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과학의 발달로 현실화되는 경우가 많다. 가끔 있었던 일들이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도깨비가 방망이를 휘두르듯이 뚝딱뚝딱 일어난다. 인간이 우주로 나가고, 심연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생명을 복제하고, 인류와 지구의 기원을 찾아내고, 인공지능을 갖춘 컴퓨터가 사람의 노동과 생각을 대신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더욱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다. 노화세포를 정상적인 젊은 세포로 되돌리는 원천기술이 개발됐다. 과거 진시황을 비롯해 수많은 권력자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불로초’를 드디어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적습성성(積習成性)은 ‘대지도론’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습관이 오래되다보면 그게 바로 본성이 된다는 말이다. 습관은 좋은 습관도 있고 나쁜 습관도 있다. 다만 어떤 습관을 들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이나 품성이 달라진다. 좋은 향을 피우면 몸에 향기가 배고, 생선과 함께 있으면 생선냄새가 몸에 배는 것과 같은 이치다.거듭된 습관이 본성이 되는 것이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가정과 사회, 정치와 종교계,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올해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국난 속에서 각 종교가 보여준 모습들은 지난 과거 쌓아온 습관이 어
프랑스 교사가 목이 잘린 채 발견됐다.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자료를 사용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일주일 뒤에는 성당에 온 60대 여성을 포함해 3명이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테러가 발생해 2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무슬림들이 저지른 보복이었다.이런 잔악한 행위가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특정종교에서 신성시하는 인물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로 포장돼서는 곤란하다. 사상이나 관습에 대한 배려 없는 풍자는 조롱이며 폭력이다. 프랑스 정부가 이런 비열한 조롱을 언론의 자유로 호도하는 이상 살육
아이가 눈이 아프다고 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다가 최근에는 학원 강의까지 온라인으로 듣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눈이 아프지 않을 재간이 없을 터였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컴퓨터만 들여다보며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의 삶이 애잔했다. 약육강식 같은 교육환경에 마음껏 뛰어놀 수도 없었는데, 이제 밖에 나가는 것도 조심스러운 일이 돼버렸다.학교는 덧셈뺄셈만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 또래 아이들과 교류하며, 소통과 협력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쌓아가는 곳이다. 그런데 이런 배움의 과정
코로나19에 감염돼 치료를 받고 퇴원한 전광훈 목사가 퇴원하자마자 순교(殉敎)하겠다고 밝혔다. 전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사랑제일교회와 이들이 참석한 광화문 집회로 인해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국민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사태에 대해 일말의 반성이나 사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전 목사가 순교를 언급한 이후 포털사이트에서는 순교가 검색어 1위에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다.순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일이다. 죽을 순(殉)에 가르침 교(敎)이니, 따르는 가르침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극한의
“일부의 몰상식이 한국교회 전체의 신망을 해치고 있다. 예배가 마음의 평화를 줄 수는 있지만 바이러스로부터 지켜주지는 못한다.”문재인 대통령은 목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제일교회로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확산은 불과 2주 만에 1000명을 넘어섰다. 극우세력이 함께 주도한 광화문집회를 통한 감염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크고 작은 교회에서의 코로나19 확진사례도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런 사태에 대해 대통령은 목사들의 책임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황당했다. 김태영 한국교회총연합
‘도끼나물’이라는 말이 있다. 고기를 이르는 말이다. 한참 커야할 동자승을 저자거리 신도 집에 보내 고기를 먹여야 할 때, 병든 도반의 치료를 위해 고기가 필요할 때 고기라는 말을 차마 못하고 ‘도끼나물’이라 조심스럽게 부른다. 그래서 ‘도끼나물’이라는 용어에는 육식에 대한 죄스러움, 민망함 등 다양한 의미가 함축돼 있다. 불교는 불살생계를 중시한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 말라는 의미를 넘어 모든 생명의 목숨을 중시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불교는 육식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경전에 나온 삼정육(三淨肉)을 예로 들며 부처님께서
“모든 분들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 달라. 모두 안녕.”7월9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자필로 눌러쓴 유서에는 삶에 대한 회한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아픔이 피처럼 배어있다. 그의 삶은 다면적이었다. 인권변호사에서 사회운동가로, 정치인으로 변신의 폭은 컸다. 그러나 앞에 붙은 수식어만 다를 뿐 삶은 일관됐다. 평등하고 바르고 살기좋은 세상을 지향했다. 사람과 환경, 동물의 복지에 이르기까지
훈습(薰習)은 불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 중 하나다. 범어(梵語) ‘바사나(vāsanā)’를 한역한 것으로 어떤 냄새가 몸에 배는 것을 뜻한다. 좋은 향을 피우면 좋은 향기가 몸에 배고, 생선과 함께 있으면 생선의 비린내가 몸에 배는 이치가 훈습이다.훈습의 의미는 가치중립적이다. 맑고 투명한 마음과 선하고 진솔한 행동들은 좋은 습관으로 이어져 훈습돼 몸에 쌓인다. 나쁜 마음과 독한 행동들은 또 그대로 쌓여 그 사람의 졸렬한 인격과 못된 습관들을 형성한다. 그런데 훈습은 꼭 스스로 결정권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훈습은
미국에서는 연간 4만명이 총기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총기난사와 같은 비극적 범죄도 수시로 일어난다. 총기사고가 늘어나면 겁에 질린 국민들의 총기구입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총기사고를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정부가 개인의 총기를 거둬들이고 더 이상 총기구입을 못하도록 규제하면 된다. 그런데 미국서는 이게 불가능하다. 총기회사의 공격적인 로비에 길들여진 정부와 정치권이 현실을 애써 외면해 버린 결과다.인종이나 종교, 성적지향성에 따른 차별과 혐오를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미국의 총기규제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차별금지법은 2007
대학시절 수업 중에 ‘포교론’ 강의가 있었다. 강사는 선진규 법사였다. 한 학기 강의였는데 수업이 끝날 때까지 모두들 교수가 아닌 법사님으로 불렀다. 그는 개인적으로 동국대 불교학과 선배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선배님으로 부르지 못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자생활을 하면서도 호칭은 언제나 법사님이었다. 평생을 법사님으로 불린 그는 6월8일 86세의 나이로 세연을 접었다. 중생구제와 대중포교의 원대한 꿈을 펼쳤던 김해 봉화산 정토원에서 조용히 아미타불 회상으로 향했다.법사(法師)는 그의 인생을 응축한 언어 사리
이태원 클럽을 통한 코로나19 감염확산으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젊은이들의 치기로 보기에는 피해의 정도가 너무 크다. 특히 영업을 재개한 상인들이나 학교에 갈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던 학생들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그러나 이태원 클럽의 코로나19 감염확산의 현장에서 우리는 마녀사냥의 광기를 함께 보고 있다. 개신교 신문인 국민일보가 코로나19 확진자가 동성애 클럽을 다녀갔다고 보도하면서 성소수자를 향한 분노와 혐오가 일고 있다. 국민일보의 보도는 인권보호를 위해 감염경로 정보를 최소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