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날 종을 33번 울리는 의식을 통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제야의 종은 1953년부터 시작되어 이제는 연말이면 꼭 거쳐야하는 행사가 되었다. 종을 타종하며 옛 것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이 전통은 원래 사찰에서 음력으로 섣달 그믐날 밤 108번뇌를 떨쳐내는 의미로 범종을 108번 타종하는 법식을 본 딴 것이다. 사찰에서 종을 울리는 법식은 ‘증일아함경’에 나오는 7월 보름 부처님 말씀을 받들어 대중을 모으는 신호음으로 간타(GHANTA)를 울리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범종을 치는 횟수는 법식에 따라 다른데 저녁에는 욕계, 색
불교에서 법석을 마련하여 기도드리는 도량 가운데 소재도량이라는 법회가 있다. 고려 문종 즉위년(1046) 10월 처음 봉행한 밀교의식인 소재도량(消災道場)은 불교도량 가운데 재난에서의 구원은 물론이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예방법회의 성격을 갖는 유일한 도량이다. 세종 당시 불교개혁에 관한 양봉래의 상소문을 보면 “어떠한 변괴든지 있게 되면 열었던 불사가 바로 소재도량”이라고 하였을 정도로 고려의 비정기적 불교의례 가운데 가장 많이 개설된 법회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피할 수 없는 하늘과 땅의 불길한 징후를 소멸시켜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
서역 지방의 승려로 중국에 와서 불경을 번역하였던 구마라습이 쓴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을 보면 바다의 용왕이 부처님의 법을 수호했다는 유명한 설화가 나온다. 말법(末法)의 세상이 되어 한 사람도 불법을 우러러 받드는 이가 없게 되면 불상은 스스로 무너져 버리고 경전들은 용왕이 살고 있는 용궁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게 된다. 그래서 기약 없는 날들을 지내며 불법이 다시 펼쳐질 세상을 기원하며 용왕은 용궁에 숨겨진 불경을 지키고 있었다. 용수보살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600~700년 이후에 태어난 인도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지혜가
이달 초 부산 해양박물관에서 고대로부터 지배자와 수호자의 상징이었던 용과 관련해 다양한 주제로 진행된 연구의 결과물들이 발표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부처님의 탄생 설화 때부터호법신장 같은 역할로 등장힌두교 뱀신에서 차용된 용인도선 코브라 모습 그려져용 신령스럽지만 역시 동물사천왕들에 의해 제어 당해용에 대한 피상적인 상식만 갖고 있던 필자도 이 글을 쓰게 될 인연이었는지 우연히 참석할 기회를 얻어 용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용의 모습은 뱀뿐만 아니라 악어, 도마뱀과도 연결고리가 있단다. 그리고
“오대산의 가을 단풍이 절정”이라고 매스컴에서 떠드는 소리만 철석같이 믿고 천연색으로 곱게 물들인 털실로 뜨개질한 것 같은, 그야말로 금수강산을 한번 진하게 볼 일념 하나로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강원도를 향해 길을 나섰다. 하지만 꽉 막힌 도로에서 수 시간을 부대끼며 찾아간 나의 기대와는 달리 눈앞에 펼쳐진 강원도의 산은 아직 청춘의 빛을 잃지 않고 있었고 그 푸르름에 눈이 시릴 정도였다. 억울한 마음을 위로 받을 심사로 월정사로 향했던 발걸음도 사찰 진입로부터 끝이 보이지 않는 차량의 행렬에 금세 기가 꺾였고 차선책으로 찾은 것이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명백한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죽음이 두려운 중생인 까닭에 영원을 꿈꾸며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을 애써 잊으려 한다. 종교는 언제 어디서 맞이할지 모를 죽음의 공포와 그로 인한 인생의 허무함을 견디기 위해 생겨났다. 불교에서도 생전에 열심히 수행한 영혼은 아미타부처가 주재하시는 극락정토에 태어나 왕생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인연들은 생전의 행보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으로 나누어진 여섯 세계를 돌고 또 돌며 환생을 거듭한다고 가르친다. 여섯으로 나누어진 세상 가
백제 미륵사는 서동요의 주인공이었던 무왕(600~641) 때 만들어진 절로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다. 이 절 금당 앞에는 동서로 세워진 2개의 석탑과 그 사이 목탑이 하나 있었는데 15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가면서 목탑과 동편의 탑은 무너져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서편의 탑은 반파된 상태로 힘겹게 세월을 지탱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된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은 639년 만들어졌는데 일반적으로 나무로 탑을 세우는 것이 돌로 탑을 쌓은 것보다 시대가 앞서기 때문에 초기의 석탑은 나무 탑과 같은 모양을 따르고 있어 미륵사지
‘서유기’와 관련된 예능프로를 보다 문득 통도사 용화전의 벽화가 생각났다. 통도사 용화전의 내부를 장엄한 벽화 가운데는 흥미롭게 손오공과 저팔계가 나오는 ‘서유기’ 장면이 있다. ‘서유기’ 장면은 법당의 동측 면에 3점, 서측 면에 4점이 있는데 사찰벽화 조사 작업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 그림들은 막연히 불교 인연설화를 소재로 하여 그린 것 인줄 알고 있었다. 사진으로 소개한 현장병성건대회도(玄藏秉誠建大會圖)는 현장법사가 당 태종의 명을 따라 수륙재를 여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화면 하단 용을 밟고 향 공양을 하는 인물은 수륙재를 발원
사찰의 큰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을 모신 자리 위를 보면 집 모양의 작은 전각이 천정에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닫집라고 한다. 부처님이 계신 공간을 꾸미는 닫집의 어원에는 지위나 계층이 높은 사람이 머무는 장막이 쳐진 ‘닫힌 집’, 당에서 수입한 ‘당가(唐家)’, 두드러진 집이라는 뜻으로 ‘돋집’, 위에 매달아 놓은 집이라서 ‘달집’이라는 여러 설이 있다. 닫집은 해를 가리는 산개(傘蓋), 보개(寶蓋)에서 발전하여 만들어진 장엄구로서 천개(天蓋)라고도 하지만 사실 천개와 불교 전각과 같은 모양의 닫집은 차이가 있다. 따가
첩경이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그렇게 되기가 쉬움을 이르는 말이니 ‘정토왕생첩경도’를 글대로 풀이하자면 왕생극락하기 위한 지름길을 알려주는 그림이다.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토, 약사유리광여래의 동방정유리세계, 미륵불의 도솔천, 관음보살의 보타락가산 등 청정하지 못한 현실세계를 나타내는 예토(穢土)에 반대되는 불국정토는 그야말로 여러 곳이 있는데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정토는 뭐니뭐니해도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이다. 우리에게 염불이라고 하면 아미타불을 외우는 것을 떠올릴 만큼 아미타신앙은 조선후기 대중들에게 큰 호응
불교미술에서 하늘을 나는 천인상을 흔히 비천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스스로 하늘을 날 수 없기에 천상에 살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인(天人)은 동경의 대상이자 이상적인 모습으로 생각되었고 오랜 옛날부터 미술의 주제로 사랑받아 왔다. 비천의 기원은 고대 인도신화에서 유래하며 긴나라, 건달바, 아프사라스와 같이 신의 단계는 이르지 못하나 천계에 사는 유정(有精)을 말한다. 원래 브라만교의 신이었으나 불교에 흡수되면서 여래와 보살, 명왕의 하위에 있으면서 불교를 수호하는 수호신이 되었다. 인도 불교미술에서 비천은 불상의 출현보다 이른 기원
흔히들 양류관음이니 수월관음이니 하는 그림의 명칭들은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관음보살이라는 이름 앞에 양류, 수월, 백의 등의 수식단어가 붙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불교미술이라는 학문을 공부하기 이전에는 독자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자비의 화신인 관음보살은 중생의 고통에 따라 33가지의 몸으로 변화하여 구재하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응신하신 모습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불교미술에 표현되는데 대부분 모습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지물이 버들가지와 정병이다. 버들가지를 가진 관음보살을 우리들은 양류관음이라고
순천 송광사 성보박물관이 새롭게 문을 열면서 그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소중한 불교 보물들을 전시하였다. 그 많은 유물들 가운데 불화를 전공하는 필자가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은 ‘화엄경’의 내용 가운데 정수만을 간추려 요점 정리하듯 그린 ‘화엄경변상도’이다. 1770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미타회(彌陀會)라는 불교결사단체가 발원하여 무등산 안심사에서 화련 스님을 비롯한 12명 화승들의 참여로 제작이 되었고 그림이 완성된 이후 송광사로 옮겨와 소장되고 있다.화엄종사 활동사찰 중심으로18세기~19세기 많이 그려져화엄사상 고취 시대상
불교에서 새 세상을 열어줄 구원자로 알려진 미륵의 산스크리트어 마이트레야(Maitreya)는 미트라에서 유래한다.미륵은 미래 세상에 올 부처님남녀 모두 선업인연으로 탄생변상도에는 미륵이 내려올 때나타나는 현상들 압축 표현어려운 현실을 벗어나게 해줄 구원자에 대한 기대는 하늘과 땅이 생기고 인간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언제나 피통치자들이 바라는 희망사항이었다. 우리네 조상님들은 삶이 팍팍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그들을 구원해줄 미륵부처를 기다렸기에 미륵신앙은 정치적으로 이용된 예가 많다. 견훤은 금산사의 미륵불이 바로 자신이며
신록의 오월, 창취한 유월이라는 말처럼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계절 하루가 다르게 창밖의 풍경은 녹음이 점점 짙어간다. 얼마 전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왕실발원불화인 ‘극락구품도’를 보면서 파주에 있는 보광사 대웅보전 벽면에 그려져 있던 연화화생도가 생각났다. 보광사 대웅보전의 외부 측면에는 널판을 끼워 맞춘 판벽에 벽화가 빽빽이 그려져 있다. 19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벽화들 가운데 연꽃이 핀 못의 풍경을 묘사한 장면은 아기자기한 구성에 불보살님도 볼 살이 통통한 아기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져 보광사 판화 가운데 대중적인
그 옛날 우리들에게로 오셨던 부처님의 탄생장면은 불화로 그려진 팔상도에서 살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일생을 살필 수 있는 불화는 8장면으로 구성된 팔상도를 떠올리지만 부처의 일생을 표현한 도상에는 도를 깨닫는 장면과 열반에 드시는 2장면만을 다룬 것에서부터 여기에 탄생과 초전법륜 장면이 더해 4장면으로 구성된 것도 있고 9장면과 10장면으로 나눠진 것도 있어 표현방식에 다양함이 있다. 주로 소승불교를 믿는 남방불교권의 불전문학에서는 4가지 장면으로 표현되는 방식이 선호되었지만 북방불교권의 대승불교 불전문학에서는 이것이 더욱
어디선가 바람이 꽃 내음과 함께 살랑이며 불어오더니 고요한 수면에 반짝이는 윤슬을 만들고 건너간다. 겨우내 오가며 물이 꽁꽁 언 연못을 보고 물고기가 있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었는데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떼 지어 다니는 새끼 물고기들이 봄맞이를 하고 있다. 미술품으로 모습을 나타낸 물고기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데 한 번에 수많은 알을 산란하여 종족을 퍼트리기에 다산하여 자손이 번창되라는 뜻이 있고, 눈을 뜨고 밤을 지새우는 습성 때문에 문이나 가구의 잠금 장식으로도 애용된다. 한자로 궁궐과 음이 같은 쏘가리(?, 궐)는 대궐에 들어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물은 필수적이다. ‘먹는 샘물’이라고 불리는 생수는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마시는 물을 의미한다. 필자도 수돗물에 볶은 보리나 옥수수를 넣어 차를 끓여 마셨던 시절은 이제 생각도 잘 나지 않고 목이 마르면 당연히 정수기에서 물을 찾고 생수병을 들고 목을 적신다. 물론 우리네 정서 속에는 대동강 물을 팔았다던 봉이 김선달이란 어르신도 계시지만 그건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 알프스 눈 녹은 물을 돈 주고 사먹는 시절이 올 줄 누가 알았으리요.조선시대 수륙재 큰 재화 필요불단 등 포함한 감로왕도 그려서
경칩이 지나고 춘분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체온으로 느끼는 봄은 아직 먼데 마음은 벌써 백화가 만발하다. 어느 시인의 말씀처럼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을 느끼고 싶어 나는 무작정 길을 나섰다. 발길 닿는 데로 봄을 찾아 나선 여행이지만 필자의 삶과 불교미술이 맺고 있는 가늘고 긴 인연 때문에 산사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천왕문을 지나 금당의 부처님도 뵙고 법당의 보살님도 만나며 이리 저리 전각들을 둘러보다 마지막으로 발길이 멈춘 곳이 명부전이다.현왕도·시왕도 지옥 장면 묘사섬뜩
얼마 전 신문에 관세음보살을 그린 고려불화 1점이 이탈리아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기사가 나온 것을 보았다. 고려는 불교가 융성하였던 시대였으니 분명 불보살님을 그림으로 그린 불화도 다량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강산이 변하고 사회지배 이념이 달라지는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현재 남겨진 고려불화의 수량은 겨우 160여점에 지나지 않기에 머나먼 이국땅의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이지만 그 존재가 반가운 것이다.바탕천은 1폭으로 이뤄진 비단색감 안료도 모두 천연 광물성엄청난 재물 소용된 귀한 물건심미 아름다