨준 축복의 땅이라는 확신이 든다. 간간이 길가에 흘러내리는 산비탈의 물줄기는 이곳에 에너지를 불어 넣는 생명의 젖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